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25일
[네덜란드/암스텔담] 알베르토와 나, 단 하나가 같다는 이유로 / 하이네켄 공장(5)
"으으으으으..."
눈을 뜨자 머리맡 옆에서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께서 살짝 뺨에 홍조를 지으시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한동안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나머지 '으으으' 세글자쯤의 한숨을 더 뱉었다. 역시 그분은 말이 없으시다. 내 엄지 손톱만한 그 분의 얼굴 옆에는 '대한민국 마케팅 대상 명품상' '새천년 으뜸상' 뿐 아니라 '발명 특허품'이니, 세계 몇개국 특허에 미국 FDA가 어쨌다는 설명이 잔뜩 써 있다. 그리고 영어도 몇 글자 써 있다, 'Hangover Solution'... 아아 그렇다. 그렇게 어제 하룻밤이 지나가고 '여명'이 밝은 것이다...
그 중년의 남성분 얼굴이 자랑스런 노란 테두리 원 속에 그려진 '숙취해소용 액상추출차' 빈 깡통을 손에 들고 나는 하나 하나 기억을 곱씹기 시작했다. 한 잔(?) 잘 마셨으면 얼얼한 팥빙수로 입이나 씻을 것이지 또 한 잔은 왜 또 마셨는가, 노래방에서는 노래나 부를 것이지 왜 병나발을 불었는가...후회,후회,후회- 눈시울이 뜨거워 온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유럽에 취醉하다'를 쓰면서 혹시나 이 글 때문에 실신 혼절 과음하는 분이 계실까봐 항상 글의 끝을 '실신 혼절 과음을 하지 말자'며 맺곤 했는데 내가 그만 지난 주말 스스로 그 선을 넘어간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후로도 며칠동안 덧덧글은 커녕 컴퓨터의 전자파에도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실신 혼절 과음하지 맙시다. 특히, 다른 사람 말고, hertravel 당신,주의하시오. 이 여행기는 술이 아니라 여행과 사람에 취한, 여름날 저녁의 시원한 맥주 한 잔같은, 그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글모음입니다. 오늘 이야기도 그 낯선 나라의 낯선 시간에 모인 낯선 사람들이 그 순간을 전혀 낯설지 않게 함께 즐기던 그 오후의 이야기입니다.



▼ 그리고 역시 최고의 웃음을 보여주는 하이네켄 스탭들.

그들의 테이블 위에는 맥주 잔이 쌓여간다. 입장할 때 받은 두 개의 교환용 칩으로 두 잔의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음악이 이 곳을 왕왕 울리고 사람들은 맥주를 마신다. 어느 골목에나 있는 bar에서 어느 bar에나 있는 하이네켄을 마시는 것과는 기분이 다르다. 사람들은 이미 주어진 두 잔의 맥주를 마셨고 추가로 돈을 내고 한 잔 한 잔 늘리고 있다. 이 와중에 원래 맥주를 잘 마시지 못하는 참가자가 술꾼들의 천사로 강림한다. 갖고 있던 맥주 교환칩을 낯모르는 사람에게 주고 간다.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아아아 세상에 아름다운 인정이 사라지고 있다더니, 그래서 이 세상은 정없는 몹쓸 곳이 되어 간다며 수많은 시인과 논객들이 불평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곳 서구 문명의 자아의식이 넘친다는 암스텔담 하이네켄 공장 제 2 시음실에서 hertravel은 인류 면면이 이어내려오는 술인심을 목격한다. 아아 충분히 아름답다 그 마음!

한국의 '잘 나가지만 허름한' 음식점 합석으로 생각나는 곳은 마포 굴다리에 있던 최대포 돼지갈비집이다. 그 가게로 가는 굴다리 골목은 항상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리 깔끔해보이지는 않지만 어쩐지 그래서 더 맛있어 보이는 그 집을 들어갈 때면 우리는 연기 속을 헤쳐 들어가야 했다.시인 기형도의 시에 나오는 '밤 사이 진군해 온 계엄군같은 안개'도 아닌, '이러다 내가 훈제될 구저분한 연기'를 온 몸에 코팅하고 들어간 그 집은 나무로 만든 심하게 큰 식탁을 몇 개 들여 놓고 있었다. 식탁(사실 식탁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이 작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두어 사람이 고기를 먹으려면 먼저 온 다른 팀과 같이 합석을 해야만 했다. 그 팀마저 두어명뿐이라면 세 팀이 합석해서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재미있는 건 테이블만 같이 쓰는 것이 아니라 고기 굽는 불판도 두 팀, 혹은 세 팀이 같이 썼다는 것이다. 고기집 아주머니는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우리가 시킨 고기를 가져와서 옆 팀이 굽고 있던 고기를 살짝 옆으로 밀어 넣고 그 옆에 우리 고기를 구웠다. 미국에서 자라 한국에 놀러왔던 내 지인은 (음, 이영애가 된 느낌) 고개를 저으며 괴로워했지만 우리들은 익숙하게 그 사태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소주 두어잔을 마시다 보면 어쩐지 우리들끼리만 잔을 부딪히는게 어색하달까, 그래서 같이 불판을 쓰는 낯선 다른 팀과 건배를 하게 된다. 어차피 한 테이블에서 술 마시며 얘기하는 거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옆 사람이 듣고, 옆 사람 이야기를 내가 듣는 그런 시스템이다. 순식간에 '술자리에서 할 수 있는 비밀스런 이야기도 어차피 다 들어버린 사이'가 돼 버린다! 그 쯤에서 너스레 잘 떠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자-자- 많이 힘드셨던 모양이신데 이쯤에서 건배하죠- 라며 건배도 또 한 번 하게 된다.
게다가 한 불판에서 네 고기 내 고기는 같이 구워져서 어느 것이 네 고기인지 우리 고기인지 알 수가 없게 됐다. 미국에서 온 지인은 '저 사람이 우리 고기도 먹는다!' 며 허리를 꾹꾹 찌르지만 어차피 소주로 고기 인심도 넉넉해진 사람들이었다.
그 추억을 살짝 접어 나는 지금 암스텔담 하이네켄 공장에서 모르는 외국인 분들과 합석을 하였다. 불판도 없고 '이러다 내가 훈제될' 연기도 없지만 역시 굴다리 식당 건배 취향이 어디로 가겠는가, 우리들은 건배를 했다. 눈 앞의 갈색 친구는 자기 이름을 알려준다 (그의 이름은 아쉽게도 기억이 안난다. 편의상 페르난도라고 하자). 그리고 그 옆의 곱슬머리 친구는 자기 이름이 알베르토란다.

그렇다, 알베르토와 나는 아무 공통점이 없었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한참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암스텔담 다음에 어딜 갈꺼니?" 우리는 동시에 서로에게 물어보았다.
"뮌셴으로 갈건데" "뮤닉으로 갈거야"
나와 알베르토는 동시에 대답했다.
알베르토의 뮤니힉이나 나의 뮌셴이나 모두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있던 뮌헨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암스텔담에서도 이 곳으로 놀러온 너와 내가 별다른 사람이겠니 알베르토. 우리는 여행만큼 맥주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너와 내가 맥주를 좋아한다는 단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거라고! 사람도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르지만 둘다 다른 나라를 배회하며 같은 것을 마시는 사람들인 거지.




::: 어른들의 디즈니랜드, 하이네켄 공장 투어 글 시리즈 읽기:::
(1) 당신은 불고기, 나는 하이네켄
(2) 유쾌한 여행자를 제조하는 비밀 레서피
(3) 어른들의 디즈니랜드, 하이네켄 공장 투어
(4) 하이네켄, 콘써트의 불빛을 밝히다
(5) 알베르토와 나, 단 하나가 같다는 이유로 (이 글)
::: 안타깝게도 실신 혼절 과음은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본 블로그는 실신 혼절 과음을 권하지 않습니다 :::
여행유전자 따라 지구 한 바퀴
[유럽에 취醉하다] 카테고리는
골목 선술집에서 여행에 취하고 사람에 취한
유럽 중부 맥주 여행과 남부 와인 여행 코스의 여행기입니다.
[유럽의 골목을 샅샅이] 다닌 카테고리를 통합해서 쓰고 있습니다.
# by | 2007/07/25 15:16 | 유럽에 취醉하다 | 트랙백 | 핑백(1)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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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중에 맥주만큼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약간 잰 체 하는 와인이나 위스키는 논외로 쳐도, 소주나 막걸리와 비교해도 훨씬 편안합니다.
술보다는 음료수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 가봐요.
<음식으로 인한 원한은 넓고도 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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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는 아닙니다...( '')
제 경우는 밤기차를 타면 뮤니히에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루스님/ 그렇지요 밤기차가 있지 않습니까. 저도 암스텔담-쾰른-뮌헨 코스나 암스텔담-브뤼셀 코스로 움직였었는데 이 여행에서는 역시 뮌헨으로 가는 밤기차를 탔답니다!
까날님/ 쓰다보니 하이네켄 공장 마지막 회가 옥토버페스트 예고편이 됐습니다....
저도 안간지 어연 오년이 넘었는데...저희 이번에 만날까요?ㅋㅋ
언제라도 다시 갔으면 좋겠습니다.
술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거 너무 더우니까 생각이 종종 나네요..ㅠ.ㅠ
ipSum님/ 꼭 개인접시를 달라고 하고 싶어도 굴다리 최대포집은 철길 공사로 올 봄에 건물이 사라졌습니다 ㅠ ㅠ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