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의 눈은 우리 글로 '성형수술'도 아닌 '플래스틱 썰저리'라고 '올드 북 스타일'의 영어 폰트로 고아하게 창문에 써서 걸어 내 놓은 대단한 성형외과에 가서 몽고 주름 앞트임과 뒷트임을 동시 실행한 사람처럼 확, 커지고 말았다.
잡지 속의 전시회 소식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떡하니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의 그림 'Gas'가...
Gas / Edeward Hopper
이 적막한 느낌의 그림, 도시가 끝나는 외곽 어딘가에서 그 따뜻한 붉은 색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적막 속의 적막을 느끼게 하는 이 그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었다.
에드워드 호퍼 Edeward Hopper ! 그가 누구인가. 스페인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싸 (Thyssen-Bornemisza) 미술관에서 내 발걸음을 꽁꽁 묶어 놓았던 바로 그 Hotel Room 그림의 화가가 아닌가!
HotelRoom / Edeward Hopper
여인은 옷도 제대로 갈아 입지 못하고 벗다 만 채로 호텔 침대에 걸터 앉아 다음 여행지로 가야할 기차표를 들여다 보고 있다. 구두는 제멋대로 뒹굴고 여행 가방은 열려지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 밤이 가도 여전히 열리지도 않을 듯 싶다. 여행의 안도감보다는 익숙하지 못한 긴장감이 그림 위로 가득하다. 근심이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후회도 엿보인다. 그녀는 어딘가를 떠나왔지만 떠나온 이 곳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화가는 어떻게 그녀를 만나 보게 됐을까?
여행 중에 다른 곳은 몰라도 미술관은 꼭 들러야 하는 나 hertravel은 그 취향 덕에 이 곳 저 곳의 미술관을 많이 가 볼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오래전 아무 정보 없이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싸 미술관을 찾아 갔다가 이 그림을 비롯해서 생각지 못 한 명작들로 순식간에 다리에 힘 풀려 기절할 뻔 한 적이 있었다.
(티센 보르네미싸 미술관을 표시해 놓은 hertravel의 마드리드 지도. 클릭하면 작은 길도 다 보인다. 참!!!!!!!!!!! 윗 지도에서 왼쪽 왕궁 표시는 왕궁이 아니라 플라자 마요르 (광장)이다. 그림 정리해 올리다 깜박 졸았나 보다. 글씨를 새로 새겨 넣고 싶지만 너무 번거로우니 글로 남긴다.)
그 미술관, 정말 너무너무 괜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림에 금박을 입힌 중세시대의 성화로부터 현대 미술까지 시대 순서로 전시도 정말 훌륭하게 돼 있었던 곳이었다. 게다가 근현대 미술도 정말 훌륭해서 내가 좋아하는 Otto Dix 를 비롯해서 좋은 그림이 잔뜩이었다.
Gran interior / Lucian Freud
위의 그림도 나를 사로잡았던 그림 중의 하나다. 그러니 상상해 보라, 내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 기사에 광분하며 잡지에 얼마나 가까이 눈을 들이대며 광분했을지를. 뭐야! 어디에서 전시를 한다는 거냣! 가자! 가야지!! 시립? 예술의 전당? 아트센터? 햐... 이렇게 좋은 전시회가 있는데도 육교의 현수막이나 텔레비전 광고는 유명한 그림은 다 털고 온 고흐나 칸딘스키만 들입다 들이대는 거였군...!
잡지에는 이어서 이렇게 나와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매우 미국적이다. 그의 그림에 나오는 인물은 피츠제럴드 소설에 나오는 주변 인물같고 도시 풍경은 소설의 무대같다. 에드워드 호퍼가 팝아트와 현대 사실주의에 끼친 영향력을 재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된다. 초창기의 작품부터 말기까지 그린 유화 47점, 수채화 35점, 판화 12점을 연대별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장년기로 갈수록 색상이 더욱 선명해지고 빛이 비치는 곳에 외롭게 존재하는 인물의 조용하면서도 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작품의 안정된 구성, 빛과 어둠,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하는 외로운 인물을 통해 많은 이가 경험하는 인간 본연의 고독한 순간들을 깊은 여운 속에서 만나게 된다. 2008년 1월 21일까지.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에서 전시된다."
네?
네?
무려 우와싱턴 디 씨?
오브 유나이릳 스테이쯔 업ㅎ어메리카?
장난...하시나요?
. . . 그냥 서울에 있는 미술관 이름이 워싱턴인가? 설마 했는데 진짜 워싱턴.... 젠장할 - . . . 요즘 우리나라 잡지, 정말 글로벌 해 주시는구나- . . . . p.s. 확실한 것 하나는 "플레이 보이 Playboy" 잡지가 우리나라에 도색잡지로 명성을 떨친 시기가 있었다는 것. 그러나 최소한 나처럼 추리소설이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경우엔 그 잡지가 그저 도색잡지(이 표현도 정말 오래됐다)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생각보다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편 추리소설의 대부분은 플레이보이誌를 통해서 세상에 소개됐다. 상업 그림에서 출발했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 글 올린 김에 이 끝까지 꾸준히 읽어준 분들을 위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몇가지 더 올린다. 당신의 고독이 뜻하지 않은 플레이보이誌 게재 화가의 그림 속에 절절하게 떠오를 지도 모르리니.
NightHawks / Edeward Hopper
ChopSuey / Edeward Hopper
언젠가 '유럽의 골목을 샅샅이'에서 마드리드에 대해 쓰면서 꼭 이 미술관에 대해 쓸텐데 그 때 쯤 이 포스팅을 잊지 말고 링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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