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간 인연, 두번째 디카 / 소니 사이버샷 DSC-T5



나의 사랑하는 첫번째 디카
는 국내 곳곳과 세계 3대륙의 땅바닥을 여러번의 추락 사고를 통해 접수하면서도 그 튼실함을 잃지 않고 4년을 장수하시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가사상태에 빠지셨다.

또 다른 유럽 여행을 파리에서 시작한 첫 날, 그 먼 차이나타운까지 짐을 질질 끌면서 들어갔던 민박집에서의 일이었다. 민박집 컴퓨터에 연결한 나의 이 몹쓸 튼실함을 자랑하는 디카께서 갑작 절명을 하신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이러스 잡수시었다.)

그리하여 헐래블은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는 두번째 디카를 프랑스에서 거금으로 구입하시게 되신다. 그나마도 살까했던 캐논을 비롯한 인기 모델들은 다 매진이고 매장에 남은 것 중에서 가장 가볍고 작은 소니 사이버샷 DSC-T75로... 억지로 이어진 소니와의 두번째 인연... 첫번째 인연만큼 다정할까?

그나저나 최소 경비를 산출해내기 위해 눈에 다이아몬드 결정이 비췰정도로 번쩍거리며 치밀하게 유레일 일정을 짰던 것을 통탄할지어다. 난, 왜! 도대체 왜 그렇게 계획을 치밀하게! 짰던 거니. 결국 유로로 카메라를 사느라 홀라당 거금이 날아갈 이 여행 일정을 왜, 왜, 왜!!! (절규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눈물이 코끝에 대롱, 맺히다 톡 떨어진다. 페이드 아웃.)

어쩔 수 없이 맺어진 두번째 디카와의 인연이었지만 몽마르트 언덕의 막다른 길 위에서 내려다 보는 파리 주택들의 모습이 첫번째 디카에 비해 좀 더 멀리 선명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카메라는 색감이 차갑게 느껴지는 대신 비오는 날의 그 싸늘하고 처연한 느낌은 잘 살려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카메라는 (못난 사진은 여기에 보여드리지 않아서 안 보이지만) 정말 아주 아주 아주 쪼오끔만 날씨가 궂거나 흐리거나 웬만한 실내에만 들어가도 움직이는 사람들과 움직이는 모든 것이 사진 위로 흘러다니는 심령 사진 전문 카메라였다.

'그래도 최소한 바깥 거리에서 찍는 사진만큼은 흐르지 않아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반문이 무색하게도 참으로 잘 흘러주시었다. 가끔 아주 자주 헐래블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지갑처럼 얇은 컴팩트형 카메라니까 그림이 흐르는 건 운명이잖아'라고 스스로를 달래봐도 너무나 많은 사진들이 삭제의 길을 걸었다.

그래도 두 분이 살포시 느리게 걸어주셨음인지, 파리 시청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중간에 서서 그냥 팍 찍은 사진인데 흐르지 않았다. (나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궁리하다가 찍는 편이 아니라 그냥 확 들고 찍고 내리는 도둑 사진 스타일이라 흐르는 카메라는 정말 곤란하다.)


요건 파리 먹자 골목 사이비 중동 케밥집의 닭고기 케밥 사진.


요건 미 캘리포니아 엘에이 파머스 마켓에서 먹었던 브라질리안 꼬치구이 바베큐 사진. 이 사진기의 최대 단점인 '차가운 색감'이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에서는 절대복종이었다. 역시 사진의 고향, 캘리포니아!


미국의 맴머스(매머드 혹은 맘모스) 스키장. 스키장의 규모가 정말 '매머드'하고 마침 찾아갔던 날의 폭설은 기록적이었다. 좋은 카메라였다면 무엇인가 멋진 사진이 나왔을 지 모르지만 스쳐간 인연으로 만났던 나의 두번째 디카는 아련한 눈 속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주었다. 그래도 겹겹이 저 먼 거리로 나타나는 전나무의 모습이 나쁘지 않다. 눈으로 본만큼 못하다는 건 어떤 카메라든 항상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이 카메라와의 인연중에서 가장 좋았던 사진은 일 하다가 분노의 떠남질로 나름 잠적했던 (그러나 아무도 내가 잠적했었는지도 모른다) 강원도행 2박3일의 기록. 짧은 인연을 다 할 생각이었는지 카메라, 제대로 광선받고 활약해 주셨던 날의 기록이다.

 
여기가 아마도 둔내 자연 휴양림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 멋있어 보이지만 실은 개울의 모기떼가 단체 합방을 하시려는지 우왱우왱 거리시던 곳.


그래도 개울의 물살이 무슨 사진 작업 하시는 분들 작품처럼 뽀오얗게 물결이 다 살아 찍혔다. 특별한 사진 기술 없는 헐래블인만큼 이 사진, 포토샵 전혀 없는 쌩얼임에도.



이것 봐라, 훌륭하네 이 카메라 , 늦은 지금에라도 이제 미워하지 말까?



살짝 그늘진 개울에 개울물 콸콸 바위를 매끈하게 보이며 흐르고 돌멩이의 뒷편은 여전히 이끼로 덮혔다.


휴양림의 통나무집과 나무들, 흙이 드러난 오솔길들.



 
참고로 이 카메라를 사게끔
프랑스에서 절명하셨던 나의 첫번째 디카는
한국에 돌아와서
바이러스를 제거하시고 다시 쌩쌩 살아나셔서

두번째 카메라를 거금에 살 수 밖에 없었던 나의 가슴을
또 한 번 쌔리후리파주셨다.

소니 특유의 싸늘한 색감이라는 것과
너무 콤팩트라 날만 흐려도 그림이 흐른다는 것만 빼면
그래도 편리한 크기와 기능 괜찮은 카메라인데,
나에겐 그져 스쳐간 인연의 카메라로 남고 말았다.



 
CCD1/2.5인치 유효 화소수 510만 화소(총 화소수 525만 화소)
기록모드정지화상 : JPEG, GIF
동화상 : MPEG1
기록해상도정지화상 : 5.0M(2,592 × 1,944) / 3.1M(2,048 × 1,536) /
1.2M(1,280 × 960) / VGA(640 × 480) /
3 : 2(2,592 × 1,728) / 16:9 (1,920 x 1.080)
동영상 : VX Fine (640 × 480, 초당 30 프레임)
VX Standard (640 × 480, 초당 16.6프레임)
비디오 메일모드 (160 × 112)
정지화상 16:9(1920x1080)
Video Mail(160x112, 초당 8.3 프레임)
렌즈f3.5-4.4 (35mm환산 시 약 38 ∼ 114mm)
칼짜이즈 바리오 테사 렌즈
LCD2.5인치 하이브리드 LCD(230Kdots) "클리어포토 LCD"
광학3배줌,프리시젼 디지털6배줌, 스마트줌 VGA 12배
셔터 스피드자동 : 1/8 ~ 1/1,000초
프로그램 자동 : 1 ~ 1/1,000
초점 거리표준 : 약 50cm ∼ 무한대
매크로 : 약 8cm(광각) / 25cm(망원) ∼ 무한대
확대경 모드 : 1cm ~ 20cm


요즘 이런저런 일로 지나간 옛날 사진 파일들을 들춰볼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난번 첫번째 디카 포스팅 (실은 '임시저장'대신 '글올리기' 버튼을 잘 못 누른 사태)에 이어 두번째 디카 포스팅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되고 있습니다 :)  쓰던 안동 포스팅이나 스페인 사라고사,일본 삿포로 이야기가 멈춰서 안타깝지만 그나마도 지금 옛날 사진 파일을 뒤적이게 되는 일이 있어 이렇게라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

참, 저는 카메라의 이론적인 면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일뿐입니다. 셔터스피드 수치, 무슨 조리개, 이런 거 숫자 의미 모릅니다. 정말, 무지하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

by hertravel | 2008/01/03 03:34 | 여행유전자 세계여행 잡설 | 트랙백 | 핑백(3)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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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TiMoN at 2008/01/03 03:59
음..물사진이 정말 예뻐요. 한 번 손을 넣어보고 싶을 정도에요/ㅁ/
Commented by skalsy85 at 2008/01/03 04:18
인연이 없는 카메라.라고 하셨지만. 정말. 여기 올리신 사진들은 죄다 이뻐요+_+
Commented by nerd at 2008/01/03 13:05
사진은 역시 장비의 좋고 나쁨보다는 찍는 사람의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Commented by object at 2008/01/03 20:58
아무리 DSLR이 좋아도 여행을 다닐 땐 역시 가벼운 녀석이 최고더라구요.
Commented by Hey10000 at 2008/01/03 22:52
오... 파리사진 보는 순간... 오밤중에 난리났습니다. 가고 싶어서. ^^
Commented by 섭씨0도 at 2008/01/04 12:47
사진 정말 예뻐요!!..ㅠㅠ
전 아직 첫 디카와 알콩달콩 사랑을 쌓아가고 있답니다~
추락으로 옆구리가 찌그러진 상태로도 살아있는 녀석을 보면 뿌듯하더군요..ㅠㅠ
Commented at 2008/01/04 17:4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SkyNautes at 2008/01/04 21:50
사진을 참 맛깔스럽게 찍으십니다~ ^^
Commented by 플라멩코핑크 at 2008/01/04 22:21
음식이 실감나게 찍혀요. 하악하악.
Commented by psi씨 at 2008/01/05 13:35
저는 요즘 두번째 디카를 물색중이랍니다.

애늙은이라서(이 말을 쓰기에 어린나이도 아니지만...) 옛날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터라 기능도 기능이지만 디자인 선정에 참 애먹고있습니다. 아무리 나지만 이런건 참 싫군요.

카메라에 대한 포스팅도 좋은걸요. 여행의 대표적인 동반자 아닙니까!
Commented by 상희스타일 at 2008/01/06 23:32
저 라오스 잘 다녀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계신거죠? ㅋ 저도 몇년전에 산 컴팩트 디카인 캐논 IXY-55와 함께 했는데 날이 흐리거나 어둑해지면 심령사진이 찍혀서... 다음번에 갈때는 좀 묵직한걸 하나 사갈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런데 일단 얇으니까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돌아다닐때는 참 좋았어요.

한... 2년쯤 뒤에는 컴팩트하면서도 손떨림 보정 있고 ISO 800에도 노이즈 없는 슬림형 컴팩트 디카가 나오겠지요? 그러길 바래봅시다.
Commented by 이기자 at 2008/01/08 01:58
마음 고생 심하셨겠어요. 소니 T시리즈, 심령 사진의 대명사로 나름 유명하거든요. 저도 요놈 영입하려다가 몇 번 찍어보고 바로 손 뗐었거든요.

근데 역시 사진은 찍는 사람 나름인 것 같네요. 흐르는 물을 그냥 찍어도 이렇게 멋있게 연출된다는 것을 찾아낸 걸 보면요.

후후- 다음편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마지막 문장이 여운이 많이 남네요.

"나에겐 그져 스쳐간 인연의 카메라로 남고 말았다."
Commented by 豺狼 at 2008/01/09 00:15
전 항상 hertravel님 사진 보면서 정말 잘찍으셨다고 생각했어요 사진도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론이나 기술보다 감각이 중요한것 같아요 !!

여하튼 전 저 케밥에 더 눈이 갑니다 아 배고파요 ;ㅁ;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8/01/09 10:20
TiMoN님/ 눈으로 보았을 때도 예쁘다고 느꼈는데 카메라가 잘 찍어 주었습니다:) 햇살이 살짝 비췬 것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

skalsy85님/ 녀석도 나름대로 열심이었지만 속도 많이 썩였지요. 움직이지 않는 사진이라면 갖고다니기 편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 여기 올린 사진은 녀석이 속썩이지 않았던 사진이라 이런 것만 올리자니 저도 다시 좋은 감정이 생기네요 ^^

nerd님/ 좋은 햇살 맑은 공기 이런 것들이 역시 최고인 것 같습니다 :)

object님/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DSLR 사는 것을 항상 주저해 왔던 것 같습니다 :) 그냥 손에 들고 다니다, 혹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쓱 꺼내서 짝 찍고 훅 집어 넣는 번개 사진이 무게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최고지요 :)

Hey10000 님/ 몽마르트 언덕 저 사진 찍은 데는 나중에 보니까 다른 분들도 꼭 저기서 한 장씩 찍으시더라구요 :) 사람들이 끌리는 곳은 비슷한가 봅니다 ^^

섭씨0도님/ 첫 디카들은 정말 너무 튼튼한 것 같습니다 :) 제 첫 디카도 아직도 쌩쌩합니다. 이 포스팅 올리면서 지난 여행들의 활약이 대견해서 다시 꺼내서 예뻐하고 있습니다^^

비공개님/ 손에 익숙한 것, 마음에 드는 것, 최근에 가장 활약했던 파나소닉이 역시 최고입니다^^

SkyNautes님/ 감사합니다^^ 파리 시청 앞 사진은 걸어오시는 맞은편 분이 빨간 목도리를 둘러주시는 바람에 좋아졌던 것 같습니다 :)

플라멩코핑크님/ 역시 음식 사진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지요 :) 존재 자체로다가...^ㅆ^

psi씨님/ 정말 여행의 대표적인 동반자입니다! 어쩔 때 보면 취재 여행을 왔나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게 제 나름대로 여행 스타일이 된 것 같습니다 :)

상희스타일님/ 네 복 많이 받고 있습니다. 오늘도 복 좀 받아야 될텐데요^^ 역시 사실 여행에는 작은 카메라 들고 다니다 튺 찍는게 정말 좋거든요. 역시 컴팩트는 심령 사진이라 안타깝긴 하지만요... (심령사진이란 표현 딱 맞게 잘 지어냈죠? ^^) 라오스 여행기 읽으러 놀러가겠습니다 :)

이기자님/ 알아주시는군요ㅠ ㅠ 그랬군요 저 녀석 시리즈가 심령 사진의 (이 표현 정말 뿌듯합니다) 대가였군요. 저 녀석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모든 사람들은 동작을 멈춰야 하는 것이지요. 다음 편은 이기자님이 궁금해하시는 요즘 카메라입니다. 제 블로그의 거의 대부분의 사진이 세번째 녀석의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豺狼 님/ 흐흐흐 감사합니다. 카메라 포스팅을 올린 보람이 있습니다. 사진 칭찬을 들었습니다^^ 케밥 저 녀석 여행하다 배고픔에 먹으면 뿌듯했지만 한국에서 먹으라면 그것만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점을 위로 삼아서 배고픔을 견뎌보십시오^^
Commented at 2009/05/12 10:0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5/14 23:06
메일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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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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