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돔에서 만난 승짱, WBC 예선 1위 기념 포스팅

오늘, 웬만한 시름을 달래주거나 혹은 현혹시킬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겼습니다. 중계를 마친 방송 해설 위원의 뺨이 붉게 상기될 정도로 WBC 아시아 예선 1위의 기쁨은 극적이었죠. 바로 그 기쁨의 현장이 된 도쿄돔에서 여행유전자가 승짱에게 포옥 빠진 이야기가 오늘 WBC 예선 1위를 기념하는 저의 포스팅입니다.


도쿄를 여러 번 갔어도 도쿄돔에 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도쿄돔에 입장하는 줄은 길고도 길었습니다. 마침 저는 이승엽 선수를 취재온 우리나라 방송팀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다행히 그 기나긴 줄을 서지 않고 취재석 근처 좌석으로 직행하게 됩니다. 줄을 거슬러 올라가며 보니 야구 카페도 보였습니다. 마치 하드락 카페에 뮤지션들의 기타와 음반이 전시돼 있듯 야구 카페엔 유명 선수의 유니폼과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도쿄돔으로 들어간 순간,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 솟구쳤습니다. 귀가 왕왕 울리고 가슴이 갑자기 확확 뛰기 시작합니다. 그 때까지 저는 야구장에 온다는 생각만 했지, '도쿄돔'에 온다는 생각은 못했던 거죠. 당연히 뻥 뚫려 있어야 할 야구장의 하늘 부분은 하얀 돔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돔형 야구장은 이런거구나'

마치 실내 아이스 링크에 온 듯 하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넓습니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녹색의 다이아몬드가 정말 바로 눈 앞에 있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습니다.

에비스, 아사히, 기린 등 각 브랜드의 맥주를 파는 언니들이 맥주가 든 가방을 매고 호객을 하며 돌아다닙니다. 발랄만점입니다. 물론 여행유전자는 도쿄의 맥주 에비스를 한 잔 사고 맙니다.

도시락을 파는 언니에게서는 도시락을 샀습니다. 멋지게 생긴 모습에 비해서는 맛은 덜합니다. 아무래도 경기장에서 파는 도시락이니 맛이 우선은 아니겠지요.

스포츠국의 지인께서 오셔서 도쿄돔의 특징을 이야기 해 주십니다. 야외 야구장이 아니라 돔형이라 있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하필이면 타자가 친 공이 돔 지붕에 설치된 카메라에 맞게 될 경우, 어떤 것에 맞으면 파울, 어떤 것에 맞으면 홈런으로 인정한다는 룰이 있다는 겁니다.

드디어 우리 이승엽 선수가 등장합니다. 전광판에 그의 이름이 반짝였습니다. 제가 갔던 그 경기는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미국의 MLB 팀이 하는 경기였습니다. 정식 시즌을 오픈하기 전에 일본과 미국 프로야구 협회가 만든 이벤트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 등을 여는 것입니다.

어쩌면 짧은 여행길에 들른 것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를 그런 감동이 갑자기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저도 일본에 일하러 가서 오래 머물던 중이었기 때문에 남의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사람들과 항상 만나고 상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던 중이었죠. 그래서 더더욱 도쿄돔의 승짱에게 감정이입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승엽 선수, 외국에서 꿋꿋하게 잘 뛰고 있습니다'라고 타성적으로 무감각하게 말 할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저로서는 마냥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도쿄돔에 모인 사람들 90% 이상은 일본 사람들이죠. 선수들도 90% 일본 사람입니다. 일본 사람들만 모여서 왕왕 울리는 도쿄 돔에서 일본 선수들 사이에 '홀연히', 정말 말 그대로 '홀연히' 나타난 이승엽 선수를 보면서, 와,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첫 경기 때 얼마나 위축됐을까, 자기를 응원하던 그 많던 팬들이 없이 혼자 생뚱맞게 저 곳에 선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데 그는 또 그것을 얼마나 멋지게 이겨냈는가,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휘몰아치는 것입니다. 꼭 그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외딴 곳에 우뚝 선 한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화이팅 화이팅 이승엽'이라는 한국어 발음을 일본 팬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날 승짱은 초반 삼진 아웃을 몇 번 계속했고 나중엔 크게 몇 번 휘두르기도 했지만 모두 아웃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일본인만의 인파 속에 홀연히 나타나 경기를 하던 그는 타국 땅에서 혼자 독립군으로 일하고 있던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 승짱은 1군과 2군을 오가는 드라마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부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이번 WBC 에도 나오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도쿄돔에서 벌어진 WBC 경기가 끝나고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저에겐 그 다이아몬드에 당당하게 서던 이승엽 선수가 다시 한 번 생각나 기념으로 포스팅을 올려 봅니다. 도쿄돔의 그 날 이후로 치면 무려 1년만의 포스팅입니다.

by 여행유전자 | 2009/03/10 01:35 | 도쿄 먹자 여행 (2) | 트랙백 | 핑백(4) | 덧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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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다. 뉘엿뉘엿 해는 졌지만 야구장은 대낮의 그것보다도 환하게 빛난다. ▲ 역시 메이저 리그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답게 경기장도 멋지게 생겼다. 일본 도쿄돔(클릭?)의 아기자기함과는 사뭇 다르다.▲ 야간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은 두 눈에 벅차고도 남는 밝은 빛과 열렬한 색조로 일단 사람이란 짐승의 눈부터&n ... more

Linked at 여행유전자 따라 지구 한 바퀴.. at 2009/06/05 01:45

... 니지 않은가 싶어 두 글자를 뺐다.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만난 동방신기>라고 하면 동방신기를 직접 만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지난 번에 <일본에서 만난 승짱>이라고 쓴 글이 있으니 자매 제목 삼아 낙점!언젠가 <도쿄에서 한류 스타들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것과 ... more

Linked at 여행유전자 따라 지구 한 바퀴.. at 2009/12/03 11:06

... 낚시를 한 것처럼 될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일들도 있었으나 그렇다면 제목과 링크만 남겨두고...일본에서 만난 토호신기 , 도쿄돔에서 만난 승짱 , 도쿄에서 한류스타들을 만나다 , 샌디에고 펫코팍에서 만난 wbc 한국 대표 선수단마지막으로... 지난번 엄지손가락의 용도를 밝히는 ... more

Commented by 참깨군 at 2009/03/10 02:38
와 정말 이승엽이라고 외치네요. 하하 ^^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0 03:44
들리시나요^^ 들으셨군요^^
참깨군님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 오세요 :)
Commented by 현재진행형 at 2009/03/10 03:29
정말 대단한 이승엽 선수! 저 분 방송을 동네 참치횟집에서 친구랑 보다가 손님인 저희는 참치회도 잊고, 횟집 아저씨도 회칼 놓고 손 모아 응원하던 기억이 나네요. ^^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0 03:46
이승엽 선수, 그 때 스포츠 국의 지인께서도 입술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죠. 일본에 진출해서 밀리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실력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건 정말 '뚝심'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 날 저 현장에서 그것을 생각하자니 겸손하면서도 뚝심있는 이승엽 선수가 너무너무 멋졌던 것이죠.진짜 응원합니다 :)
Commented by 친절한 라니씨 at 2009/03/10 09:08
아..감동의 물결이 마구마구 몰려오네요.. 저 역시 한때는 유일한 한국인 사원이었던 적이 있어서 승엽형님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04:47
네 정말 현장에서 그가 등장할 때
갑자기 광팬이 됐습니다 =)
Commented by Noel at 2009/03/10 09:19
와아- 감동적인 순간들이에요. 정말로 '홀연히' 나타나 배트를 휘두르는 이승엽 선수. 사람으로서도 선수로서도 너무 대단한 사람이에요.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04:58
그렇죠
사람으로서도 선수로서도...!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3/10 11:25
웬지 이승엽은 타석에 선다는 것만으로도 뭉클하게 만듭니다.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04:59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승엽 선수에게 갖는 감정은 응원 뿐 아니라 어떤 신뢰가 깔려 있어서 더욱 그렇게 뭉클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reina at 2009/03/10 12:51
아- 정말 저 큰 도쿄돔에서....

안그래도 WBC하는데 요미우리 선수들 나오면
이승엽 친구들이야- 이러면서 봤었다는..;;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05:07
그러네요^^
이승엽 친구들^^
이거 갑자기 일본 대표팀 요미우리 출신들이 친근해지는데요?^
Commented by skywalker at 2009/03/10 19:46
아- 저도 3년전에 Dodger stadium에서 최희섭이 다져스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을때
1루석에서 구경하고 있었더랬죠
모두들 희섭초이를 외쳤고 모두 최고라고 소리질렀었죠
게다가 일본처럼 발랄한 아가씨들이 파는것도 아니고 비쩍말라빠진 불량청소년스러운 고딩들이 파는
김빠지고 뜨뜻해져 버린 맥주와 그 유명하다는 "다져독" (맛으로 봐서는 맛없기로 유명한 것인듯)을
우적우적 씹으며 그때 봤던 경기도 재미있었고
삼성과 기아는 저리가라 할 정도의 라이벌인 다져스와 자이언츠 경기를 멕시칸친구들 가득한
외야에서 야구구경반 싸움구경반 자이언츠 욕하며 봤던것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어김없이 파울볼이나 홈런볼은 "아줘야"하더군요
거기서도 "아줘라"처럼 뭐라 외쳤던거 같은데 생각이 안나네요 ㅋ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05:12
마침 희섭 초이 홈런 때려주는 재미있는 경기, 딱 좋은 날에 가셨네요.
미국에서는 불량청소년고딩 판매, 게다가 뜨뜻한 맥주인가요?^^
그리고
그 유명한 다져독이 맛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맛있어서 유명한 줄 알았다는 ㅠ ㅠ )
그런데 '아줘라'?는 무슨 뜻인가요??
Commented by rumic71 at 2009/03/11 10:22
부산에서는 파울볼을 누가 잡으면 그거 아이들에게 주라고 하거든요.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14:37
오오오오!

하지만 파울볼은 몰라도 홈런볼은 눈물 나겠습니다ㅠ ㅠ
아아들 미워!^^
Commented by marlowe at 2009/03/11 09:22
일본의 대표음식은 도시락, 그것도 에끼벤이 아닐까 싶어요.
열차도시락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도 있던 데, 하나같이 먹고 싶은 것들 뿐입니다.
지금 단식 중이라 꽤 힘드네요. OTL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14:35
신칸센에 앉아서 에키벤을 먹는 기분

갑자기 생각나서 기분 좋습니다 :) 전 열차 여행을 아주 좋아합니다.

단식은 어쩐 일로 하시는지 모르지만... 저에게 필요한 것을 대신 하고 계시네요. 삼가 애도와 부러움을 표합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9/03/11 14:39
몸을 정화시켜보려고 하는 중인 데, 요즘 관장을 해서 장이 피곤하군요. - . -
Commented by 줄라이안 at 2009/03/11 17:03
앗, 저도 그 프로그램 얼마전에 케이블에서 봤어요. 일본은 참 세심하구나를 다시한번 느꼈지요.
Commented by 줄라이안 at 2009/03/11 17:05
wbc의 감동이 새록하군요! 이승엽 선수도.. 그냥 응원해주고 싶은 인물이구요.

'멋지게 생긴 모습에 비해 맛은 덜한' 도시락이라고 하셨지만, 맘에 가네요. ^^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2 02:11
:)
이승엽 선수는 정말 사랑받는 사람이란 생각이 듭니다
Commented by 같은 동네 at 2009/03/11 22:31
작년 겨울에 대구에서 난타보러 갔다가, 이승엽 무대에 올라와서 공연에 참가하고 그랬는데 ㅋㅋ 동네 아저씨 같더니 일본가서는 저래 야구를 잘 하네 ~~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2 02:12
흐흐흐 재미있으셨겠습니다
난타 무대에 올라선 동네 아저씨같은 이승엽 선수
그래서 더욱 사랑받고 응원받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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