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맥주를 마시다말고 독도가 어디냐고 묻다 / 시부야 사쿠라오카 기린시티_18



나는 맥주로 여름이 오는 것을 느끼고 와인으로 겨울이 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이다. 어느날 저녁, 잘 마시던 레드 와인이 그리 입맛을 당기지 않는 것을 느낀다. 입 안에서 원하는 것은 차가운 맥주 한 잔, 그 유리잔 표면에 맺힌 차가운 습기. 그렇다면 어디선가 이미 여름이 출발한 것이다.

'6월쯤 도착할거야'

오늘 저녁에 나는 올여름이 드디어 걸어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나의 입안에서 들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여행기 속의 발걸음도 신주쿠 기린 시티에 찾아들 순서였다.


신주쿠에 오면 항상 들르는 곳이 Kirin-City다. 이 곳에서 생맥주 한 잔을 마시는 즐거움은 일본 방문 코스 중의 하나가 됐다. 캔에 이름붙인 "Draft Beer"가 아니라 눈 앞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짜 생맥주. 우리나라 하우스 맥주집에서 마시는 생맥주도 맛있지만 어쨌거나 일본에 왔으니 일본 맥주도 마셔주고 가야지~


같은 노란빛의 맑은 맥주라도 좀더 쌉쌀하고 신 맛이 나며 빨간 종이를 껴서 준 것을 보니 490엔짜리 기린 라거. 색이 조금 더 짙게 노랗고 밀도감이 있으며 아래 갈색 종이를 껴서 나오는 것은 520엔짜리 기린 브로이마스터. 사진은 라거.


흑맥주인 490엔짜리 기린 블랙도 한 잔 마셔주시고...조심하자, 이 집에서 술 마시면 기분에 그런지 술이 확 오르더라. 아아 또 얼굴 안 받혀주고 불그죽죽 육가공품 냉장 가판대 위의 스모크햄 되어 가신다...런던의 어느 펍에서 기네스 드래프트 고거 딱 한 잔 먹고는 불타는 얼굴을 긴 장막 양쪽의 모발 커텐으로 겨우 가려주시며 글 쓰시었다. 헤벌레 고개를 든 순간 주변의 영국 애들을 봤--짝, 긴장시킨 그 얼굴 나올지도 모른다.


역시 490엔짜리 하프 앤 하프 맥주로 기억한다. 흑맥주와 노란 맥주의 중간.

맥주가 나오기까지는 우리나라 맥주집에서 기다리는 것의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독일식으로 제대로 맥주를 따르기 위해 한 잔을 3회에 걸쳐서 따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이사이에 거품을 조금씩 덜어 내기도 해서 속성으로 하는 것도 보았는데 여기는 그 거품이 다 꺼지면 또 조금 더 따르고, 또 기다리고 이런 식으로 한 잔을 채워 나오기 때문에 시간이 10분은 걸리는 것 같다. 자기네들 말로는 3-4분이라는데 주문 받고 내 잔 들어가는 순서 기다리고 그러다보면 10분도 아니다, 15분은 기다리는 것 같다.


독일에서도 이런 식으로 특히 느리게 술을 받아내는 곳들이 있었다. 2003년에 하이델베르그에 갔을 때 유스호스텔 1층에 작은 바가 있는데 여기 바텐더가 무지하게 느리게 술을 받아내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마침 한국에서 오신 다른 손님이 맥주를 시켰다가 한 번에 주지 않고 맥주를 따랐다가 잠시 놓아둔 것을 보시고 역정이 나셔서 한국말로 '아니 왜 안주는 거야, (인종차별 하는 거) 그런 거 아냐?'라고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속상해하는 것을 보았다. 옆에서 도움말을 드리긴 했는데 정말 오해하려면 오해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랄까, 오늘 아침에 '미녀들의 아양'(그게 어디 수다인가 아양이지)에서 중국인이 '중국에서는 뭘 건네 줄 때 집어 던져 준다. 그러니 한국 분들은 중국에서 마음 상해하지 말라'는 정보를 주었는데 오우 정말 그것도 오해하려면 오해하고도 남는 상황이 아닌가.

안주로 시킨 것은 닭가슴살 샐러드.
만두를 맥주 안주로 먹어본 것은 처음.
뭔가, 아무튼 튀긴 것이었고 양 진짜 적다.
교토의 기린 시티를 갔을 땐 안주 목록에서 우리나라 부침개 안주도 볼 수 있었다. 일본에서도 흔하게 먹고 있으며 이름까지 부침개 부산식 사투리인 '지지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시원한 맥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린 시티를 잘 들르다보니 교토에 갔을 때에도 교토의 부엌이라는 니시키(이름 참 정감 넘친다) 시장통에 있던 기린 시티를 간 적이 있다. 교토의 기린시티는 반지하층에 있어서 길거리에서 유리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안이 보이는 그런 술집이었다.


도쿄의 기린시티는 솔직히 서비스만 생각해서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곳이다. 워낙 외국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지점이라 그런지 우리같은 아시안에 대해, 뭐, 그리 나쁘지도 않지만 그리 서비스같지도 않은 그런, 남의 집에 와 있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교토(솔직히 워낙 이 도시를 좋아합니다)의 기린 시티는 정말 밝고 편안한 느낌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자 자, 그런데 독도 얘기는 무엇인가. 신주쿠도 교토도 아닌 시부야 사쿠라오카점 기린시티에서 그 사단은 발생했다. 나는 시부야에서 다이칸야마까지 걸어가겠다는 깜찍한 생각으로 그 땡볕 한낮의 시부야 큰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길이 그냥 길이 아니었고 걷는게 걷는게 아니었다. 당연히 나의 시신경은 골목 안쪽의 기린시티에 격렬 반응 작렬하였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맥주를 앞에 두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사정은 그러했다.



시원하게 맥주를 다 마신 나는 계산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독도는 어디 있어요."

밝은 대낮의 1층 술집엔 햇살이 쏟아지고 창가엔 낮술 전문가 할아버지 한 분 앉아 계실 뿐이었다. 그 곳은 참으로 고요한 곳이었다. 술집엔 나의 질문만이 왕왕 울려 퍼졌다.

"독도는 어디 있냐고요" 내가 다시 말했다.

계산대 앞의 두 일본인 점원은 적지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순간의 긴장감이 우리들을 에워쌌다.

"아아...?" 그들은 나를 쳐다 보았다.

'으악!!!'

...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파문을 일으켜 한반도와 일본은 독도 영유권 문제로 갈등이 첨예했고 5월엔 야스쿠니 참배설과 영토 분쟁인가로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일본 텔레비전에서는 계속 독도이야기가 나오고 있던 바로 그런 시기였다...


나의 등골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그래, 나는 시부야에서 다이칸야마로 가던 길이었다.

"이칸야는 어디 있어요"

라고 묻는다는 것이 난데없이...


"케시(독도)는 어디 있냐고요-"


라고 의분강개의 질문을 던진 것이 된 것이다.

분노의 민족혼을 불사르며 일본 거리에서 만난 일본인에게 너희들의 다케시마가 어디 있느냐며 대민투쟁을 한 의문의 여행자. 아이구야 이런 난데없는 해프닝이라니, 이걸 웃어야하나 울어야하나. 너희들의 다케시마가 어디 있느냐고!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러준 셈은 되었지만 뭐 어차피 일본 사람들이 다케시마가 원래 독도인지 이름 다른 것까지 알고 사는 그런 사람들도 아니고, 다만 그 섬에 대해 희한한 방법의 대민 투쟁에 나섰던 어느 한국인의 이야기가 이렇게 전해지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과음은 해롭습니다.


------------------------------------------- (오늘의 절취선)---------------------------------------------

[hertravel의 지구 한바퀴 여행 정보 18 - Kirin-City 정보]

워낙 일본 맥주맛이 괜찮은 편인데다 세계적인 기준에 비해 좀 더 차갑게 먹는 걸 즐기는 취향도 비슷해서 일본에 갔다면 맥주 한 잔 정도는 먹어보고 와 주는 것도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내가 본 바로는 일본 사람들은 식전에 맥주를 한 잔씩 마시는 걸 즐겨하는 것 같다. 어디서든 시원하고 괜찮은 맥주를 마실 기회는 많지만 오늘 소개한 기린 시티를 간다면 다음의 기린 시티 홈페이지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의 위치를 확인하고 갈 수 있다.

1. 웹에서 찾는 정보
http://www.kirincity.co.jp 기린시티 홈페이지
http://www.kirincity.co.jp/menu/drink01.html 맥주의 종류와 가격, 특징
http://www.kirincity.co.jp/shops/shops.html 가까운 곳의 기린시티 찾기

2. 글에서 나온 기린 시티를 순서대로 소개하면

신주쿠 동구점
キリンシティ 新宿東口 新宿区新宿3-25-9
新宿モアビル1・2F 03-3350-8935


교토 니시키시장점
キリンシティ 新京極京都市中京区 新京極四条上ル レストランスターB1
075-255-4485
営業時間
11:30〜22:00


제의 시부야사쿠라오카점
キリンシティ 渋谷桜丘渋谷区桜丘町16-15 カーサ渋谷1F
03-3476-0697
営業時間
11:30〜23:00


------------------------------------------- (오늘의 마무리)---------------------------------------------

by hertravel | 2007/04/09 03:45 | 도쿄 먹자 여행 (1) | 트랙백 | 핑백(4)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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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회전초밥은 먹어야 할 것 아닌가,하는 비장한 각오로 나는 신주쿠를 돌아다니던 중에 한 회전초밥집에 들어섰다. 방금전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고 나온 기린 시티에서 불과 몇 미터 좀 더 내려가 왼쪽으로 꺾이는 코너에 있는 반지하 회전초밥집이 있었다. 발 아래 반원형 계단을 내려서 보이는 식당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줄지어 열심히 초밥을 ... more

Linked at HerTravel의 지구 한 .. at 2007/08/01 22:04

... 스시를 먹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의 이야기, 이 포스팅은 그런 이유에서 예견된 것이었다...앞 포스팅으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나 나는 다시 신주쿠 거리에 섰다. 지난번 기린 시티 근방의 초밥집은 아니고 (어쩌면 그 초밥집은 처음의 그 즐거웠던 저녁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아직 믿고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신주쿠 가부키 조에서 코마 극장으로 가는 ... more

Linked at HerTravel의 지구 한 .. at 2007/08/10 17:57

... sp;신주쿠 회전스시의 추억_21 라면 냄새가 지긋지긋한 고양이_20 라면 카페 MATCH-BO_19 일본에서 맥주를 마시다말고 독도가 어디냐고 묻다_18 생선과 밥,맛있는 술집 모리모리②_ 17 생선과 밥,맛있는 술집 모리모리①_16 도쿄에서 ... more

Linked at HerTravel의 지구 한 .. at 2007/08/14 10:46

... 실수의 모음이 곧 여행인 hertravel의 또다른 실수담이 궁금하신 분은 <인디아 에어, 기내식 기다리다 지구 한 바퀴>, <일본에서 맥주를 마시다 말고 독도가 어디냐고 묻다>에서도 혀를 차시며 읽으실 수 있습니다 ... more

Commented by 銀鳥-_- at 2007/04/09 03:49
아니 저런 그런 비화가 ;ㅂ;
Commented by 까날 at 2007/04/09 03:55
그런..-_- 저도 니시키 시장하고 츠키지 시장을 매번 헷갈립니다.(의미불명)
hertravel님의 염장에 대비해서 이미 최후의 에비스 맥주를 마신상태기 때문에...
Commented by 가이우스 at 2007/04/09 04:08
개인적으로... 중3때까지 훗카이도가 (홋카이도인가?) 어딘지 몰랐습니다...
일본의 관동지방하고 관서지방의 차이도 잘몰랐고, 오키나와는 지금도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4/09 04:35
銀鳥-_-님/ 정말 ;ㅂ;입니다

까날님/ 이번엔 음식 염장보다는 민망스토리라 최후의 에비스가 아쉽게 사라진 것은 아닌가 대신 걱정입니다-

가이우스님/ 그러게요. 발로 밟고 다녀도 헛갈리는데요-
Commented by marlowe at 2007/04/09 09:23
이시하라가 3선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우울해집니다.
극우성향을 떠나서 무능과 비리로 점철된 사람을 다시 뽑아준다니...
우리도 뽑아놓고 후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Commented by 소마 at 2007/04/09 13:13
아.. 진짜 hertravel님의 어휘 사용은 멋집니다!! 그리고 덕분이 실컷 웃었구요.^^
왠지 맥주란 단어에 말씀하셨던 이미지가 덧붙여지는 느낌입니다. ^^
Commented by BbasyLover at 2007/04/09 13:41
신선한 맥주는 저렇게 거품이 많이 나오는 거였군요... ㅜㅜ 어떤 맛인지 궁금하네요!
Commented at 2007/04/09 14: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4/09 14:17
marlowe님/ 자, 제가 이제 이시하라에게 가서 물어볼 차례인가요?(맥주부터 한 잔;)

소마님/ 감사합니다- 읽다가 한 번쯤 웃을 수 있는 포스팅, 추구하고는 있는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BbasyLover님/ 크리미하게 거품이 올려지는 스타일로 만들어주더군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비공개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잘 부탁이시라뇨 제가 되려 잘 부탁드립니다-

Commented by 빈틈씨 at 2007/04/09 18:07
어익후,, 우익에게 따귀라도 맞으신 건가 걱정했는데 -_-
다행히 무사하셨군요. ^^ 읽다가 여러번 웃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skalsy85 at 2007/04/09 19:06
정말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장난으로 쓰신 제목인 줄 알았는데..+_+

정말 중국 사람들 아무거나 막 던지죠. 담배도 던지고. 좋은 레스토랑을 가도. 종업원이 물수건도 가끔 던져줘요.. 첨엔 좀 당황했는데 뭐. 중국 사람들은 아무도 개의치 않더라구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4/09 20:17
빈틈씨님/ 말줄임표에 저의 일부 과정이 생략된 것이라 상상해 볼 수도 있죠, 아마ㅋㅋ,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쳐 사라졌다든지, 태도가 돌변해 다케시마는 역시 일본땅! 하고 만세를 부르고 나갔다든지, 핫하...;;;

skalsy85님/ 저는 중국 본토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는데 손요양이 그렇게 말을 하더군요. 정말 그 말이 맞는가 봅니다.
Commented by 라지엘 at 2007/04/10 01:39
제목만 보고 무슨 얘기일까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 역시 술이 무서워요-(라면서 이 글을 읽으며 부드러운 거품에 혹해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와 마시고 있었습니다.....;;)
Commented by Shoo at 2007/04/10 07:37
으하하 엄청 웃었어요 ㅋㅋ 그런데 오히려 일본사람들은 독도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뭐라고 하는겨?' 하고 심심하게 끝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4/11 20:14
라지엘님/ 그러게요 한 잔 마셨는데 하필 그렇게 말이 새나와서---^^:::

Shoo님/ 아 정말 말실수인 것을 안 순간 그 어색한 순간 등이 서늘--- 뭐 워낙 일본 사람들, 한반도의 남과 북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긴 해요^^
Commented by 식왕 at 2007/04/12 00:54
아~목마른 밤이네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4/12 02:23
저도 오늘 좀 마시고 집에 들어왔는데도 계속 목마르네요. 역시 제대로 맛있는 맥주를 마셔야-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4/19 15:26
목욕 뒤 룸에서 차게 식힌 맥주, 일본 맥주 맛있죠. 게다가 가격 싸게 설정된 자판기라도 만나면 더 좋고요, 에비스 팬도 많으시더라구요. 이 여행에서 에비스 맥주 본사도 놀러갑니다. 나중에 글 올리면 그 때 생각 많이 나시겠네요 ;)
Commented by amarda at 2007/04/22 14:07
하하하
어느 웹카툰에서봤는데.. 길거리에서 일본여성이 안고있는 예쁜강아지를보고
'카와이' 대신에...'오이시'.. 라는 말을 던진 분도있었대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4/22 16:47
푸하하하 그것도 진짜 심각한 일이네요 푸하하하 어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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