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18일
황후의 밥, 걸인의 찬, 여행자의 한 끼 / 시부야 驛_37
해외 출장을 두고 이런 말이 있다. "일본만은 예외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런대로 해외 출장 기회가 적지 않은 이 바닥에서 후배 녀석을 동남아나 뉴질랜드같은 쪽으로 해외 출장을 보내 놓으면 출장 끝내고 한국에 돌아올 때 꼭 흐리멍덩---한 눈으로 사무실에 돌아오더라 그 말이다. 그렇게 반쯤 감긴 눈으로 돌아와 일을 하는데도 힘이 훌렐레 빠져있다는 것이다.
나도 첫번째 출장때 꽤 심하게 그 병을 앓았었다. 이미 공항에서 취재 차량을 타고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들은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고차가 여의도에 들어서자 때마침 러시아워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우리들은 길고 긴 한숨을 쉬었더랬다.
물론 어느 나라나 그 안에 살다보면 '방문'과 달리 '생활'이라는 건 팍팍한 일일 것이다. 마냥 외국 생활의 환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워낙 한국에서의 이 일이라는 것이 친구도 가족도 없는 밤샘 노예같은 직업인지라, 삶의 속도감이 덜하고 비교적 덜 팍팍한 타국 출장은 자연스럽게 <현실허무발작증>을 불러 일으킨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득바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민이나 갈까' '아 가슴이 답다압-하다-' 대체적으로 그들의 증상은 그러하다.
그런데 일본만은 예외라는 거다. 선배들은 후배의 일본 출장에 아아무 걱정이 없다.
골든위크의 어느 날, 시부야 역 2층에서 내려다 본 모습.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의 이웃 나라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온 사람만큼은 아무 여파없이 잘만 일한다. 우리도 수많은 사람들과 무한경쟁 속에서 다람쥐처럼 살아가지만 일본 사람들도 퍽이나 불쌍한 사람들이다. 지금 경제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삶의 모습 자체가 비슷하게 아득바득 순위를 다투는 것 같다.
저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1년에 한번 진하게 있는 휴일이라고 쏟아져 나온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여행자의 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철역 지하에 붙어 있는 돗큐 백화점 음식 코너에서 닭고기 가라아게와 박고지말이같은 김밥을 사 와서 꼭꼭 씹어 먹는 중이다. 스시 식도락이라든지 유명 라면집 식도락같은 것에 비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황후의 밥에 함께 나온 걸인의 찬에 불과하겠지만 지금 여행중인 이 곳에서 나의 시간은 더디게 더디게 숨을 고르며 여유를 누린다. 창 아래 바쁜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걸인의 찬을 먹는 이 여행자는 이 순간 황후다.
솔직히 조금 체할 것도 같다. 어지간하면 역사에 잠깐 앉을만한 자리 하나쯤은 만들만도 한데 이 곳은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앞만보고 계단을 옮겨가는 곳. 어쩔 수 없이 등을 가리고 바깥 구경 하는 척 내 입으로는 김밥이 넘어간다. 에...뭐... 나는 프랑스 기차역 이런데 벤치에 앉아서도 홈메이드(내가 수퍼에서 재료를 사서 끼어 먹는 빵의 최상급 표현이다) 빵과 수퍼에서 산 와인을 천연덕스럽게 먹는 타입이다. 외국에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술병을 내 놓는건 조심스런 일이라, 뭐 그럭저럭 나도 눈치가 없는건 아닌만큼 그 때 그 때 맞춰서 식사를 해 나가시고 있다.
<유럽의 서쪽 끝에서 외치다>, 그 때의 사진 한 장을 올려본다.
아까 말한대로 보르도 트램 정거장 벤치에서의 식사. 사실 유럽을 장기 여행하려면 저것도 완전 단촐한 여행자만의 식사는 되지 못한다. 물은 우리 입맛에 맞지만 싼 물은 아닌 volvic이며 와인은 오메독 지방의 2003 와인이다. 샐러드도 루사 샐러드가 아니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수퍼에서 샐러드를 사 먹을 때가 있는데 어느 나라나 루사 샐러드가 제일 싸다. 러시아 샐러드란 뜻 같은데 삶은 감자를 마요네즈에 마구 굴린 그야말로 감자 샐러드라 제일 싸다- 와인도 마시는데 이왕이면 그에 어울리게 바질 올리브유 페타 치즈 샐러드를 골랐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저렇게 즐긴다면 그 가격은 어떻게 될까. 피크닉왔다 생각하고 한적한 트램역에서 여행자의 한끼를 먹는다. 어쩌다 지나가는 프랑스 사람들이 방끗 웃으며 '보나뻬띠!' 말한다.
올린김에 이번엔 <101년만의 유럽 폭염 체험 여행>때의 사진.
사진의 컬러는 참 예쁘지만 토마토와 양상추를 한꺼번에 사서 끼니때마다 먹어가던 그 생활은 1-2주일을 넘어가며 그 얼마나 눈물이 났던가. 우리들은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 '고기'를 사먹자고 격려했다. 그래서 산 것이 치킨 너겟. 다이어트 여행이라는 혹독한 목표가 허망한 목표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아무튼 다시 일본, 도쿄, 오다이바를 향해 간다. 오다이바는 유리카모메를 타고 간다. 모노레일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런대로 해외 출장 기회가 적지 않은 이 바닥에서 후배 녀석을 동남아나 뉴질랜드같은 쪽으로 해외 출장을 보내 놓으면 출장 끝내고 한국에 돌아올 때 꼭 흐리멍덩---한 눈으로 사무실에 돌아오더라 그 말이다. 그렇게 반쯤 감긴 눈으로 돌아와 일을 하는데도 힘이 훌렐레 빠져있다는 것이다.
나도 첫번째 출장때 꽤 심하게 그 병을 앓았었다. 이미 공항에서 취재 차량을 타고 방송국으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들은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봉고차가 여의도에 들어서자 때마침 러시아워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우리들은 길고 긴 한숨을 쉬었더랬다.
물론 어느 나라나 그 안에 살다보면 '방문'과 달리 '생활'이라는 건 팍팍한 일일 것이다. 마냥 외국 생활의 환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워낙 한국에서의 이 일이라는 것이 친구도 가족도 없는 밤샘 노예같은 직업인지라, 삶의 속도감이 덜하고 비교적 덜 팍팍한 타국 출장은 자연스럽게 <현실허무발작증>을 불러 일으킨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아득바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민이나 갈까' '아 가슴이 답다압-하다-' 대체적으로 그들의 증상은 그러하다.
그런데 일본만은 예외라는 거다. 선배들은 후배의 일본 출장에 아아무 걱정이 없다.

저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1년에 한번 진하게 있는 휴일이라고 쏟아져 나온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여행자의 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철역 지하에 붙어 있는 돗큐 백화점 음식 코너에서 닭고기 가라아게와 박고지말이같은 김밥을 사 와서 꼭꼭 씹어 먹는 중이다. 스시 식도락이라든지 유명 라면집 식도락같은 것에 비하면 이것은 그야말로 황후의 밥에 함께 나온 걸인의 찬에 불과하겠지만 지금 여행중인 이 곳에서 나의 시간은 더디게 더디게 숨을 고르며 여유를 누린다. 창 아래 바쁜 사람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걸인의 찬을 먹는 이 여행자는 이 순간 황후다.

<유럽의 서쪽 끝에서 외치다>, 그 때의 사진 한 장을 올려본다.

올린김에 이번엔 <101년만의 유럽 폭염 체험 여행>때의 사진.

아무튼 다시 일본, 도쿄, 오다이바를 향해 간다. 오다이바는 유리카모메를 타고 간다. 모노레일이다.

# by | 2007/05/18 14:32 | 도쿄 먹자 여행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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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가 아니라고 해서..)
정말 어디서 뭘, 어떻게 먹는가가 중요합니다. 황후의 밥.. 훌륭해요!
언제 어디서든 먹고 싶은걸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입니다^ㅁ^!!! 뜬금없는 말이지만 유럽여행때의 토마토가 너무 싱그러워보이네요:3 탱글탱글
맛있는 포스팅들 앞으로도 기다리겠습니닷 /
까날님/ 황후의 순간, 그 즐거움을 글로 쓸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marlowe님/ 숙자님이 일부러 오셔서 자고 가시지 않았을듯한 장소도 찾기 힘들고 그곳에서 앉을 곳을 찾기란 더더욱... 펼쳐 놓고 먹어야 하는 샐러드만 아니면 저는 짧은 다리에서 강물 바라보며 캔맥주 한 잔 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BbasyLover님/ 저도 예전엔 정말 많이 심해서 백화점도 가면 얼마나 머리가 아팠는지 모릅니다. 알고보니 짝눈이 심해서 한쪽 눈을 라식하고 나서는 완전히 나아졌다는...! 그런데 개미때나 파리떼도 그러시다면 눈의 문제가 아니네요. ㅎㅎ 일본 전철 출퇴근때 타시면 이게 내가 여행을 왔나 한국에서 학교를 가는 길인가 회사를 가는 길인가 기가 막히실지도...^^
시이나님/ 저 학교 다닐때 아무데나 앉는다고 교수님이 혼내신 적 있습니다. (저 멀리서 다정하게 부르셔서 달려갔더니 앞에 세우시고는 혀를 차시며 혼을 내셨습니다 ㅠ ㅠ ) 여행자가 아니라도 그런 습성이 있어서 여행을 가서도 백분 활용하는가 봅니다 :)
스윗스푼님/ 안녕하세요 스윗스푼님! 감사합니다 '뭐 이런걸 다^0^ ~ 뭐 트랙백 해 가신거 다 덧글처럼 달리니까 굳이 알려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덧글로 알려주시니 더 기분 좋은데요? 즐겁게 이용해주세요~
고기를 사먹자고 격려했다..그게 치킨 너겟..ㅋㅋ
우와 거의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셨군요.@.@
다시 신고..
ㅋㅋ 전 준비 중인 여행기 를 벌써 다 갔다 오신줄 잘못 읽고..ㅡ.ㅡ
그래도 그 일부만 보셨단것도 많네요^^존경스러워요~
그나저나 일본에도 정말 사람이 많네요.
저는 부산에서 서울 올라와서도 사람 많다고 그랬는데 사진 찍으신 시부야 저 곳은 정말..;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 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서 가겠습니다.
저도 방학 때는 여행을 해 봐야 겠어요.
찍으신 사진 보다 보니까 어디로든 여행이라면 다 좋을 것 같거든요.
hvalalepa 님/ 하하 아니예요. 처음에 생각하신 것이 맞습니다! 저 준비중인 여행기, 모두 다녀온 곳이랍니다. 저도 빨리 저것들의 밀린 여행기를 차곡차곡 써서 올라가기를 기대하면서 하나 둘 써나가고 있습니다.그리고 링크 고맙습니다. 저도 hvalalepa 님 이글루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nabiko 님/ 비둘기 똥으로 닭 한마리 날린! 아 그 때도 물론 벤치였지요. 그 발셀로나 사건은 앞으로 쓸 -유럽의 서쪽 끝에서 외치다- 입니다. 안그래도 폭염이라 서쪽 끝이랑 같은 도시는 동시에 써야하나 헛갈리는 것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 어쨌든 빨리 써야겠죠!
마치 남들의 바쁜 일상에 불쑥 끼어들어간 느낌이었어요..
다들 우리와 다를바 없이 아침에 지하철 기다리고 점심때 줄서서 밥먹고, 늦게 퇴근하고..
그 사이에서 어디에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그런 기분..
ㅋ
다른 때 여행이나 출장을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도 말씀하신 것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여차해서 한국에서 급한 회의가 있다면 소환될 가능성도 높고, 시차도 없는데다가, 만나는 사람들도 서울에서 보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들이 없다고 하면 너무 건조한건가요? 후후, 당분간 외국에 나갈 일이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얼마간은 일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보고 즐기러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좋네요. 다만, 돈이 문제라고-
1mokiss님/ 일본에서 보름동안의 신혼여행...! 좋네요. 중간에 가족, 친척과 만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을테고요. (좋은 데도 많이 데려가 주시지 않았을까)...아무튼 출장지로 일본을 다녀오는 건 한마디로 바람들 일이 없어서 회사쪽에서는 든든하다는 사실에 + '급한 회의에 소환될 가능성 없다' 이것도 공감합니다.^^ 방송국에서도 프리랜서 인력 뽑을 때 집 가까우면 더 좋아합니다.ㅎㅎ
바쁜집에 놀러가 공연히 주눅들기 실엇던거져
ㅋㅋ 담에 한가할때 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