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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토고 사람 베르나르도 / 스트라스부르_43

C&A에서 싼 맛에 옷도 사고 낯설고 예쁜 이 도시에 신도 나서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판대 몇개로 이뤄진 다리 위 작은 시장을 지났다. 이런 시장엔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많아서 구경하는 것도 재미잖아!라고 생각하고 지나던 내가 흠칫하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일이 벌어졌다. 만일 당신이 지나던 행인 관람자의 공포를 유발시켜 헉,하는 단말마를 수집하는 특수 목적의 설치 및 행위 미술가라면 아래의 사진을 유심히 참조하시라.

중세 시대 교수형을 당한 스트라스부르의 어린이 유령이 임하셨네 임하셨어...어린이 옷을 걸어 놓은 인형이 너무 무서워서 아동복 가판대 앞에서 엉엉 울 뻔 했다. 손 없어, 발 없어, 뒷통수 없어, 눈동자 없어, 지금이라도 대롱대롱 매달린 저 모습에 에코가 잔뜩 들어간 환청 음성으로 하하 하고 내 뒤통수에 대고 웃을 것 같은 공포의 어린이들!

 

이 공포의 공간(?)에도 어른 옷을 파는 가판대의 아저씨(아니, 목소리는 너무나 앳되서 나이를 알 수 없는)는 뭐가 그렇게 유쾌하신지 계속 싱글벙글이다. 그의 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유혹적으로 경쾌하다. 헉,하고 흠칫했던 숨을 가다듬은지 이제 1분이나 지났을까, hertravel,그녀는 벌써 그의 유쾌한 분위기에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다. 유쾌한씨의 가판대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제목을 물어본다. 어른 옷 장사 유쾌한씨께서는 앗, 잠깐 기다리라더니 자기 트럭 속에 들어가 CD통을 한참이나 뒤적인다. 누구나 저 좋아하는 가수 저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반가운 일 같다. 유쾌한 씨는 명랑하게 한 곡 뽑는 어조로 가수 이름을 가르쳐 준다. TIKEN JAH FAKOLY가 부르는 노래란다. 가수 이름이 특이한 것 같아서 물어보니 "꼬뜨 디브와르" 가수란다. 

꼬뜨 디브와르cote d'ivoir. 영어로는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 코끼릿 상아를 채취해서 가져간 프랑스 식민지배자들이 붙인 이름의 나라. 내전의 피바람이 그칠 날 없는 서 아프리카의 문제 국가 라이베리아에 대한 프로그램을 하면서 들었던 서아프리카의 이런 저런 지명중에 있던 나라 이름이다. 꼬뜨 디브와르면 서아프리카가 아니냐며 이런 저런 지명을 읊어대자, 

"너, 아프리카를 아는구나?"

그러지 않아도 기본 얼굴 표정이 익살스러운 싱글벙글인 베르나르도(유쾌한씨의 이름이었다)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신이 났다. TIKEN JAH FAKOLY의 음악이 바로 아프리칸 레게라는 장르란다. '아프리칸 레게'라는 장르는 처음 들었다.그렇다, 아프리카에도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있고, 직장이 있고, 텔레비전이 있고, 문화가 있는데, 왜 나는 아프리카에 기근과 전염병, 내전, 이런 것만 떠올렸는지. 아프리카에도 너무나 당연하게 가수가 있고 음악 CD가 발매된다. 게다가 꼬뜨 디브와르는 불어를 쓰는 나라니까 이렇게 불어권에 진출했을 수도 있다.

"그럼 베르나르도, 너도 꼬뜨 디브와르에서 왔니?" 물었더니
"아니, 난 토고에서 왔어"
"어, 토고? 토고는 왕국이지?"
"아니야 우리 공화제republic야"
"미안 미안! 그러고보니 내가 통가 왕국이랑 헛갈렸어 ㅠ ㅠ"
(저 멀리 태평양에 있는 나라를 한글 초성이 같다는 이유로 순간적으로 헛갈린 나)

"우리나라 토고는 나이지리아 근처에 있는 나라야. 아주 작은 나라야"
베르나르도는 그 덩치에 수줍게 웃으며 손가락을 작게 집으며 말을 이었다.
"아주 아주 작은 나라야!"

오, 베르나르도, 나도 네 기분 알아. 나도 항상 외국인들에게 말해줘야 해. 코리아는 아시아의 파이스턴에 있는데 비트윈 차이나 앤 저팬에 잇 이즈 로케이디트라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길래 그냥 맞춰보라고 한 적도 있거든? 그러니까 일본, 중국, 홍콩, 대만, 필리핀, 심지어 외모적으로 멀리 떨어진 베트남,인도,방글라데시까지 나오는데 한국이 안 나온 적도 있어. 나중에 한국이라고 하니까 아예 모르더라. 우리 나라도 그리 크지는 않아. 지금 내가 여행하는 여기 프랑스의 8분의 1밖에 안 돼. 여기 프랑스의 떼제베로 두시간이면 국토 종단이 끝나는 작은 나라야.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베르나르도, 너의 그 아주 아주 작은 모국인 토고랑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만나는 인연이 생기다니. 우리가 만났을 때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포토샵을 하다가 베르나르도를 레오날도로 쓰는 치매를 발휘했다)

이 음악 CD를 사고 싶으면 fnac에 가면 된다고 말하던 베르나르도, 갑자기 나를 보며 씨익 웃는다. 그러면서 사실 자기는 인터넷에서 다운 받았단다.

"(싱글벙글) 마이 씨디! 잇츠 칩! 이히히! 잇츠 프리! 프럼 인터넷! 유 캔 다운로드 프럼 인터넷!"

내친김에 이번엔 두꺼운 자신의 CD 컬렉션 전집을 다 보여주며 이것들이 모두 다 '프리'고, 다 '인터넷 다운'이랍니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아프리칸 레게를 치면 많아!"




오늘은 열차를 입석으로 타고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한 첫 날. 저녁의 자투리 시간에 동네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환히 불을 켜 놓은 인테리어 샵을 지난다. 전면 유리창의 인테리어는 어릴 때 꿈꾸던 바비의 집을 떠올린다. 동네 앞의 관공서 지나는 길조차 이른 밤 불빛 속에 제법 분위기 있다. 이 도시, 스트라스부르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숙소로 돌아와 숙소 안의 bar에 앉아 알콜 섭취 중에 쓴 여행기가 오늘 글의 바탕이 된다. 써 놓은 글을 여행 중에 흘리고 잃어버릴까봐 다 쓰고 나면 카메라로 찍어 놓는다. 그런 나를 써빙하는 남자가 유심히 쳐다 본다.

"꼭 스파이 같죠?"

하니까 낄낄 웃는다. 글을 쓴 종이를 디카로 연속 찍으면서 나 자신이 '이거 무슨, 스파이가 된 기분이군'하고 생각했더랬는데 이 친구도 그랬나 보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연상과 생각을 하고 사는 것 같다.

by hertravel | 2006/06/12 18:07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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