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6일
안동에서 생각한다, 진짜 양반은 누구인가. / 한겨울 안동 여행 ⑤

군자정은 정자(丁字)형 건물으로 사대부가의 사랑채 정자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다. 내부에 임청각 현판과 여러가지 시관이 걸려있는데 모두 유명한 분들의 것이란다. 임청각은 집이 국가가 지정한 '보물'이다.


현판 글씨가 퇴계 선생의 글씨라고 알려주신다. 그러나 이 곳에서 나는 임청각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됐으니 그것은 퇴계 선생의 서체로 쓰여진 임청각 글씨가 아니라 그 안에 모셔져 있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사진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말이 떠오른다. 이 집 '임청각'은 99칸 대궐같은 집이었다. 우리 말에 '99칸'이란 말은 엄청난 부자, 세도가를 말한다. 왜냐하면 임금님이 사시는 궁전만 100칸 이상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궁이 아닌 개인 저택 최고의 집이 '99칸'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99칸 고성 이씨의 종손 이상룡 선생은 그 기득권을 모두 버린다. '공자 맹자는 나라를 되찾은 뒤 읽어도 늦지 않다.'하셨고 '나라가 망하는데 가묘만 지킬 수 없다'하여 마당에 노비 문서를 모아 불사르고 집안의 종들을 해방시키며 보상금까지 지급하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집안의 위패를 땅에 묻고 만주땅으로 떠나셨다. 그래서 이 댁의 종손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위패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기존의 '양반'들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파격 중의 대 파격이다. 진정 이 분만한 양반이 있겠는가? 이 분이야말로 진짜 양반이시다.
이상룡 선생님께서는 임시정부에서 국무령(대통령과 같은 것이라고)을 맡으며 독립 운동을 하시다 1932년 중국에서 돌아가시면서 '조선 땅이 해방되기 전까지는 데려갈 생각을 마라. 조선이 독립 되면 내 유골을 유지에 싸서 조상 발치에 묻어 달라. 외세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더욱 힘써 목적을 관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한다. 멋지다, 이 양반. 진짜 멋진 양반이다.



여기서 안타까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명문가의 영화로움을 집어던지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이상룡 선생과 고성 이씨 일가들은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 일제는 일제시대 중앙선철도 부설 때 이 집안이 독립운동가의 소굴이라 하여 보복성으로 일부 부속건물을 철거하며 이 집 (원래)마당과 대문 사이에 철로를 가로 질러 놓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고 보니 지난밤에 나는 자면서 기차가 달려가는 소리에 몇 번 깼다 잠들었다.바로 집 앞으로 기찻길이 나 있다. (반면 곰의 심장은 자는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한다.)
(솔직히 나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어디 무덤에 말뚝을 박았네~' 뭐 그런 이런 이야기가 하도 많아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슬쩍 '그렇긴 하지만 겸사겸사 원래 철로가 지나갈 길이었겠거니...'했다. 그런데 이후로 만난 다른 집안의 안동 분들도 철로가 그 곳을 지나갈 하등의 이유가 없이 일제가 독립운동을 말살하려고 일부러 그리 한 것이란 얘기를 입을 모아 나에게 들려주셨다.)
그래서 현재 이 집은 더 이상 99칸이 아니라 50~70여칸으로 남았다. (한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한다고 아재께 캐물어서 알게 됐다.) 원래 이 집의 마당과 행랑채와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는 이미 철도가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철도가 거기 지나는 만큼 후대엔 자연스럽게 안동댐을 만들며 수위가 오른 낙동강 상류 물길이 바짝 위로 올라와 있다.
"결국 일제가 원하던대로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군요" 나는 기가 막혀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보상 문제가 복잡하니까... 하며 아재는 말꼬리를 흐리신다. 결국 일제가 원하던대로 된 것이다. 요즘엔 친일파 자손들이 자기 땅을 찾으려고 소송을 하는 세상, 그러나 독립 운동을 했던 집안들은 가세가 기울고 자손들 교육도 여의치 않았으니 이 댁 역시 여유롭게 살아왔을 리가 없다.


조용하게 지켜지는, 100년 차이로 건립된 교토의 문화재 건물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복잡하다.
p.s.
현재 임청각은 국가에 귀속돼 천문학적인 유지 및 보수 비용은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독립 유공자에 대한 해방 뒤의 상당한 문제의 처우와는 별개로, 임청각이라는 건물에 한해,
'(임청각 건물을) 국가가 돌보지 않는다'고 쓴 적이 없음에도 오해의 의견들이 있는 것 같아서 1월 22일 덧붙입니다.
500년 고택 안동 임청각에서 아침 밥상을 / 한겨울 안동 여행 ④[24]
하룻밤새 임청각 온돌에 중독되다! / 한겨울 안동 여행 ③[16]
안동에서 안동찜닭을 먹다 / 한겨울 안동 여행 ②[16]
안동 구시장에 돔배기가 있니껴? / 한겨울 안동 여행 ①[14]
[hertravel의 아름다운 우리나라 여행 정보 - 임청각으로 가는 길]
임청각 臨淸閣
1.
고성 이씨 임청각파 종택
법흥동 20 / 054) 853-3455
법흥 5거리 갈라지는 길 중에서 동네 주차장처럼 돼 있는 쪽으로 들어가면
주차장 끝에서 내려가는 작은 길이 있다.
2.
홈페이지 http://www.imcheonggak.com/ <= 이 곳에서 오늘 글의 역사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3.
이름을 가져오셨다는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어보고 /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본다'.(안동시 무료 배포 관광 지도에 제가 뻘건 화살표로 그려 놓은 곳 보이시죠? 거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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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1/16 09:32 | 한 겨울의 안동 여행 | 트랙백 | 핑백(2) | 덧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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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청각</a>을 나와 철길을 따라 두어 걸음 걸으면 눈 앞엔 아기가 잘 자고 있을 오막살이 대신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한 눈에 보기에도 유구한 역사의 탑이 중앙선 기찻길 소음 방지벽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네 담벼락과 기찻길 사이의 좁은 골목길을 막고 서 있다. 대한민국의 국보 16호 신세동 칠층 전탑이다. 왼쪽은 임청각과 같은 고택. 고택 바로 문 앞의 국보 탑, 탑 바로 옆의 기찻길 방음벽,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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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국군의 모체가 독립군이 아닌 세상인데...
이씨 성을 가진 대단한 명문이 나라가 망하자 재산을 정리해서 만주로 넘어가 그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해 만주에 군사학교를 세웠다고 들었어요. 아마 지금으로 환산하면 60억인가 600억인가 그 쯤된다고 들었습니다.
친일파인척 하면서 뒤로 독립군 도운 양반들도 있고'ㅅ'...
이런 애기 들을때마다 너무 씁쓸한게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전혀 대접을 못받고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고 있다는 거지요.
hertravel님의 여행기에서 묵직한 '앎'을 하나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가슴이 아련해지네요.
이런 애환이 서린 장소였을 줄이야...
까날님/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지만 이것이 수업이라면 오랫동안 기억하고도 남을텐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
현재진행형님/ 저기 저 선생님 3대가 독립운동 자금으로 집까지 팔려는걸 문중에서 대신 사 주겠다 등등 말렸다는데 실제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눈치 보니까 좀 복잡한 것 같습니다. 나라에 귀속돼서 국가에서 보존을 해 주고 있다고 들었어요. 얼마전 기와를 갈았는데 기와를 가는데만 몇 천 만원인가가 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키르난님/ 그런 정말 드라마 같은 일이...! 평생을 오해받으며 사셨을 텐데 기록을 찾아서 다행입니다. 가세 기울어 고생, 오해 받아 고생... !
비공개님/ 그저 선생의 일화라도 사람들이 모두 그 정신을 알도록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Rancelot님/ 저런 기개와 실천 능력, 사회 의식, 멋진 남자!
mminsq님/ 저 분의 일화를 돌이켜 현재의 사회상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우리 역사에 저런 멋진 분들이 분명히 여기 저기 계셨다!'라는 벅찬 기쁨도 느꼈습니다 ^^
☆션☆님/ 저렇게 멋진 분이...! 조선 사람 멋진 사람들이야...! 자긍심도 느껴봅니다 ^^
Mh_Kāśyapa / ㅠ.ㅠ 이상룡 선생 같은 분들이 더 빛을 받아야 우리 안에 자긍심이...
아르메리아님/ 아마 그 친구분이 말하신 그 아나키스트가 바로 이상룡선생같은신데요! 이씨 명문, 독립 자금, 군사학교... 선생이 만주에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하셨다고 하니까요... 만주에 가서도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논어를 가르쳐주던 이 독립 운동 가문 후손들은 막상 해방 뒤 기울어진 가세로 교육을 받기 위해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기도 했다고 하는군요.
섭씨0도/ 안타깝지요 :) 저도 임청각에 내려갈 때까지는 99칸 고택이라는 점에 이끌렸을 뿐인데 알면 알수록 깨달음을 주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
비공개님/ 뭘요- 저야 감사하지요^^ 많은 분들이 알았으면 하면서 올렸던 글이니까 말입니다 :) 추천글로 정리해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
Jishaq님/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권력자들도, 우리들도... 어떤 이에게는 반성을...어떤 이에게는 자부심을...어떤 이에게는 삶의 지침을...
바비님/ 네 반갑습니다. :)
비공개 추천님/ 감사합니다^^ 공감하셨다니 감사합니다 :)
아메니스트님/ 저는 성함만 들어 알고 있는 정도였고 임청각과 관계가 있는지,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추구하셨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다큐멘터리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사는 동네가 그런건줄 몰랐네요..
아.
그런데 저기나와있는 안내도를 가지고 실제로 와보시면 심하게 당황하실수 잇으니 주의
그리고 임청각옆에있는 7층 전탑도 상당히 의미 있는 유물이지요
어른들께 어릴적 들은 얘기인데 임청각에 철로가 들어선 이유는 풍수지리적 근거도 있었다 합니다. 임청각이 위치한 곳은 풍수적으로 누에고치가 실을 풀어내는 형상이라 인물이 끊임없이 나온다 해서 그 기운을 끊어버리기 위해 철로를 일부러 놓았다고 해요. 임청각 옆에 있는 7층 전탑도 굉장히 오래 된 탑인데,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그 충격으로 조금씩 균열이 가 있어서 볼때마다 안타까웠답니다.
참 기가 찰 노릇이지요~
일제는 임청각을 댕강 잘라 철도를 놓았고, 우린 바로 그 옆에 댐을 쌓기위해 문화재를 훼손해놨으니... 임청각의 경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아직 더 놀랄 일이 있나보네요;; 다음 포스팅 기다리겠습니다 ~
월광토끼님/ 읽지 못한 책인데 제목과 정말 잘 맞는 군요. 대장부가 멋있어요...:)
됴취네뷔님/ 흐흐 그래도 저 '지도 자체'는 정확하게 나와 있는 걸요. 들어가는 입구 주차장만 봐서는 도저히 나타날 듯 보이지 않을 법한 상황이라 저도 저기서 한 몇 바퀴 돌다 들어갔답니다 :)
비공개님/ 감사합니다. 저도 가서 읽었어요. 동감합니다 :)
미션루스님/ 아깝습니다^^ 관리 아재께서 독립 기념관 추천하셨는데 멋대로 다니던 여행이라 기념관을 못 갔습니다. 7층 전탑 이야기는 다음 글로 올라올 것 같습니다 :) 깜짝 놀랐었지요-
Monaca님/ 안동출신이세요? ^^ 반가우셨겠습니다 :) 정말 풍수가 아니더라도 그 어르신의 교육을 받은 자손이라면 뭔가 인물들이 계속 배출됐을 지도 모르는데 집만 끊어 놓은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전탑 추천 감사합니다. 중요하다 하시니 다음 글을 쓰는 데 더 기분 좋게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됴취네뷔님/ 아 그런가요? 저는 몰랐습니다. 그럼...글을 쓰기 전에 한 번 확인을 해 보고 글에 덧붙여 보겠습니다 :)
한심곰탱이님/ 많이 안타깝지요...^^... 그런데 그래도 우리 나라가 제 손으로 이 집에 위해를 가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댐이란 것이 뭐 어쩔 수 없지 않나 싶어요 :) 지금 이 집의 유지 보수비는 모두 국가에서 하고 있답니다 :) 이 점을 다시 확실하게 제가 써 놓아야 할까 봐요 :)
역성혁명님/ 맞습니다^^ 지금까지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지만...나라가 더 우아해지면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더 커지겠지요. 기대해봅니다 :)
이기자님/ ^^ 아닙니다 저도 쓰면서 고민되더군요. 불어에서 온 거니까 불어로 정확하게 하면 노블리쎄 오블리주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 고민하고 노블리세 오블리주, 노블리스 오블리제, 노블리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우블리제 한참 헛갈리다 쓴 것입니다 :) 뭐가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징한 비공개님/ 머리 돌아가는 것이 간악한 데가 있죠? 그런데 우리 민족이 군림하는 위치에 있다면 어떤 식으로 레지스탕스 집안을 압박했을까 상상하면 못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사실 ^^ (그런데 군림의 역사가 없었다는 거-)
제가 강건너 오른쪽 동네에 살았기에, 학교 다닐 적에는 버스로 다리를 건너며 볼 때마다 씁쓸해하던 바로 그 임청각이로군요.
그나마 국가에서 관리를 해주니 다행입니다만, 그 옆을 기차가 달릴 때마다 집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전탑이 안동에 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임청각 앞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안동이 문화재가 많지만 그다지 잘 보존되는 것 같지 않아서 많이 아쉬웠거든요.
솔직히 말해 대운하 같은 데 들일 돈이 있다면, 우리 나라 문화재들이나 유적지나 제대로 돌봤으면 하는 마음이랍니다. -_-
그렇군요 강 건너 오른쪽, 저도 야식 맥주를 사러 다리를 건너자마자 있는 무슨 마트에 갔었답니다 :) 근처 pc방에서 그 때 쓰던 여행기도 올리고요 :)
정말 임청각과 전탑을 오며가며 볼 때마다 많이 안타까우셨겠습니다. 그래도 여왕 방문 이후로 안동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그나마도 정말 다행인듯 싶습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멋진 곳이라 소개하고 싶은 곳들이 있는 진짜 양반의 고장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