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들은 동료를 바다 위로 끌어올려 숨쉬게 하느라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죽어가는 동료 돌고래는 이미 생명의 끈을 모두 놓으려는 듯 보였는데도 마치 마지막 끈을 잡고 심장소생술을 시도하는 인간 세상의 병원 응급실 모습처럼 동영상 속의 돌고래들은 죽어가는 친구에게 세상의 공기를 마시게 하느라 입으로 끊임없이 그를 물 위로 올려댔다.
돌고래의 영상을 보며서 기아, 재난, 질병 앞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우리 사람이란 동물들은 어떤지. 고통받는 사람들의 구조 신호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의 사람들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돕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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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오래전 <기아체험 24시간>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던 그 때부터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돕자는 도네이션 현장의 취재를 다녔다. 몇 년 전부터 홍콩에 방문만 했다 하면 지독한 파파라치가 따라붙는 한류스타 모배우님과 나는 한류의 바람이 불기 전, 홍콩판 기아체험 24시간의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다. (아마 홍콩 언론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미친듯이 자료를 찾아 헤맬 것 같다).
그러나 항상 내 마음 속엔 '나눔을 주려는 나라, 혹은 그런 사람들의 모임 현장' 말고도 '나눔이 행해지고 있는 나라, 혹은 그런 사람들의 현장' 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바람대로 현장의 취재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기아체험의 모금 지원이 정기적으로 전달되는 아프리카나 아시아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해 긴급한 해외 지원이 필요할만큼 참혹한 대지진이 지구 반대편에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가는 사건이 있었다. 중미에서 남미로 넘어가는 입구인 지구 반대편의 콜롬비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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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뒤 이야기를 다 끊고 수치상의 뉴스만 간추린다면 2천명이 죽고 4천명이 다쳤다. -지진이라는 재난의 특성상- 실종도 5천명이나 됐다. 인정하기 싫지만 실질적으로 사망자의 숫자가 더 늘어난다고 봐야했다. 이재민은 30만명에 달했다. 콜롬비아 대지진 지원 활동을 취재할 것인가 며칠간의 회의가 시작됐다. 간다면 내가 그 취재팀에 함께하게 될 예정이었다.
나는 콜롬비아의 정보를 찾아 보았다. 몇가지 많지도 않은 정보라고는 모두 외신 뉴스였는데 모니터에 떠오른 그 뉴스 리스트의 제목들이 너무 화려해서 키보드를 치던 손가락도 잠시 놀라 멈췄다.
- 콜롬비아 정부 고위 인사, 게릴라에 납치
- 콜롬비아, 또 다시 민간인 납치 사건 터쳐
- 콜롬비아, 극단적인 정치적 불안으로 공식 정부외 게릴라군등 비공식 정부까지 6개의 정부가 존재...
- 美, 콜롬비아를 자국민 여행 위험지역으로 선포
- 콜롬비아 항공기, 납치...
심지어 어느 기사엔 콜롬비아 게릴라의 주수입원이 납치라고 써 있었다. 당시 콜롬비아는 대지진이 아니더라도 이미 지진과 같은 격동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나라였던 거다. 하물며 여기에 대지진까지 일어났으니 이를 어찌하나. 그리고 쏟아진
6.2 강도의 세계적인 대지진 뉴스,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엄청난 지진이었나, 그리고 말미엔 꼭 이런 내용이 이어졌다.
- 대지진 후 현재, 콜롬비아 아르메니아 지방엔 여진이 우려된다.
몇 천 명이나 한 순간에 목슴을 잃고 수십만명이 재난을 당했다는 범인류애적인 안타까움은 안타까움이고! 당장 내 이 한 몸뚱이가 직접 겪어야 할 여진의 공포가 스멀스멀 발가락부터 심장까지 노크하며 올라오기 시작했다.아아, 설마 설마.
나라는 사람은
두려움 없이 담대하고 내 한 몸의 안위보다 병들고 지친 자의 삶을 보다듬는 성자나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지역에서 뉴스 리포팅을 해 내는 용감한 종군기자와는
아주아주 먼 곳에 선 사람인데!
난 그냥 그들의 삶을 멀리서 보면서 -한편 이 자리에 있음을 소심하게 안심하며-
박수치고 응원하는 역할에 불과한 그런 사람인데!
오른쪽 가슴엔 여행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왼쪽 가슴엔 비행 공포증이 살고 있는 변태 인간인데!
궁금증때문에 번지 점프는 하고 말지만 사실은 높은 곳이 무서워 번지점프하러 올라가는 계단도 무서워하는
그런 웃기는 존재인데!
......
물론 (말은 저렇게 했지만) 직업의 특성상 편하게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항상 무엇인가 무리를 하는 것에도 익숙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해 오면서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운지도 알고는 있었다.
(역시 '안다'는 것과 '겪는다'는 것은 다르다)
아프리카를 갈지도 몰라 독하다는 10년짜리 황열병 주사도 미리 맞으며 전염병의 가능성도 생각하고
불편하고 힘든 취재 환경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다양한 돌발적인 생명의 위협중에서 지진 위협까지 가세해
'설마 내가 어떻게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재난의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방송'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으로 재난이 비켜가는 상상은 현실엔 없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출장을 다녀온 팀원이 간의 이상으로 입원하는 일도 있었고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최근의 일이지만 참 좋아하고 보고 싶은 지인 한 명도
취재 중에 하늘 나라로 가는 일이 있어 얼마나 가슴아픈지 모른다)
......
아무튼 그러나 막상 그 땐 나이가 어려 걱정을 오래하는 법에 익숙지 않아 그랬는지, 아니면 그때부터도 이미 붕어님을 교주로 모시는 심각한 깜빡증 교도라서 그랬는지. 나는 잠시 납치와 여진의 공포, 나의 유난스러운 비행공포증과 지진공포증 걱정으로 멈추었던 키보드의 손가락을 다시 스물스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뉴스 리스트를 훑어보며 '어떻게 정보라고 그물에 걸리는 것이 이런 뉴스뿐일까.' 의아해 하고는 곧 그 공포를
당분간('당분간!' 요게 아주 중요하다) 거두었다.
p.s. 이 글 중에서 콜롬비아 관련 정보 검색 결과는 오래 전 지진 당시에 찾았던 내용입니다. 제가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현재의 콜롬비아는 우리베 대통령 정권이후로 납치 등의 나쁜 기억은 옛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