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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보르도] 우리는 한 버스를 탔다 / 베트남 메콩 델타와 프랑스 보르도


원래는 이 위치에 위의 제목에 따른 본문이 이어져야 하나
저의 책<내 안의 여행유전자>에  발표한 글이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그런 이유로 이 포스팅은 내용을 보이지 않게 하도록 되었습니다.

먼저 책을 읽으신 분들이나 읽으실 분들께서 참고하시고 책의 앞뒷글을 읽으시면
숨은 재미를 더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
 여행유전자 따라 지구 한 바퀴

지운 글
베트남에서 지방 여행을 떠나는 미니 버스를 탄 적이 있다. 배낭여행자의 거리에서 각자 신청한 열 두 명이 그 버스를 탔다. 버스는 오래된 여행서에 나온 ‘이 여정에선 항상 최악을 대비하라’는 정보대로 고속도로를 달릴 만 하면 신나게 타이어 펑크를 일으켰다. 당연히 예정시간을 몇 시간이나 넘기느라 관광은커녕 버스는 미친듯이 다음 숙소를 향해 내쳐 달려야만 했다. 영국, 프랑스, 싱가폴 사람, 그리고 베트남 가이드와 우리들은 한 가족같이 다투고 화해하기도 했다. 한 버스를 타고 며칠을 함께 한다는 건 한 교실을 쓰면서 함께 졸거나 함께 혼나거나 함께 시험 정답을 확인하는 친구와도 같은 동질감을 서서히 올려가는 일이었다. 여행이 끝난 뒤 어딘가 낯선 도시에서 버스 일행 중의 누군가를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서러웠던 고향의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1930년대 이후로는 다시 없었을 듯 한 제국주의의 잔재같이 민망한 횡렬 일대의 단체증명사진 셔터를 눌러대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외국 현지에서 여행자들끼리 헤쳐 모이는 로컬 여행 그 나름의 맛을 기억하며 짬짬이 버스 여행을 잘 이용하곤 했다.

Bordeaux 시내 중심에 있는 와인 상점인 La Vinotheque de Bordeaux

프랑스 보르도 시청 앞에서도 와이너리(와인 농장) 투어 버스를 탔다. 보르도 사람인 와인 가이드 마리와 두 명의 쿠바 출신 미국 할머니, 캐나다 남자 한 명, 일본 남자 한 명, 그리고 여행유전자. 와이너리 투어의 특징이 무엇인가는 첫 번째 장소에 가자마자 알게 되었다. 아무리 시음뿐이라지만 술이 들어가자, 그러니까,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마시자 공통점이라곤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와인에 관심이 있다는 것뿐이던 사람들이 서로 농담을 건네기 시작했다. 캐나다식 프랑스어를 말하는 남자에게 와이너리의 프랑스 여자들의 사랑이 쏟아져 내렸다. 그의 신대륙식 프랑스어는 구대륙의 그녀들에게 귀엽기 짝이 없는 듯 했다.

Chateau Picque Caillou, Bordeaux, France  샤토 삑까유

점심을 먹을 때의 일이다. 한 두 잔이 얼큰하게 들어간 우리 버스의 사람들은 식사를 하며 와인 두어잔을 더 마시고 있었다. 분명 처음엔 의례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을 터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었는지 우리들은 어느새 각자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까지도 언뜻 언뜻 서로 나누고 있었다. 쿠바출신 미국 할머니 자매는 촉촉한 눈가로 사람들에게 혹시 ‘카스트로’를 아냐며 이야기를 꺼냈다. 쿠바를 탈출해 미국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이제 쿠바 여행을 가게 되더라도 자기가 살던 집까지는 찾아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쿠바까지 여행을 가더라도 저기 저 집이 자기 집이고 남동생이 거기 살고 있어도 갈 수도 만날 수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눈가를 맴돌던 할머니의 눈물이 이제 뺨 위로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사과했다. "미안해요 내가 이렇게 감정적이예요..." 

Calvet Maison de N’egociant


원래 쿠바 사람들을 두고 감정 표현이 거침없다고들 한다. 반면에 할머니 자매가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미국 특히 서부의 대도시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눈물을 보이며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우울증 환자처럼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는 패배자처럼 보기도 한다. 감정의 폭이 다른 두 나라 사이에서 자매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해도 모자랄, 피붙이를 만나지 못하는 원통한 이야기를 품고.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나 정치적인 판단은 그 자리의 사람들에게 조금씩 다를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우리 버스의 일행들은 누구나 모두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실망하지 말아요,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왜 모를까요, 저도 당신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아요. 우리 나라는 둘로 갈라져 있답니다. 우리도 마음대로 오고 갈 수가 없답니다. 나의 할머니도 만날 수 없는 남동생을 오래도록 그리워 했었지요.” 그러나 우리 할머니가 결국 남동생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말은 그녀들에게 할 수 없었다.

Bordeaux, France  와인을 만들기 위해 수확하고 남은 포도. 메를로 품종이다.


그 날의 버스 여행은 그 후로 두 군데 이상 와인 농장과 공장을 돌아다니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하루 만나고 돌아서는 모래알 같은 만남인데도 어느새 우리는 그 이상의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모래알로 돌아갈 순 없었다. 우리 버스의 여행자들은 갖가지 와인을 마시며, 포도 줄기에 남아있는 포도알을 서로 따 먹여 주며, 아직 술이 되지 못 한 싱싱한 포도 원액을 마시며 농담을 주고 받고 위로하고 브라보를 외쳤다.

Bordeaux, France  보르도, 프랑스. 어느 와인샵  

‘한 배를 탔다’라는 말이 있다. 그날 하루 나와 그들은 '한 버스를 탄' 여행 공동체였다. 한 버스를 타고 낯선 곳을 보고 타고 내리며 사람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을 나누는 경험, 그건 참 아름답다. 행위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나는 그들과 안부를 주고 받는다. 보르도의 마리, 일본의 고헤이, 미국의 오키드, 마리아 루이자, 캐나다의 도미닉, 모두 안녕하신지. 그나저나 얼마 전에 쿠바 출신 미국인들의 고국 방문 문이 활짝 열린다는 외신이 들려오던데 쿠바 자매님 두 분 벌써 고향 여행 떠나셨는지 어떤지. 남동생과 격정적인 쿠바식 포옹을 나누셨는지 어떤지.

Chateau Luchey-Halde, Bordeaux, France 와인 시음


 여행유전자 따라 지구 한 바퀴
[유럽에 취醉하다] 카테고리는
골목 선술집에서 여행에 취하고 사람에 취한
유럽 중부 맥주 여행과 남부 와인 여행 코스의 여행기입니다.
[유럽의 골목을 샅샅이] 다닌 카테고리를 통합해서 쓰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글의 원 글이 올라간 날짜와 시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9/05/1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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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유전자 | 2009/06/10 20:24 | 유럽에 취醉하다 (2) (空)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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