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마리 다급한 짐승, 당신의 짜릿한 시원함이 이 여름을 버티게 해 줍니다.


<그 중의 최고는 녹차만의 빙수였더라>

이토록 더운 여름날엔 긴 이야기가 필요 없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페로몬을 맡은 다급한 짐승처럼 얼마나 허겁지겁 절절하게 그 백화점의 밀크 빙수를 찾아 6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는지 긴 이야기는 사절이다. 방금 나의 입 안에 들어온 이 차가운 천국을 입천장으로 살짝 혀 위를 눌러 녹이라. 그 찌르르함이 목구멍을 타고 식도를 넘어가게 허하라.  


다행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내 모교 앞 흰 눈 같던 팥빙수가 다른 집들의 흔한 자잘한 얼음 빙수로 바뀐 뒤, 갈 곳을 몰라하던 내가 아차차, 그 곳을 어찌 잊었나, 하고 이 여름을 백화점 팥빙수 카페에 의존하고 있다. 이 곳이 있어 다행이다. 이 곳은 아직도 눈을 담아준다. 맛을 보면 눈에 우유나 연유를 부은 것이 아니라 부어서 얼린 것을 갈아서 주는 것 같다. 

빨주노초파남보 젤리가 없다. 색소 시럽이 없다. 깡통 체리가 얹혀서 나오지 않는다. 우아하다 이녀석.

 
도쿄에서 내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었던 것은 육즙이 입 안에 쫘악 터져 나오던 그 음식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가게의 맛차(녹차의 한 종류. 우리말과 한자로는 말차라고 한다) 빙수였다. 녹차 아이스크림과 단팥과 새알심의 조화, 그 가는 조직의 얼음 아래 '이게 바로 녹차 빙수입니다.'라고 말하는 듯 촉촉하게 삼투압처럼 번져 있던 맛차의 흔적.


같은 가게 - 다른 지점 - 다른 날에 가서 또 먹고 찍었던 사진.
단 맛에도 중용이 있음을 알려주는 저 팥을 달라, 오늘 나에게 달라.


그러나 오늘같이 특히 더운 날엔 여름철 특별 빙수 생각이 더 절실하다. 그토록 적나라한 맛차의 세례를 받은 빙수가 또 있었을까. 사진 속의 빙수를 먹던 때 생각에 그나마 밀크 빙수로 차가운 기쁨에 뛰놀던 입 안은 추가로 뛰쳐나온 타액으로 미지근해진다. 이 빙수는 나의 favorite 이시다.

어느 와인 만화 방식으로 말하자면... "비온 날 교토의 첫 새벽이다...  아무나 손 댈 수 없게 관리하던 그 차 밭... 아아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의 옷자락에 금각사의 처마끝 새벽 첫 이슬이 나뭇잎에 떨어진다. 첫사랑 그녀의 서늘했던 목덜미..." 라고 거만하게 눈을 감아야 되겠지만

차의 향긋하고 시원함이 오래도록 온 몸을 시원하고 행복하게 한다. 무릎꿇고 대나무솔로 거품내는 것만이 다도가 아니다. 시내의 일본식 카페에 앉아 이 여름 한정 특별 녹차 빙수를 입에 머금고 눈을 감으면 여행유전자가 주장하는 짜릿한 냉녹차 빙수 다도의 세계가 열린다.
  

맛차(녹차의 한 종류) 젤리와 생크림, 과일이 들어간 녹차 파르페.
'젤리'라는 명칭으로 인한 선입견과는 전혀 다르게 생각 외로 시원하고 맛있다.

또 다른 가게의 녹차 파르페. 과일, 녹차 젤리, 새알심 말고도 녹차 카스테라 조각이 들어가 있다. 이 여름 이제야 제대로 찾아온 더위에 어찌 어찌 밀크 팥빙수로 버티고는 있었는데 집에 녹차라도 풀어서 얼음이라도 만들어 먹어야겠다...

그나저나 도쿄에 지진이라는데 그 강도에 별 사고가 없는 걸 보면 정말 일본의 내진 건축에 대한 놀라움이 생겨난다. 이번에 쓴 책인 <내 안의 여행유전자>에서도 콜롬비아 지진 취재를 갔던 이야기를 썼는데 그 수많았던 콜롬비아의 사람들에게도 안전한 집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고도 여전히 안타깝다. 사람들을 힘들게 할 여진같은 나쁜 것은 제발 도쿄건 어느 나라건 다시는 오지 말고 안전하게 이 여름이 지나가기를...




by 여행유전자 | 2009/08/10 14:30 | 도쿄 먹자 여행 (2) | 트랙백 | 덧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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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nabiko at 2009/08/10 14:34
빙수로 예술하네요.ㅋㅋㅋㅋ유전자님의 favorite 이라니..진짜 먹어보고 싶어요!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0 14:47
컴에서 나오는 열기때문에 얼굴엔 진땀이... Favorite 빙수는 저도 일본을 가지 않는한 그림의 빙수...! 맨 위 밀크 팥빙수라도 먹으러 가고 싶지만 개근상 줄까봐 민망해서 참으렵니다.
Commented by 빛의제일 at 2009/08/10 15:07
저는 빙수하면, 어렸을 때 초등도 아닌 국딩이었을 때 먹었던 50원짜리 팥빙수가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아기 밥그릇만한 크기에 얼음, 팥 조금, (아줌마 마음에 따라 미숫가루가 들어가기도 했던) 어린 시절의 팥빙수가 생각납니다.
다른 분 블로그에서 중얼대는 것 같아서 매우 죄송한데 하나 더 털어놓자면, 서른이 넘어서 어느 여름날 서울 구경 간 김에 나도 과일빙수라는 것을 먹어보자고 시켰는데 그야말로 팥이 없는 과일빙수가 나왔습니다. "팥이 없어요"라고 했다가 과일빙수라서 팥이 없다는 말에 -_-, 과일빙수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가 싶어 이후로 과일빙수라는 것은 못 시켜 먹었습니다. 녹차빙수도 팥이 없는 글자그대로 녹차빙수일까 싶어 못 시켜먹었는데, 이 포스트를 보니 그것도 그 나름대로 맛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있다가 쓰신 책 인터넷서점으로 주문하려고 하는데, 이 다음에 혹시 뵙게 되면 저자 친필싸인이라도 굽신굽신.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14
국딩의 시절부터의 많은 추억을 떠올리게 해 주신 덧글입니다 :) 아마도 처음 드셨던 얼음+팥의 심플 조합이 인상적입니다. 서울 과일 빙수가 준 충격과... 그러고보니 전 대학교때 부산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부산에서는 '팥빙수'가 아니라 '팥빙고(라고 했던듯...)'라고 한다고 말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 혹 뵙게 될 때를 대비해서 친필싸인 연습해 놓겠습니다ㅎㅎ^^
Commented by 조신한튜나 at 2009/08/10 15:30
단맛중독자인 저도 먹고 싶어지게 만드는 녹차빙수의 맛에 대한 예찬이..후와..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16
단맛에서 씁쓸한 맛으로 갈아타시는 겁니까 ^^ 녹차빙수의 힘- !
그래도 녹차 아이스크림이 같이 나오는 녀석은 달콤함을 달래실 수 있을 듯해서 다행입니다 :)
Commented by 수려 at 2009/08/10 15:35
와.... 아름답네요 정말 ㅠㅠㅠㅠㅠㅠㅠ 요즘 한약때문에 찬것도, 팥도 못먹는지라 사진을 보고있으니 더 가슴이 쓰려옵니다;ㅅ;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18
처음 알았습니다. 한약엔 팥도 안 되는군요~ 몸을 차갑게 만들까봐 그럴까요?? 쓰라린 가슴 부여잡고 조금만 참으세요 ;ㅅ;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08/10 15:55
백화점 팥빙수는 어딘지 알겠지만 끝의 두 개는 .. 아무리 봐도 교토쪽 같고..ㅠ_ㅠ 으흐흐흐흑. 집에 남아 있는 말차 가루 탈탈 털어서 해먹을까 봅니다.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20
그러고보니 계속 일본식으로 맛차라고만 표기를 했네요 :) 키르난님의 말씀처럼 우리말로 말차라고 하죠. 궁금하신 분들 있을 지도 모르니 저도 본문에 말차 표기를 더할께요^^ 그나저나 말차 가루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팥빙수- 맛있겠습니다 :)
Commented by 카이º at 2009/08/10 16:06
크오오오 말차의 씁쓸함이 느껴지는거 같네요 ㅠㅠ

엄청난 비쥬얼!!

먹고 싶어요 ;ㅅ;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21
네^^ 저 엄청난 비주얼만큼 씁쓸하고 시원하고 향긋하고 차갑답니다- (최고)
Commented by 루이 at 2009/08/10 16:10
우와 끝내주는 광경이내요... 몰래 링크해서 구경하다가 리플한번 달아보아요 ㅎㅎ 사진도 잘찍으셔서 더욱 맛있어보입니다;ㅁ;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23
루이님 감사합니다 선 몰래 링크 후리플, 많은 분들이 즐기시는 방식이죠 ^^ ㅎㅎ 사진 칭찬도 감사합니다. 아마도 잘 나온 녀석들만 골라서 올리니까 그럴꺼예요^^- 라고 겸손한 척 해 봅니다 :)
Commented by 키마담 at 2009/08/10 16:17
정말 독특해요. 맛있겠다 -ㅠ-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24
키마담님께 솔직한 덧덧글 드립니다.
.
.
.
.


정말 독특하고 맛있습니다 ^ㅠ^
Commented by 키마담 at 2009/08/11 22:43
아아아악
이거슨 염장 ;ㅂ;
Commented by marlowe at 2009/08/10 18:39
저기는 어디인가요?
(압구정동에 있는 H백화점인가요?)

곱게 간 얼음 위에 간소한 토핑을 한 빙수를 좋아합니다.
요즘은 그런 빙수를 찾기 힘들죠.
토핑을 화려하게 하려면, 녹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두껍게 갈아야 하니까요.
(10만원짜리 황제빙수도 나왔는 데, 나름 장점이 있겠지만 이미 그건 빙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이번에 내신 책에 나오는 콜롬비아 지진 이야기는 너무 가슴 아팠어요.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겠죠.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31
네 백화점은 에이치 백화점이 맞습니다. 목동점에서도 먹을 수 있죠. 저도 간소하고 우유(혹은 연유의 흔적?)맛이 나는 간소한 토핑을 좋아합니다. 우유와 단팥, 미숫가루까지 오케이. 얼음은 눈 같이 살살 갈아 나오는 것이 좋고요. 화려한 토핑은 녹는 속도때문에라도 얼음을 두껍게 갈게 만드는군요!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똑같이 눈처럼 만들어 주던 다른 가게는 눈처럼 갈 수 있으려면 큰 얼음을 사와서 갈아야 하는데 큰 얼음은 식용으로 위생적이지 않아서 과감하게 눈느낌을 포기했다고 설명하시더군요. 그런데 그게 100%의 이유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marlowe님, 가슴으로 책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MAR at 2009/08/10 20:13
앗!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먹어버리고 싶습니다. 아아...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32
그렇습니다.
여름날의 저 분들의 짜릿함은 우리 위에 군림합니다 :)
먹어 치워 주십시오 MAR 님 ^^
Commented by 현재진행형 at 2009/08/11 03:39
멋지군요. *_*

작년에는 삽질할(= 가내 수공업으로 빙수를 만들었습지요, 네) 마음의 여유라도 있었는데 올해는 ;;;;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33
가내수공업 빙수~!
현재진행형님은 정말 바지런+깔끔한 손끝을 갖고 계신 분이지요 :)

아, 그런데 그러고보니- 그 곳에서는 가내수공업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간식일지도...!
Commented by 레이 at 2009/08/11 07:17
우왓!!!! 저 녹차빙수는 진리인듯합니다....@_@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34
진리는 하나!....@_@
Commented by 이시열 at 2009/08/11 17:01
아아.... 사진......

저 책 다읽었어요~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1 17:37
흐흐...사진.....

책 완독에 감사합니다 (^^)/
Commented at 2009/08/11 18: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3 00:58
후후 그러고보니 성함이 아는 분과 같아서 순간 헛갈렸답니다 :)
일본에서 만난 빠띠셰분께서 자신있게 그 비슷하게 말씀하셨답니다.
일본 유제품에 대한 일본인의 무한 신뢰와...
버터 크림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생크림의 일본인들...
그나저나 그냥 녹차 빙수보다 저 진한 맛차 빙수의 뒤끝없는 쌉쌀함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chokey at 2009/08/11 23:21
우왕- 완전 빙수 최고네요. 팥빙수는 별로 안좋아하는데 녹차빙수 이런건 진짜 완전 땡긴다는- 더운여름에 사진만으로도 이 늦은 저녁에 마구마구 식욕이 도는군요!!!!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3 00:59
저도 밤마다 괴롭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너무나도 강렬하고 뭉근한 열이 나기에
저 녹차 빙수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
Commented by Cboyblues at 2009/08/15 00:28
컴퓨터에게도 팥빙수를 먹여주고 싶죠 그럴때는 - ㅎ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5 02:02
결국 이 여름 컴퓨터가 아니라 제가 직접 맨 윗 집 밀크 팥빙수를 연속 3회 먹고 왔습니다. 그러자 밀크 팥빙수빨이 떨어져 그동한 밀크팥빙수로 근근히 맛차 빙수의 욕망을 참아오던 것이 이제 불가능해졌다는 슬픈 뉴스를 전해드립니다.
Commented by 나예♡ at 2009/08/16 13:32
우와아 밀탑이네요 ㅠㅠ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8/17 05:00
네ㅡ 나예♡님 :) 어제같은 날씨엔 아마 무----------척 줄을 길게 섰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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