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줄에 한국팀 응원석인 줄 모르고 표를 산 일본 남자(고등학생으로 추정)들 여덟명이 일장기를 그린 머리띠를 결연하게 두르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전까지는 한국 응원석인 줄 모른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기세가 등등하고 일렬로 워낙 결연하고 압도적으로 앉아 있었던지라 나는 '일부러 한국 응원석의 표를 사서 최전방에 침투한 극렬 우익분자들인거 아냐?'하고 처음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관찰했는데...
파란 옷에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자리에 모여 앉기 시작하자 이들의 어깨는 약 1mm씩 보이지 않게 좁아졌다. 단지 좌석 예매때 홈팀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것 치고는 1인당 70달러 가격도 만만찮은 가혹한 자리였다 흐흐흐.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한국팀이 이겨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대-한민국을 외칠때마다 그 친구들은 일어선 사람들이 만든 그늘 속에서 일렬로 얌전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일어난 앞줄 사람들이 들썩이며 춤이라도 출 때엔... 그들은 바로 눈높이에서 들썩이는 엉덩이를 보고 있어야만 했으니...
(심지어 태극기 이동 세리머니도 함께 하여야만 하는 자리)
오늘 포스팅은 여행유전자가 이치로 몸개그를 탄생시킨 바로 전 4-1의 한일전을 샌디에고 경기장에서 직접 보았던 이야기다. 경기가 끝나고 곧장 올렸다면 더 좋았겠지만 일정이 빡빡해서 결국 지각글이 됐다 ^^
▲ 샌디에고 펫코팍(펫코파크)가 가까와 졌다는 신호가 네비게이터에 나타날 즈음부터 주차장 직원들의 호객과 안내가 시작됐다. 처음엔 10달러에서부터 시작한 가격이 경기장이 가까와질 수록 15달러, 20달러까지 올라갔다.
▲ 경기장 바깥쪽으로 이미 방송사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현장에 도착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뉘엿뉘엿 해는 졌지만 야구장은 대낮의 그것보다도 환하게 빛난다.
▲ 역시 메이저 리그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답게 경기장도 멋지게 생겼다. 일본
도쿄돔(클릭?)의 아기자기함과는 사뭇 다르다.
▲ 야간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은 두 눈에 벅차고도 남는 밝은 빛과 열렬한 색조로 일단 사람이란 짐승의 눈부터 흥분시킨다. 세상의 그 어느 자연의 녹색보다 더 선명하게 빛나는 야구장의 녹색 다이아몬드가 나타난다. 선수들이 하나 둘 나타나 공을 던지며 연습하고 몸을 푼다.
▲ 경기장 3루쪽 외야에 western metal supply co. 회사 건물이 뜬금없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 건물 옥상을 비롯해서 각 층의발코니엔 자연스럽게 펫코 경기장 야구를 볼 수 있는 좌석이 '제대로' 설치돼 있다. 야구장을 세우면서도 100년이 넘는 이 건물의 역사를 존중하느라 차마 허물지 못하고 그대로 놔뒀다고 하는데 지금은 야구 관련한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관중석이 하나둘 채워졌다. 역시 푸른색 계열은 우리나라 응원단. 주로 LA에서 샌디에고까지 응원온 사람들인데 엘에이 자체 여행사를 통해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 우리에게 진 한을 풀겠다는건지 멕시코 (야구 관계자로 보이는) 응원팀이 뜬금없이 일본 응원 복장을 하고 나타나기도.
애국가가 울려퍼지고 ...
▲ 선수 소개 사진들이 하나같이 이상하게 나와서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면서도 낄낄 웃었다. 추신수 선수는 그래도 괜찮게 나온편이고 그나마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래도 나은데 일본 선수들은 하나같이 눈을 치켜 뜨고 해맑게 위를 쳐다보며 코믹하게 웃는 사진들이었다. 일본팀 사진을 찍는 사진사가 '눈을 크게 뜨고!, 위를 보고!, 웃을 것!'을 강요했나 보다. 그들의 너무나도 해맑은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 전광판에 경쟁적으로 나타난 양팀 응원 모습이 또 현장의 백미.
경기 시작
헉...그... 그런데 저쪽 일본 응원팀 한 가운데, 달걀의 노른자처럼 홈팀을 깜박 잊고 일본 응원팀에 좌석을 예약하고 독립군처럼 한국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앞 줄 일본애들만 재미있게 여길 것이 아니었다.
이치로 몸개그, 현장에선 한 번 더를 외쳤다.
이른바 '이치로 몸개그'라고 불리는 바로 그 장면. 실제로 현장에서 봉투수가 1루의 이치로를 견제하는 시늉을 하자 이치로는 후다다닥 '위치로!'. 마침 1루쪽인 한국 응원단은 이치로의 바로 등 뒤에서 모두가 일어서서 목이 터져라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쳤다. 이어서 관중석에 화답을 하듯
봉투수의 '한 번 더' 견제 시늉이 이어지고 이치로는 한 번 더 위치로 굴렀고 관중석은 빵 터졌다. 워낙 일치된 응원이라 투수에게도 들리고도 남는, 서로 인터랙티브하게 교감한다고 느꼈던 현장이라 이치로 몸개그는 봉중근 투수와 한국 응원팀이 합작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나중에 TV 중계를 보니 관중석 집음 마이크가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 경기장을 울렸던 '한 번 더'와 빵 터지는 현장 웃음이 방송으로는 전혀 전달돼 있지 않아 아쉬웠다.
한일전 속의 한일전
공격말고 수비시 응원이 가장 불붙는 순간은 역시 이치로가 타석에 섰을 때다. 일본 응원석에서는 일본 응원석대로 이치로가 타석에 서기 전부터 난리고 한국 응원석에서는 한국 응원석대로 특별히 더 소리를 질러준다. 특히 이 날 경기에서 이치로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모습으로 굴욕 움짤만 남겼다. (이러고 끝났어야 하는데...)
'오 필승 코리아' 대신 '대~한민국'을
이상하게 이 날 '대~한민국' 구호를 외칠 땐 잘 풀리던 경기도 '오 필승 코리아' 노래를 부르면 잘 안 풀리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옛날에 우리나라 응원가 없던 시절이면 어느 스포츠 경기든 불렀다는 '아리랑'이 경기를 축 처지게 했다는 썰이 있는 것처럼 오 필승 코리아는 축구랑은 잘 맞아도 야구에서만큼은 투타의 리듬을 엇박자로 깨는 이상한 악영향이 있는 듯. 원래 별 것까지 다 관찰하는 나 혼자의 생각.
그밖에, 현장에서 가장 큰 야유를 불렀던 일본의 이대호 고의사구, 현장 사람들은 다 알았는데 본인만 몰랐다는 조지마의 퇴장, 김광현 기용에 감동받은 관중들 등의 뒷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승리. 이 때 마운드에 모인 선수들끼리 태극기 세리머니를 했던 모양인데 막상 여행유전자는 보지 못 함. 이 승리감이 결승전까지 계속됐다면 더 좋았을테지만 이 날의 기억만으로도 즐거운 한일전의 느낌을 잊지 않고 싶다.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렇다면 제목과 링크만 남겨두고...일본에서 만난 토호신기 , 도쿄돔에서 만난 승짱 , 도쿄에서 한류스타들을 만나다 , 샌디에고 펫코팍에서 만난 wbc 한국 대표 선수단마지막으로... 지난번 엄지손가락의 용도를 밝히는 포스팅(클릭하면 새 창 열림)에서 미리 살짝 소개했던 세계 1위 기록을 가진&n ... more
근래 2주동안은 WBC보느라 기분이 참 좋았어요. 결승전에서도 9회말에 동점을 냈을 때 만족했습니다.이 정도까지 즐겁게 해주었으면 결과가 어찌 되든 그대들이 최고다 라고 속으로 박수를 쳐주었네요. :)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너무나도 멋진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 때문에 생활에 활력을 얻었네요.
생생한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
미국이 이기고 싶어 만든 경기이고 물주는 일본이라고 하더니 역시나 심판을 탓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물질의 권력이나 국력 뭐 이런 경기 외적인 것이 경기 내적인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여기서 말할 수준 그 이상의 안타까운 정글의 법칙인 것 같고요... 아무튼 저는 경기 멋지게 한 한국팀만 생각하면서 축하하고 고마와 하고 싶습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중에서 최고 흥행카드가 바로 한일전일 것 같으니 그네들도 다음 번 경기에 둘 중 하나 빠지면 당황스러울 겁니다 :)
아. 두근두근한 시간들이었어요. 아쉬움이 남지만,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
이번꺼는 wbc한일대전 인거같아요 ㅋㅋ 월드베이스볼이아닌
한일베이스볼 ㅋㅋ 수고하셧어요 이치로 몸개그 작렬 캬컄캬컄ㅋ
이치로의 '위치로~' 장면보고 국내에서도 빵빵 터졌는데 경기장도 그러했군요. ㅋㅋㅋㅋㅋ
야구장 사이에 회사 건물이 껴있는 것보고 상당히 놀랬습니다.
예전에 야구 게임할때 미국의 야구장들 보면서 '왜저렇게 지었지?' 하고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제 의문이 풀리네요. ^^
우리도 야구장 좀 지어야하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조만간 꼭 돔구장 지어질 것이라 믿어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야구 아직 경기장에서 본적이 한번도 없는데.. 너무 멋지네요..
사람들 들어올린 팔 사이로 보이는 구장이 이렇게 두근두근거릴줄은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