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7월 14일
프라하의 명물,목발의 관광객 / 프라하_75
프라하의 명물인 목발의 관광객이 탄생하게된 그 날의 시작은 이러했다. 그 며칠간 나는 켁켁거리다가 숨을 헐떡이며 자다가 깨곤 했다. 잘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아무리 인대나 뼈가 어떻게 됐기로, 이렇게 두터운 석고 덩어리를 붙여 놓지는 않는 것 같은데, 이런 석고 다리를 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체코 사회주의 국립 병원 응급실 의사는 나에게 코끼리 다리 하나만한 석고를 둘러 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밤마다 이 무게에 내가 눌려 켁켁거리다 깨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앞의 글에도 나와 있듯이 카프카의 마지막 잎새를 집필하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오들오들 심지어 주인도 없던 숙소를 지키며 떨던 나날이었다."그래도 하루는 나가 봐야지!"
이전까지 한 번도 골절상같은 것은 당해보지 않았기에 지금 상황이 매우 심각한건지 매우 우스운건지조차 감이 안 왔다. 다만, 조금이라면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숙소 앞에 시내로 가는 트램이 있으니 그저 트램이나 타고 시내에 나가서 맥주만 한 잔 마시고 와도 이 싸늘한 우울함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사실 내가 받은 석고 깁스 처치로는, 그리고 당시 내 상황으로는 그런 길을 나서는 것은 많이 위험한 일이었는데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나는 숙소를 나섰다. 아... 그러나 그냥 빨리 걸어 1분이면 걸어갈 트램 정류장이 그렇게 길 줄이야...! 목발을 짚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호기심과 장난으로 한 번쯤은 목발을 짚어보고 싶어하지만 목발이란 얼마나 놀라운 어깨 근력과 한 쪽 발목 근력을 필요로 하는 근골격계 노동인지...!
절뚝 절뚝 목발을 짚고 걸어갔다. 숨이 찬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데, 이때까지 걸어온 거리를 다시 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 마음 먹었던대로, 사실은 돌아가지 못 해 눈물을 머금고 정류장으로 갔다. 장애인의 날이면 각종 미디어마다 어느 정치인이 무슨 장애 체험을 하고 휠체어를 타고 전철을 타고 눈을 감고 어디를 건너고를 했다고 뉴스가 나오곤 했다 나는 그걸 일종의 전시행위 show라고 보며 '저 장면 찍고 차타고 집에 갔겠지'하는 생각이었는데, '아무 것도 실감하지 못했던' 나보다는 그래도, 미디어 앞에서라도 체험을 해 보았던 그저 그런 정치인이 나보다는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일같은 서구 유럽 국가와는 달리 계단을 올라야하는 체코의 트램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도 마침 종점이었기에 트램의 기사 아저씨가 나와서 나를 부축해 주셨다.

숙소 앞 정류장의 18번 트램은 프라하 성 뒷 문으로 해서 카를교를 보며 강 건너 프라하 성도 보고 구시가 광장에도 갔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일주 노선이다. 그러니 그냥 트램에 타고 한바퀴 돌고 집으로만 와도 되는 계획이 선다. 하지만 욕심이 하나 있었는데, 중간에 한 번 내려 구시가 광장으로 한 200미터만 걸어가서 노천 카페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예전에 왔을 때 워낙 이 도시를 샅샅히 훑고 갔기에 굳이 프라하에 대한 미련은 없다. 삐보-프라하에서는 맥주를 '삐보'라고 부른다-에 대한 미련이 있을 뿐이다.
어느 나라 탈 것이나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는 장애자및 노약자의 좌석! 나는 코끼리 다리만한 석고를 맞은편 의자에 걸치고 세상무적의 자세로 앉았다.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 올리라고해서 그러고 누워 며칠을 지냈더니 벌써 몸이 다 무겁고 턱밑이 도타와졌다. 게다가 석고 다리 활동에 편한 위주로 입고 나온 옷은 완전 추함의 포트폴리오다...

한 번 본 길은 잊지 않는 것이 나의 특기다. 그랬다, 이 길은 아라치와 모니카와 함께 지났던 길이다. 지금 초겨울의 이 길에서 2년 년 전 한 여름 이 길을 지나던 우리 셋의 모습이 보인다. 길 건너 잔디밭에는 부랑자같은 남자가 마음껏 누워 자고 있었지. 멀쩡한 다리가 얼마나 큰 복인지, 다시 다리 타령이다.


카를교 입구를 지나자 (모두 버스안에서 차창으로 찍은 사진이다) 강 건너로 야경으로 유명한 프라하 성이 보였다. 2003년 뙤약볕 아래에서 걷는 것조차 눈부시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우중충한 하늘아래에 저 멀리 보일 뿐이다.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구시가 광장이다. 네모난 광장 주위를 고딕, 르네상스, 로코코, 바로크풍의 여러가지 스타일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진은 구시가 광장의 틴 성당이고, 광장 앞의 저런 노천 카페는 프라하 전국 노천 카페를 통털어서 가장 비싼 맥주를 팔고 있다.
그 비싼 노천 카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이 곳 구 시가 광장을 가로지르기까지 몇 번을 걸었다 쉬었다 앉았다 쉬었다 하면서 불굴의 의지로 도착한 나에게는 비쌀 것이 하나 없는 천국의 테이블이었다.
프라하를 떠난 이후로 항상 먹고 싶었던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를 시켰다. 바람이 너무나 차가왔지만 야외의 개스 히터는 고장이 난 상태였고 (이것들이 고장났다고 거짓말하고 연료를 안 넣는 건지, 고장난 것도 그냥 놔 두고 유인책으로 쓰는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조금 쌀쌀하다 싶었지만 어쨌거나 여기 나와서 앉아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런데 갑자기 '쌀쌀'이 아니라 '살을 에이는' 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으아 얼어죽겠다. 에잇...! 그런데 관광객들은 이미 알고 준비했는지 다들 러시아에서나 볼 법한 털모자를 머리에 얹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같이 모여서 한겨울 옷을 입기로 짰나...? 손이 곱아서 여행기도 쓰기 힘들었다.
그래도, 삐보는 마냥 맛났다. 새하얀 순백의 테이블보 위에 양해를 구하고 턱하니 올려 놓은 나의 코끼리 다리의 건방도 기분 좋았다. 물론 다리만 코끼리가 아니라 몸도 역시 코끼리의 그것이었던 나였다. 10월중순에 여행을 떠났는데 어느새 11월이 된 것이다. 나는 싸 왔던 늦여름 분위기의 옷과 간편한 가을옷을 다섯 여섯 일곱 겹을 입고 이 거리를 굴러왔던 것이다. 청바지 속에는 잠옷용 바지가 속바지!로 겹쳐 있고, 유럽에서 버리려고 가져온 십 년 묵은 오리털 조끼가 한 겹, 두 겹, 세 겹, 몇몇 겹의 웃옷 위로 패션감각과는 천만 광년의 거리로 레이어드 돼 있다.

프라하에서 그 유명한 천문 시계 이벤트는 고장나서 수리중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시계 중의 하나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의 다리가 다 고장 수리 상태에 빠졌다. 왕이 어느 시계공에게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을만한 멋진 시계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 시계공이 이런 멋진 시계를 만들자 어디 다른 나라에 가서도 비슷한 것을 만들까봐 시계공의 눈을 뽑아 멀게 했다는, 인간의 무서운 속성이 반영된 '세상에 하나뿐이 나만의 멋진 시계"도 가끔 이렇게 고장이 난다.
어쨌거나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 여행의 초반엔, 한국에 남겨 놓고 온 이런 저런 것들을 근심이 자꾸 떠올랐었다. 이렇게 여행지에서 덜컥 일시 정지를 당하고 나니 이전에 한국에 놔두고 온 일을 걱정한 것이 얼마나 필요없는 것이었나 뒤늦게 알 것 같다. 여행중에 툴툴거리며 보내버린 짧은 토막 시간까지 아까왔다. 그런 것이 바로 여행을 겸손하게 보내지 못 한 일 같아 이렇게 환기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든다. 이렇게 해서 다시금 여행, 그 존재 자체의 고마움에 다시 눈을 뜨고 겸손하게 행복함을 즐기는 나의 유럽 2차 여행이 시작되는 거다. 햇빛이 조금 그립지만 추위도 고맙다. 다음 여정을 제대로 갈 수 있을까, 아니, 꼭 가야 한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더욱 Italy의 햇빛에 목마르다. 소렌토에 가서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부르겠다고 여행 내내 흥얼거리며 여기까지 왔던 오지 않았던가.
# by | 2006/07/14 18:33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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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학생이라 못하고 있지만 저도 항상 이러한 여행을 목표로하고 있기 때문에 부러운 마음이 드네요 ^^ 재미있는 글들 잘 읽고갑니다.
링크 담아갈께요 다리 빨리 나으시길^^
살짝 발목 접질러서..이틀정도 절뚝거리며
이집트를 걸었었는데...제 경험은 비할바가 못되는군요..
정말 힘드셨겠어요ㅠㅠ
그나저나 정말 힘드셨겠어요..정말 대단하십니다;ㅁ;!
나이트엔데이님/ 글마다 비극적으로 등장하는 흰색의 석고 자투리만으로도 흠뻑 느끼실 수 있습니다.ㅠ ㅠ
Andrea님/ 님도 대단하시군요, 절뚝이며 이집트를 걷다니...정말 저도 접질리기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 정말 다쳤던 그 순간은...
마르님/ 어휴 그런데 지금 글 쓰면서 회상만 해도 너무너무 힘든 거 있죠 숙소를 나서기까지는 제가 어떤 상태였는지 잘 몰랐다가 다니면서 알게된 거죠ㅠ ㅠ
JyuRing님/ 힘든 길이었지만~저 녀석을 마시고 왔다는 걸로 갈증 해결... 시원하기엔 매우 추웠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유럽 꼭 가고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