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여름 마쯔리 한복판에서 / 삿포로 스스키노_1

일본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여름밤 일본의 시골 어느 마을에 작은 불꽃도 터지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런 저런 행사도 하고 밤에 바베큐도 구워 먹는 장면이 나왔었다. 번역하는 분에게 나는 이 날 무슨 특별한 날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번역하시는 분은 그냥 "마쯔리예요" 하고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마쯔리요?" "네"
"마쯔리가 뭔데요?" "마쯔리가 마쯔리요"
"네? 우리나라로 치면 뭔데요" "어어- 그냥 마쯔리요"
"네???"

그 때 번역하시던 분이 달변이 아니어서 나는 마쯔리가 그날의 불꽃을 말하는 건지 그날의 바베큐 저녁 식사를 말하는 건지 그 마을에만 있는 고유의 단어인지 모르고 지나갔다. 나중에 보니 마쯔리는 일본의 "축제"같은 거였다. 일본에는 마쯔리가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멋진 마쯔리로 "일본 3대 마쯔리"로 불리는 도쿄의 간다 마쯔리, 오사카의 덴진 마쯔리, 교토의 기온 마쯔리가 있다고 한다. 아직 여행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연히 오사카의 덴진 마쯔리를 본 적이 있다. 정말 장관이었다. 아래 사진은 그 마쯔리의 홍보용 사진중의 하나다. 정말 대단한 여름밤이었다. 상상을 뛰어 넘는 규모였다.



그리고 이번 여름의 짧았던 휴가로 나는 삿포로에서 또다시 마쯔리를 만났다. 이미 일본의 3대 마쯔리 중 그 성대하다는 덴진 마쯔리를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참 소박한 마쯔리였지만 그만큼 다정하고 즐거운 마쯔리였다. 나는 그 삿포로 여름 마쯔리 한복판에서 휴가의 하루를 보냈다.

주말 아침의 삿포로 시내는 참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 해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살짝 음울한 것처럼도 느껴졌다. 번화가에서 좀 떨어진 거리를 걸으며 수더분하게 문을 닫은 음식점 창가를 구경한다든지 하는건 여행자의 기쁨이다. 그렇게 들르는 작은 음식점 창가에도 무언가가 붙어있다. 삿포로의 여름 마쯔리 행사 포스터다. 만화 속에 나올법한 일본 미인이 짙은 눈웃음을 보내는 그림 위에 "스스키노 마쯔리"란 제목이 걸려 있다. 스스키노는 삿포로시내 유흥가 거리의 이름이다.

그래서 열심히 그 쪽으로 나는 찾아간다. 그리고 도쿄 북쪽으로는 일본 최대의 환락가라는 삿포로 스스키노 거리에 도착했다. 축제 준비로 꼬치를 준비중인 거리를 돌아다녀 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라면집도 가보고(나중에 알고보니 절대유명 라면집이었다!) 노닥이다가 드디어 행진의 시간이 왔다. 사람들은 고깔 모자를 쓰고 모여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삿포로 사람들이 아니라 아오모리 출신 중에서 삿포로에 정착한 사람들이 삿포로의 잔치에 흥이 나서 아오모리의 유명한 축제인 네부타 행렬을 재현하는 것이라 했다.


이 시점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내 여행기의 사진은 저가의 파나소닉 루믹스 콤팩트 디카라는 점이다. 촬영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앵글을 잘 잡고 조용히 누르면 되지만 조금만 어두워도 그림이 흐르는 카메라다. 요즘 여행 사진을 몇 장 올리고는 있지만 사실 나는 좋은 카메라와는 거리가 먼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튼 문제는 이 날 날씨가 비가 오는 어둡고 흐린 날이었다는 거다. 그리하여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콩콩 뛰면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으아아아 움직이지 마세요-  님들께서 심령사진 주인공으로들 나오신단 말입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춤추시는 우리 마쯔리 군단들!

모자는 얼핏 우리나라 농악대 꽃송이 모자다.


 ▲ 행렬의 사람들은 즐겁게 춤을 추며 조금씩 전진한다. 즐겁게 춤을 추시지 않아야 내 사진은 선명할텐데 역시 즐겁게 춤을 추시느라 내 사진은 확 확 번지는 심령사진 내지는 수묵화가 되시었다.

 ◀ 찬찬히 살펴보면 행렬에도 각자 맡은 역할이 보인다. 머리를 질끈 동여매시고 가슴엔 '삿포로 아오모리현 향우회'를 두른채 이 행렬을 지휘하시는 숨은 리더. 그런데 어딘가 난감해 보이는 표정?.

 ▼ 일본의 마쯔리를 보면 '왓쇼이'란 말을 열심히 외치는 걸 볼 수 있다고 분명히 TV 다큐멘터리에서 십 수 년 전부터 들었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는 일본보다 선진국이었던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사절을 보내면 지금의 마쯔리 행렬처럼 거리를 행진했는데 그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로 "왔어요" "왔어예" "왔소잉" 이런 말로 "왓쇼이"라고 말했던 것이 그대로 내려왔다고 본단다. (그러나 정작 일본 사람들은 그 말 뜻이 뭔지 모른다고)

실제로 오사카의 덴진 마쯔리에서는 "왓쇼이"라고 사람들이 계속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날 삿포로의 스스키노 마쯔리에서는  "왓쇼이"대신
 "랏세이라"로 들리는 구호가 계속 반복됐다.

원래 동북지방의 아오모리에서 있는 마쯔리인만큼 아오모리 특유의 구호인 것 같다.

"랏세-라 랏세-라 랏세 랏세 랏세-라"

다른 거 없다! 이 말이 여러번 계속됐다. 행렬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랏세-라 랏세-라 랏세 랏세 랏세-라" 요 구호가 계속된다. 피리에 북에 계속 랏세라를 외치는 리듬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이거 중독성이 얼마나 세냐 하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이미 세뇌된 기억으로 입에서 흥얼흥얼 나온다는 거다. 이게 이제 이렇게 시작이 됐으니 하루 이틀 정도는 계속 랏세라 거리고 있을 거라고 봐야 한다는 거다.
 
아무튼 나는 이 행렬의 뒷쪽에서 이 행렬을 선동하는 "랏세이라"를 끊임없이 외치는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IMAGE|c0076266_46c5d577e9733.jpg|pds/200708/18/66/|mid|610|343|pds3#]
(사진 생략합니다)
▲ 넉살 좋게 생긴 아저씨가 마이크를 입에 대고  "랏세이라"를 무한반복을 하고 있던 모습. 카메라를 꺼내 드니 살포시 웃는다.끼룩. 
 
 
























◀ 행렬의 맨 뒷쪽엔 이 행렬의 목적인 상징물이 빗 속에 비닐을 덮어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무사의 모습이었다. 무사 상징물은 아주 큰 종이등 같은 것이다. '네부타'는 이런 등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뒷쪽엔 어떤 여인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분명히 이 행렬의 이유가 되는 아오모리의 설화일텐데 설화 설명은 커녕 한국에 와서 온갖 것을 뒤져도 스스키노 축제에 이런 행렬이 있다는 것도, 이게 아오모리현 출신 사람들이 한다는 것도 어디 하나 나와있지 않다.

 (이나마도 팸플릿을 읽고 대충 감 잡은 뒤 일본 관광 사무소에 전화 걸어서 확인한 결과)

 ▼ 행진을 쫓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다 보니 행진하는 사람들 자체가 좀 흥분이 오르는 듯 하다. 그 중에서 정말 귀엽게 따라서 걷는 아이가 있어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이 아이, 나의 카메라를 보더니 더욱더 신명나게 춤을 추는 것이었다.... 말했다시피 나의 카메라는 어두우면 끝장나는 저가 컴팩트 디카... ㅠ ㅠ



참으로 슬프다. 이 날 내가 찍은 사진의 절반은 이런 사진이었다.
더 신명나게 무엇인가 보이려 한층 더 움직여 주신 여러분들이었다...!

카메라가 돌자 더욱더 신나게 무엇인가를 보여주시려 펄쩍 뛰어오르시는 집행위원장급 어르신과 진행요원들...!

큰 등불인 네부타를 끌고, 그 앞에서는 행렬을 선동하는 둥둥둥 북을 끌고 행렬의 목적지 무대에 도착한다...

목적지는 멀지 않은 바로 앞 거리의 무대 앞이었다. 행렬들은 무대 앞에 도착해서 일장 연설을 듣고... 북을 치고... 한참동안 무엇인가를 했다. 나는 또다른 스스키노 축제의 행진을 보러 조금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스스키노 축제는 이런 행렬 하나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 다음은 hertravel의 삿포로 스스키노 마쯔리 시리즈 3개 포스팅의 목록입니다 ■

1. 삿포로 여름 마쯔리 한 복판에서 (이 글)

2. 삿포로 마쯔리, 엉덩이가 덴쟈라스! http://hertravel.egloos.com/3876184

3. 마쯔리의 나라 일본, 소탈한 마쯔리가 주는 즐거움 http://hertravel.egloos.com/3878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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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travel의 북해도 여행 정보 - 삿포로 스스키노 거리]

윗 글에서 소개한 삿포로 스스키노 마쯔리의 배경인 스스키노 거리는 초밥집, 술집, 향토 요리 등의 음식점이 가득한 거리. 이 거리의 라멘 요코조는 새벽 4시까지 영업을 하며 밤 늦은 시각까지 갈 곳이 많다. 도쿄 이북으로는 일본 최대 환락가라고도 한다. 지도 속에 핑크 테두리를 둘러서 표시해 보았다.

by hertravel | 2007/10/19 03:37 | 북해도의 별 | 트랙백 | 핑백(2)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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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식용달팽이 at 2007/10/19 04:50
정말 재밌어보여요! 할아버지들 같이 계신 게 보기 좋아요.^^ 뉴욕 스테이트 페어의 퍼레이드는 연로하신 분들이 많이 참가하셔서 정겹기는 하지만 화려함이 너무 없어서 결정적으로 재미가 너무 없어요...;;;
Commented by 까날 at 2007/10/19 07:37
처음엔 사진만 보고 '삿뽀로에서 왠 네부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Commented at 2007/10/19 08:1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NINA at 2007/10/19 08:36
일본은 색감을 참 화사하게 잘써요. 재밌네요 저도 퍼레이드나 축제 참 좋아하는데.. 우리나라도 있었으면.. ^^
Commented at 2007/10/19 08: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소마 at 2007/10/19 09:35
호오~ 마쯔리~ 호오호옷~ 저기는 축제가 저렇군요.
Commented by 시엔 at 2007/10/19 10:18
^^ 일본은 마쯔리 천국이죠~ 가끔 동네에서 애들만 참가하는 마쯔리도 하는데
그거 엄청 귀엽습니다~
하지만, 괴로운 건 반대로... 마쯔리때 장정의 훈도시 차림의 아저씨들이 돌아다닐때예요....
그... 그... 기저귀같은 걸 차고!!! 허여멀건한 엉덩이를 내놓고~!!!
OTL...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10/19 11:26
식용달팽이님/ 일본 3대 마쯔리보다도 이 작은 마쯔리가 더 흥겹고 좋았답니다. 행진하는 사람들도 흥에 겨워 하고 뭐랄까 아주 소탈한 행렬이었습니다 ^^


까날님/ 저도 행사 팸플렛에 삿포로 축제에 이 어인 아오모리인가 했습니다 ^^

비공개 심령사진님/ 멋진 피사체가 갑자기 움직이면 눈물이 납니다 ^^

NINA님/ 역시 아름다운 것을 금방 발견하시는군요! 특히 네부타 행렬은 밝은 여름 느낌이었습니다.

비공개 오타발견님/ 감사합니다^^ 비공개님같은 자원봉사님들이 계셔서 음주 포스팅의 허물이 살짝살짝 정정되는 것입니다 :)

소마님/ 즐거운 여름 휴가의 추억을 만들어 준 소탈한 마쯔리였습니다

시엔님/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 어려운 엉덩이들이시지요 맞습니다 ^^
Commented by marlowe at 2007/10/19 13:24
그러고 보니 '왓쇼이'가 '왔어요'로 들리네요.
일본의 불꽃놀이는 장관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네요.
(지난 주 토요일에 불꽃놀이 때문에 차량을 통제해서 시청에서 강남역까지 3시간 30분이나 걸렸어요.)
11월에 일본에 가려는 데, 마쯔리를 즐기기는 힘들겠죠?
Commented by 수현 at 2007/10/19 20:52
아, 이게 마쯔리로군요. 와.. 사진으로 이렇게 생생히 보긴 처음이에요.
일본문화 강의 시간에 꽤나 달달 외웠었는데..^^ 굉장히 반갑네요.
보고 있자니 저도 저들과 함께 즐기고 싶어져요. (그런데 사진들이 참 재밌네요>ㅁ<;;;)
Commented by akudoku at 2007/10/20 21:02
시청과 을지로 입구역 사이에는 방치된 특산물 전시장이 있습니다.
그런것에 예산을 낭비하느니...
시골에서 젊은이들이 꿈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을 마련해 주면 좋겠네요...
그래야 전통이 계속 유지가 될 텐데..
Commented at 2007/10/21 23:5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10/23 11:32
marlowe님/ 마쯔리가 항상 여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가능하시겠네요. 언뜻 검색해보니까 11월 도쿄 경우엔 시로사기노마이 마쯔리도 있고 도리노이치 마쯔리도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가시는 건가요? -

수현님/ 사진 일일이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외우는 것보다 눈으로 본 게 훨씬 기억이 잘 되죠? 저도 교과서 보다는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 보다는 실제로 간 것이 훨씬 폭넓게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akudoku님/ 그러게요. 그런 공간은 너무 아깝습니다. 뭔가 더 좋게 활용할 일이 있을 텐데요. 공간도, 예산도...!

비공개 박사님/ 그럼요 그럼요- 하루가 꽉 차고 알차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marlowe at 2007/10/24 11:26
11월 중순에 오카사에 가려고 합니다만 확정된 건 아니예요.
도쿄는 2번 다녀와서 좀 그렇고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10/24 13:20
아-오사카도 좋지요! 텐진마쯔리가 여름이라 아쉬우신 것이군요-
Commented by 들러갑니다 at 2007/12/18 16:27
일본 각지의 마쯔리 홍수철인 8월 무렵에 가셨나봐요. 인형모양의 네부타(대형등롱)은 아오모리 네부타라고 하며 중국역사에 나오는 장수나 여인들, 그밖에도 역사 속에서 용맹스러운 장수나 유명한 여인들이라면 소재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부채모양의 네부타도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는 히로사키 네부타라고 한다는군요.

덧 : 네부타 축제가 원래 일본동북지방의 것이라 삿포로에서의 네부타는 좀 생경하네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12/19 00:38
맞습니다 8월에 들렀습니다 :) 동북지방의 네부타가 삿포로에서 열린 것은, 아오모리 출신들 중에서 삿포로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지방을 그리면서 하는 행사인 것 같았습니다. 행진 이름 자체가 아오모리 네부타였거든요^^ 어떤 설화가 등불이 되나 궁금했는데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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