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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몰랐던 화장실 이야기

(▲ 프랑스 지방 도시의 어느 화장실. 세로진 독특한 비율과 낡은 느낌의 문이 인상적이었다.)


‘한 줄 서기’란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외국의 어느 화장실이었는데 사람들이 꽤 많았음에도 운좋게 칸막이 문 앞엔 줄이 하나도 없었다. 귀찮게 줄을 설 필요 없이 빈 칸이 생기자마자 그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가려는 그 때였다.

사람에게는 본능이란 것이 있다. 이상하게 뒤통수가 엄청나게 따가웠다.

혹시나 싶어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다시 보니 일없이 서 있던 그 꽤나 많던 사람들이 한 줄로 서 있다는 것이 그 때서야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칸막이 문에서는 꽤 떨어져 있었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실 칸 칸 마다 문 앞에 여러 줄이 만들어져서 혹시라도 자기가 선 칸의 줄이 속도가 빠르면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들던 그런 시대라 나로서는 ‘한 줄 서기’란 개념은 상상도 못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하게 따가운 사람들의 눈빛으로 나는 그 짧은 순간에 ‘한 줄 서기’의 개념과 규칙을 단 한마디의 설명 없이도 모두 깨닫고 말았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도 다른나라에서 난 참 영문도 모르고 미움 많이 받았다. 소리없는 욕을 12종 세트로 포식하다가 본능으로 법칙을 발견하곤 했다. 아직도 생각난다. 시드니의 킹스크로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번개처럼 빠쟈쟉 뒷골을 타고 내려가던 깨달음의 순간을.  

외국인이라서 모른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도 많지만 외국인이라 모를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해 주지 않는 사람도 세상에 많고도 많다. (알면 알수록 일본이 좀 더 그런 경향이 있는듯). 인도에서 끼니때마다 손으로 음식을 먹을 순 없어도 웬만하면 왼손은 식탁 위로 올려주지 않던 센스처럼 현지 문화의 암묵의 약속은 빨리 알아챌수록 천만다행이다.


(▲ 스페인의 정육점이나 해산물 상점은 가게 구석의 길쭉한 종이 번호표를 미리 끊어야 순서에 맞춰 주문을 할 수 있다.
이걸 모르고 사람들 사이에 서서 눈치보며 기다리다가 서 있는 순서대로도 아니라는 걸 알고는
'에잇 이 줄도 안 서는 스페인 문화란!'하고 들이대고 주문을 하는데
그때서야 하필 바로 그 순간 구석의 번호표와 할머니들 손에 쥐여진 종이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세계와 우리나라의 상식이 실시간으로 동일한 시대이지만 아직도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 다른 문화권의 화장실 룰’에 대해서는 미처 모르는 점이 있다. 

서양에서는 화장실 문을 노크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사실이다. 물론 노크 없이 불쑥 문을 열라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빈 화장실은 문이 살짝 열려 있으니 그 곳으로 들어가면 되고, 문이 닫힌 곳은 사람이 안에 있다는 암묵적인 사인이기 때문에 닫힌 문에 대고 노크를 하는 건 정말 너무 급해서 안쪽의 사람을 재촉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다. 노크를 ‘거기 사람 있어요?’라기 보다는 ‘어서 나오세요!’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게다가 미국 화장실 중에 변기에 앉은 채 문에 답변 노크 손이 안 닿는 화장실도 많으니... 

그렇다면 노크도 없이 안에 사람이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여기서 또 하나의 숨은 룰을 알 수 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땐 문을 꼭 닫고 나오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문을 살짝 열어 놓고 나오는 것이 예의다. 누군가 다음에 화장실에 들어올 사람이 안 쪽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무례한 뉘앙스의) 노크를 하고 문을 여는 불편이 없도록. 뒤늦게 와서 한 줄 서기 맨 앞에 서는 사람이 그 많은 칸 중에서 사람 없는 칸이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이런 합리적이고 편리한 룰이라면 우리 사회도 세계와 실시간으로 나눌만할 듯하다.


(▲ 암스텔담 거리나 광장에서 볼 수 있는 간이 화장실은 기존의 관념을 바꿔놓는다.)

p.s. 덧덧글 쓰던 글 내용을 본문에 붙여 봅니다.

언젠가 한 번 홍콩 공항 화장실에서 우리나라 20대 여행자 두 분이 한줄서기를 무시하고 먼저 들어갔어요.
줄 서 있던 사람들이 흠흠 헛기침을 했지만 전혀 몰랐을테니까요.
나중에 외국인들 없어지고 손 씻을 때 제가 살짝
'저기 죄송하지만...'하고 이런 룰이 있는데 혹시 홍콩 여행에서도 필요할 지 몰라서 그냥 알려드리는거라고
최대한 창피하지 않도록 말씀드렸는데 '이게 무슨 개소리야'하는 식으로 절 쳐다보더니 나가더군요...
화장실에 남은 저는 기가 막혀서 무척 억울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냥 모른척 할 수도 있었지만 아주 뒤늦게야 알고나서 창피하지 않도록 돕고 싶어서였는데 말이죠 :)
행여라도 제가 이런 글 올리는 것도
'가르치려고'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저의 실수담을 통해 '알리기 위해' 올리는 것임을 꼭 밝혀둡니다.

by 여행유전자 | 2009/12/10 10:48 | 여행유전자 세계여행 잡설 | 트랙백 | 덧글(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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