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이상 알바 써빙 구함 / 시부야 산페이 주점_4

시부야를 흘러 흘러 밤을 맞은 클럽과 화려한 쇼핑명소를 지났다. 이쯤에서 나는 조금 특이한 술집엘 들어가게 됐다. 맥주 한 잔 정도가 고팠고 약간 출출했으며 다른 욕심 없이 그저 싸게 한 잔 마무리 짓고 미아키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저렴할 것 같은, 그냥 생맥주 한 잔만 마시고 나와도 별 무리 없을 것 같은 술집을 찾는건 너무 쉬웠다. 술집은 대부분 간판의 분위기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생머리의 보아가 3/4의 얼굴 각도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보아의 손쯤에skechers라고 운동화 브랜드가 적혀있다. 그 맞은편 상가의 2층으로 나는 올라갔다. 계단 참 저렴한 느낌 잘 전달하여 목적에 맞게 제대로 찾아왔다 나를 안심시켰다.


三平酒寮(산페이주점) 澁谷店(시부야점). 아라비아 왕자라면 "삼평주료 삽곡점"이라 부를 이 술집에서 나는 생맥주 500cc와 군만두를 시켜 먹었다. 음식맛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냥 시원한 생맥주에 인스턴트 군만두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궁금증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일본 사람들이 올린 주점평에 돼지고기 김치볶음 안주가 올라져 있었다. 나름대로 이 집의 주메뉴인가보다.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메뉴판의 메뉴는 일대의 다른 술집에 비해 확실히 싼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 산페이주점에 대해 쓰고 싶은 것은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이 주점의 문을 열어주고 주문을 받고 만두를 구워주고 맥주를 나르고 상을 닦아주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모든 일을 하는 주점의 직원은 세 명이었다. 아래는 그 분들과 같이 찍은 사진.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72세,73세라고 자랑하신다. 아마도 그 연세에 당신들께서 직접 일하시고 계시다는 점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우신 것 같았다.


그렇다. 모두 어르신분들이었다. 별 거 아닌 듯 해도 어디 가서 술집 종업원이 모두 할아버지로서 할아버지가 날라주시는 맥주 받아 먹은 사람 있는가? 기껏해봤자 노부부가 하는 술집에 할머니가 안주 무치시고 할아버지가 한손엔 행주들고 한 손엔 안주를 서빙해주시는 정도다. 게다가 요리사 모자(?)까지 제대로 차려 입으신 요리 담당 주방 할아버지까지...! 한 분은 무뚝뚝해 보이시고 한 분은 친절하시고 한 분은 수줍은 세 분의 할아버지가 서빙하는 이 술집. 그렇다고 술집 손님들이 장년의 손님들이냐! 그게 또 아니다. 손님들은 저렴한 것을 좋아할만한 20대가 대부분, 그리고 회사원들이었다.

할아버지들끼리 갹출하여 인수한 술집인지, 원래 친구분들인데 의기투합한건지, 노인대학에 취업 공고를 냈더니 하나 두 분 찾아와서 취직한 것인지, 나의 일어는 너무 짧고 그분들의 영어 역시 너무 짧았다.

그러고보니 오래전에 TV에서 일본의 한 호텔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노인들이 모두 취업한 호텔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로비에서 손님을 맞는 사람도, 청소하는 분들도 모두 노인분들이었다. 일본에서 노인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약자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이라고 경로석도 아닌 자리를 양보해준다든지 그런 일이 별로 없다. 일본의 노인들도 나서서 큰소리를 친다든지, 그러니까 젊은 너희 세대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어야한다,고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안 좋다든지 아니면 더 낫다든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의 실버 세대들의 재취업을 가로막는 아주 중요한 것중의 하나가 '경로 우대 사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로 우대 사상의 어떤 면이 우리나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르신 앞에서는 술도 돌아서서 마시고, 불편하게 어떻게 어르신들에게 앞치마를 두르게 하며, 술 마시고 놀러 가는데 할아버지가 쟁반 들고 나르는데 또 어떻게 앉아서 받을 수가 있는가, 점장 입장에선 그 노인네 받았다가 다른 젊은 직원들이 불편해하면 서로 골치아프다, 뭐 이런 생각들이 한국의 노인들을 자꾸 사회 현장에서 멀어지게 하는 거다. 어르신들도 쟁반을 나르면서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고 속으로 '뭐야 이 젊은 것들, 냉큼 일어서서 받아 들지 못하고'라는 생각이 완전히 떨쳐질 수 없는 현상, 이런 분위기에서는 실버 고용을 늘리자고 백날 떠들어봤자 고용 상황이 빨리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만 65세 이상 알바 써빙 구함'이라는 모집 벽보가 게시판에 붙을 날이 한국에서도 과연 올까? 매일 할머니들만 남녀 화장실 청소하고 주방 보조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같이 일하고, 연령이 어떻든간에 손님이 불편해하거나 과도하게 신경쓰지 않고 무심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과연 될 수 있을까?

할아버지 한 분은 너무도 친절하셔서 당신이 그린 그림 한 장까지 선물이라며 테이블로 들고 오셨다. 개구리가 나무를 물고 옆에는 나비가 나는 그림인데 그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스케치북엔 온통 나뭇가지를 문 개구리 그림이었다. 무슨 뜻인지 모를 그림이라 그냥 일본의 무슨 전래 동화의 한 장면인가보다 하며 감사의 인사 꾸벅...이거 어쩌다보니 도쿄 먹자 여행이 아니라 도쿄 마시자 여행인 듯 술집 위주 포스팅 이어지고 있다,흐.


------------------------------------------- (오늘의 절취선)---------------------------------------------

[hertravel의 지구 한바퀴 여행 정보 4
- 할아버지들의 맥주집, 시부야의 산페이 주점]

1.
이 어르신들이 서빙해주시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시부야의 sketchers 신발 매장을 찾아가면 된다.
(그 맞은 편 2층)


2.
일본 먹자 정보가 있는 tabelog에 실린 산페이 주점의 정보는 http://r.tabelog.com/tokyo/rstdtlmobile/13024565/
일본 야후 구루메()에 실린 내용은 http://gourmet.yahoo.co.jp/0000904735/0002883189/ktop/

3.
이 곳은 할아버님들과 놀랍고도 즐거운 만남의 경험을 한 곳이고 가격 역시 싼 편인 곳임은 확실하지만 특별한 맛집이어서 쓴 글은 아니라는 점 잊지 맙시다.

------------------------------------------- (오늘의 마무리)---------------------------------------------

by hertravel | 2007/02/24 18:51 | 도쿄 먹자 여행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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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까날 at 2007/02/24 19:10
마시자 여행이 맞는듯...
Commented by BbasyLover at 2007/02/24 19:17
저 할아버지 세 분 정말 즐거워 보여요~ 혈색도 좋고 정정하시달까; 저런 분위기 정말 좋네요 >.<
Commented by skalsy85 at 2007/02/24 21:08
어머나. 저 그림이 정말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 맞아요?? 개구리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걸요~:) 여행중에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나시네요~ :)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2/25 00:17
까날님> 네 아직 여행이 도착날 저녁을 넘어가질 않아서 계속 술판입니다 ^^

Bbasylover님> 세 분 정말 활력있어 보이시더라구요 좋아보였어요

skalsy85님> 그러게요 스케치북 한 권이 온통 개구리 그림이었어요. 사실 그림 속의 개구리는 어쩐지 좀 무섭지만 전래동화(혼자 멋대로 결정내렸지요^^)의 내용이란 원래 그렇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
Commented by 히카리 at 2007/02/25 00:47
아줌마 써빙까진 상상이 가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는 정말 상상이
안 가네요. 신기!
Commented by Charlie at 2007/02/25 02:04
사진에 할아버지들 성격이 너무 잘 나와요. 가운데 할아버지의 v 포즈라니~!
(그런데, 그림 들고 계시는 분은 누구신가요~~~ :D
Commented by 퍼프 at 2007/02/25 02:10
멋지다는 생각을 넘어서 뭉클하기까지 하네요.
밸리 타고 들어와 잘 보고 갑니다.
할아버지들 표정이 너무 좋으세요 :)
Commented by 루스 at 2007/02/25 05:57
경로우대사상이 정말 노년층의 재취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겠군요......

맥주랑 꼬치구이가 먹고 싶어집니다. 모든 것은 먹는 걸로 귀결........
Commented by Remi at 2007/02/25 06:01
저도 밸리에서 타고와서 즐거운 글 잘 읽고 갑니다^^
할아버지들께서 전부 푸근하신게 가보지 않아도 음식점 분위기가 좋은것이 느껴지는것같아요:D 그리고 그림에 나온 개구리는 아무래도 캅파(河童)인것같은데, 일본 전통의 상상의 동물 중 하나라고해요:) 저 머리에 동그란 부분에 물이 들어있다고 하던가..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꽤 무서운 괴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저 그림에서는 너무 귀엽네요^^
멋진 여행기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Commented by 1mokiss at 2007/02/25 06:23
경로우대사상에 대한 생각, 저도 어떤 부분은 그렇다고 생각해요. 제 부모님이나 주위의 어른들을 뵈어도 아쉬운 생각이 종종 듭니다. 술, 많이야 하시지 않겠지만,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Commented by NINA at 2007/02/25 19:29
멋지네요.. 그리고 경로사상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네요.
Commented by 무늬 at 2007/02/25 22:07
한 번 가 보고싶은 술집이네요.
Commented by 나달 at 2007/02/26 17:27
삿포로 온천일주...... 일정짜시죠, 같이 ㅠ.ㅜ (아, 물론 그전에, 몸부터 씸플해져야... ㅎㄷㄷㄷㄷ)
Commented by 똥사내 at 2007/02/28 10:25
멋지닷(덜덜)
Commented by 이시미 at 2007/02/28 19:50
포스트들이 다시 공개되었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Commented by 소마 at 2007/03/01 16:45
이런 일이 생겨서 여행~♡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3/05 00:07
히카리님/ 그렇죠, 저도 곰곰 생각해봤더니 아주머니급 할머님들은 일을 하고 계시던데 할아버님 실종 사건이 전국적이더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Chalie님/ 이런 이런 그러게나 말입니다

퍼프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3인조 할아버지 팬 한 분 추가!^^

루스님/ 역시 먹는 것이 알파요 오메가...

Remi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오 드디어 저 그림의 의미를 알게됐습니다! 갑파! 스케치북 한 권을 저 갑파 녀석으로 모두 도배를 한 주방장 할아버님! 저에게 그림 설명을 열심히 하셨는데 아마도 그 설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 부분의 물! 감사합니다~

1mokiss님/ 제가 요즘 건강이 쫌 좋아져서 살짝 포스팅에 적극 음주 분위기가 흘렀나봅니다. 깜짝 놀라지 마세요 아프지는 않을께요 실은 3일전에 선을 넘어 자중 근신 기간 흘렀습니다 :)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3/05 00:08
NINA님/ 저만의 제멋대로 생각이지만 읽어주시고 답글 달아주시니까 감사해요^^

무늬님/ 사실 별다르게 내세울 것은 없는 술집입니다. 할아버지들만 손님을 맞아주시니 신선한 느낌이 있었지만요^^

나달님/ 안녕하세요 나달님 필 받으셨군요 ;)

똥사내님/간단 명료 덧글 감사합니다 ㅋㅋ

이시미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시미님 기다려주셨다니 또 한 번 큰 절을... ;)

소마님/ 역시 생각지 못 한 만남이 여행~ ;)
Commented by 블루피쉬 at 2007/03/06 23:31
우리동네 식당하시는 욕쟁이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음식은 별로고 욕만 잘하시는..ㅠㅠ
언젠가 재털이를 달라고 했더니 할머니왈 "바닥에 버려, 새퀴야~!"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3/07 03:27
블루피쉬님/ 푸하하 음식은 별론데 욕만 잘하시는 욕쟁이 할머니...새벽에 리버스됩니다...
Commented by 오스카 at 2007/03/29 11:09
밸리타고 왔다가 좋은 여행기 많이 봅니다^^ 할아버지들이 서빙하는 주점, 너무 좋네요.
저도 10년쯤 전에 도쿄 여행갔다가 신주쿠의 어느 호텔에 묵었는데, 남녀 종업원이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라 왠지 더 푸근하고 서비스도 안심이 되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해에 다시 가려 했더니 호텔이 없어진 게 유감이었어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5/26 16:19
오스카님 안녕하세요 덧덧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경제 인력으로서 할아버지들을 다시 바라보고 계층이나 나이나 장애에 상관없이 함께 어울어져서 살아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생각을 해 주셨군요. 덧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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