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7월 12일
프라하 앰뷸런스와 응급실 시찰기 / 프라하_73
눈 앞에 이상한 빨간 체코어 종이가 붙여져서 '이건 또 뭐야'하고 고개를 돌리며 턴하는 순간! 내 발에 닿아야 할 바닥이 닿지 않고 그대로 쑤욱 (그 때 느낌엔 끝도 없는 '추락'이었다) 빠져 내려가는 것이었다.
어어어어어?
하는데도 계속 발은 더 더 아래로 쑤욱 내려간다.대형 사고!라는 본능이 머릿 속을 스친다. 짧은 생애를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엄청난 파워로 (전 체중과... 턴하던 회전력과... 준비하지 못 한 낙하 속도와... 다른 데 가 있던 시선의 결함까지...) 나는 발목이 완전히 꺾이다 못 해 구부러지는 걸 느꼈고 머리를 벽에 고개 꺾여 부딪히고 팔꿈치를 바닥에 부딪히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몸체가 발목을 축으로 역으로 무너지면서 바닥에 팔꿈치와 무릎을 찧은 것이다. 넘어진게 아니다, "무너졌다". 반사 신경이고 뭐고 소용이 없었다. 이미 앞으로 맨 배낭으로 나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완전히 속수무책으로 인간 삼풍의 붕괴!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불쾌한 아픔이었다. 나는 그 돌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머리나 팔꿈치 부딪힌 건 뭐 생각도 안 났다. 잔뜩 땅겨진 고무밴드 같은 것이 탱!하고 끊어진 느낌. 조금 지나자 발목 이하 발 부분이 덜렁 덜렁 달려있는 느낌이었고 한 편으로는 누가 갑자기 아동 인형극의 소품으로 특별 제작한 큰 주사에 약물을 꽉 채우고 복숭아뼈에 물 한 컵은 주입한 듯 부어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넘어지는 소리에 2층에 있던 집 주인장께서 달려 내려 왔다, 이 와중에 오지랖 넓은 나는 계단 위에 서서 얼굴을 감싸안고 어떻게 하냐고 당황해하는 여주인에게 외쳤다...
"괜찮아요, 저 보험 들었어요! 여행자 보험이요...!"
여행자 보험에 대한 슬픈 파종의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
그렇게 체코 프라하의 응급차는 달려왔다. 프라하는 응급차가 유료란다. 50유로(약 6만5천원)를 냈다. 흐흐 이 참에 프라하의 응급의학과 현장을 시찰하는 것인가?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른다.

국제적으로 앰불런스라 하면 당연히 하얀차를 떠올리지 않나? 하지만 프라하의 앰불런스는 야광 노랑색을 자랑했다. 그리고 응급 요원들도 구청 공무원 시험의 인기 업종이신 청소원 아저씨표 야광 주황색 띠를 자랑한다. 도대체 나는 어떤 인간이길래 이 와중에 여행중 관찰 본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가, 이 순간에! 아무튼 내 발에 식초를 들이 부어주신 여주인의 응급처치에 처음보다 붓기가 조금 가라앉은 발을 들고 앰불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뾰뾰뾰를 울리며 병원 도착.

나중에 들어보니까 이 병원이 프라하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란다. 체코의 대통령이 다니는 병원이라고 모두가 나를 안심시킨다. 우리로 치면 국립 병원, 혹은 국군 병원 같은 데다. 우리나라라면 국공립 병원이라면 조금 그런 느낌이 있지만 체코는 워낙 사회주의 국가라 민간 병원보다 이런 곳이 더 유명한 병원이라고 했다.
하필이면 내가 다친 그 날이 체코의 공휴일이었다. 그래서 일단 조금 젊어 보이는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혹시 의과 대학생은 아니겠지!) 의사는 뭐라뭐라 체코어로 떠들고... 의료 용어가 통역이 좀 힘든가, 민박집 여주인이 통역을 해 주는데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이다.
"지금..... 피부..... 뼈.... 사이에.....뭐가.....뭔지..... 있는데..... 거기에 문제 있는데....음.... 1주일 있어야 하는데....... 1주일 있다가..... 오면.... 걸을 수 있다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는데 왜 이렇게 아픈지, 왜 이렇게 꼼짝을 못하겠는지,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진단 받으니 뼈가 부러졌더군요) , 인대는 늘어났다는 건지 끊어졌다는 건지...하루 전에나 다쳤으면 우리나라 축구 선수들도 인대 늘어났다 하면 무조건 날아가는 정형외과의 세계 최고봉에 깃발을 휘날리는 국가, 독일에 있었을텐데... 독일 사람들은 영어 하는 것도 좋아하고 잘 하던데... 하루 늦게 체코에서, 그것도 '공무원으로서 하는 만큼만 하는' 사회주의 의료 현장에 툭 떨어지다니! 이것도 운명인건가.

심장보다 깁스가 낮으면 위험하다는 말 하나는 확실하였기에 숙소로 돌아온 나는 누워서 나름대로 발을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프라하 여행 첫 날을 보낸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침대에 누워 여행 캐리어에 발을 올리는 방법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방법에 안착하기까지 프라하 군인 병원 제작 대형 어그 부츠를 신은 내 다리는 곳곳에 올려보는 수모를 당했다.
가슴이 찢어진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겨울 유행 예감 아이템이던 부츠를 사려다 여행을 먼저 떠나온 길이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의 부츠였다니, 진정코 이게 현실이란 거야?
# by | 2006/07/12 18:32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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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여행기의 카테고리가 '유럽과 나의 왼발'이었던 건가요?
그래도 별 문제없이 잘 나으신 거지요?
지난 일이니 이렇게 적으셨겠지만 정말 소리업는 눈물을 흘릴 만 하네요.
그러고 보니 티벳에 갈 때도 한국인 누군가 차사고가 나서 머리가 깨졌는데도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던 모습이 생각나는군요.ㅠㅠㅠㅠㅠㅠ 한국와서 진단받은 결과가 그러했다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뿐입니다,
ARMAN/ 그토록 오랜 기간 잠자고 있던 고등학교 교지 편집부 기자 정신때문이었군요! 저도 몰랐던 ㅠ ㅠ
enchante님 / 그렇습니다. 유럽과 나의 왼 발, 다행히도 유럽에 나의 왼 발을 놓아두고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윤정님/ 여주인분이 참 친절하게 병원에서 보호자로 계속 옆에서 함께 해 주셨답니다. 처음에 다치자마자 얼음찜질도 해 주시고요 나중에도 체코식 냉동 야채 찜질도 가르쳐주셨습니다
마르님/ 그렇죠, 저의 왼발 추락 사건과 소설 '나의 왼 발'에서 동시에 가져온 제목입니다.
ssen님/ 천기누설이라면...앞으로 더욱 놀라운 사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wannacat님/ 제가 아니라 저를 찍은 사진도 있죠. 꼭 저만의 광기는 아니랍니다 ㅋㅋ 모두의 광기와 체코 국립 병원 제작 부츠를 신은 저의 더한 광기가 계속됩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이국땅에서 뼈까지 부러지셨군요; /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