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7월 07일
한밤의 프라하로 / 프라하_68
프라하로 가는 열차는 체코쪽 열차다. 열차 수준이 확 떨어진다. 열차 화장실엔 물비누가 아니라 진짜 비누가 세면대에 얹혀 있고 변기 물도 센서나 발판이 아니라 손을 대서 내려야 한다. 투정하는 것이 아니다. 동구에서 제일 잘 사는 체코지만 아직도 서쪽에서 갈 때는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있단 거다.

창 밖으로 나무가 참 많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져 가고 이 끝없는 숲엔 정말 눈 앞을 알 수 없을 정도의 희뿌연 안개가 가득하다. 유럽에서 왜 마녀 이야기가 나왔을까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불빛이 어슴프레했을 중세의 독일 사람들에게 안개가 가득한 전나무 숲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숲을 혼자 걷다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러니 그림 형제의 동화에선 숲 속에서 늑대에게 잡혀 먹고 길을 잃고 마녀에게 사육당하다 잡혀 먹힐 뻔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좋아하는 피터 오젤린스키의 삽화가 있는 헨젤과 그레텔 책 표지)
그런데 기차가 서도 너무 지나치게 자주 선다. 친절하게도 온갖 역마다 서주시더니 중간엔 차량 추가까지 해 가면서 가던 이 열차, 이제 밤이 깊어 이미 창 밖은 깜깜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워서 여행책자를 보며 컴파트먼트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지루함을 달랜다. 방금 뭔가 굉장히 양념이 쎈 저녁 식사를 마치시고 오신 것이 명명백백한 프라하 국경 역무원 아저씨들과 (옷을 무슨 독일 비밀 경찰처럼 입었다) 독일 역무원 등등의 분들에게 열차표와 여권을 보여주며 간다.
밤 10시가 벌써 넘었다. 이미 도착 시간이 지났는데도 프라하는 보일 생각을 안 한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좌석에서 일어나 창가로 나왔다. 창 밖으론 프라하는 커녕 도시의 기미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프라하는 어디에 있답니까?" 어떤 아저씨가 영어로 나한테 농담을 한다. "이 기차가 프라하 가는 거였나요?" 나도 대답한다. 뭐 이런 싱거운 농담 몇 번이면 아무리 도착 지연이라도 프라하 표지판이라도 나타나야 할텐데 11시가 넘어도 아무 소식이 없다.
또 다시 기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어쩌다 지나치는 작은 역은 껌껌한 유령의 마을. 불과 오늘 아침엔 내가 프라이부르크에 있지 않았는가, 하루에 프라이부르크에서 뉘른부르크 그리고 프라하까지, 이렇게 아침부터 기차를 많이 탄 나는 사실 많이 피곤했다. 복도에서 나누는 실없는 농담이 아니고는 이 지루함을 어떻게 견뎌볼 수가 없다.
그러다 드디어 드디어 도착! 10시 좀 넘어 도착하기로 한 열차가 11시 50분, 프라하 흘라브니 나드라지 역에 도착했다. 서구 유럽 도시에는 다 있는 계단에서 캐리어 갖고 내려 가는 벨트도 2년만에 왔는데 역시 없다. 오밤중에 내린 역사였지만 여전히 눈에 익다. 물론 좋아진 점도 있었다. 어두침침하던 역사 내부가 아주 밝아졌다. 이제 등을 많이 켜 놓는구나.

(프라하의 흘라브니 나드라지 역내 모습)
그나저나 숙소도 예약 없이 밤 11시50분에 내린 한 밤의 프라하! 이래서 밤에 도착하는 기차는 변수 하나만 있어도 꽤 골치아프단 말이야...새벽 2,3시까지 문 연 곳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안된다. 외국은 턱도 없다. 수첩을 꺼내서 한국에서부터 적어온 민박집에 전화도 해 보고 그 후 여러 집에서 너무 늦어서 픽업을 나갈 수 없다며 퇴짜를 맞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도 답답하니까 그 때 생각엔 거기서 네 시간만 앉았다가 차라리 숙소에 전철타고 버스타고 들어가자, 그럼 하루 숙박비에다 부르는게 값인 엄한 프라하의 택시비를 안내도 되니 좋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역시 긴급 상황에선 싫으나 좋으나 민박 교포에게 기대게 된다는 배낭 여행의 막판 몰림! 마지막으로 전화한 숙소 아저씨가 15유로에 택시 하는 자기 친구라는 체코 남자를 역으로 보냈다.
언뜻 보기에 러시안 레슬러처럼 보이는 거구의 운전사, 이 분이 딴 맘 먹으시면 나는 뼈도 못추리겠다 싶어서 마음 속에선 겁이 났다. 그 분이 운전하는 차는 어느덧 도심을 벗어나는듯, 우리나라로 치면 남산 순환 도로에 올라타신다. 그렇게 밤안개가 심하게 낀 자정 너머의 프라하 언덕을 구불구불 차가 올라가는데 한 번 프라하에 와서 샅샅이 보고 갔던 나에게도 처음 보는 생활인들의 도로라 아무 것도 모르겠다. 순간순간 이 기사 아저씨를 믿어도 되나, 살짝 부들부들 떨며 가는데 차가 섰다. 민박에 도착했다.
주인 아저씨가 끓여주는 큰 사발 우동 컵라면을 먹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유럽 여행 하느라 돈도 많이 쓰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체코는 물가가 너무 싸다, 그러니 체코에서의 일정을 대폭 늘여라, 심신을 쉬고 가라,고 설득하신다. 와, 어쩌면 2년 전 프라하에서 묵었던 다른 한인 민박집 아저씨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말씀을 하시는지! 이 곳 프라하의 민박 교민들은 일단 손님을 받은 뒤에 날짜를 늘이는 방법을 마케팅 전법으로 계발하신 것 같다.
나는 잠이 든다. 아침에 떠났던 프라이부르크의 일이 3년 전쯤의 일처럼 아득하지만 내 팔뚝과 온 몸에는 그 곳 흑림장에서 물린 벌레 자국으로 수두를 앓는 아이 꼴의 현재진행형이다. 가렵다보니 이 곳의 침대도 다 가려운 것만 같다. 한국을 떠난 지 이제 열흘인데 나는 우리집 내 침대의 뽀송뽀송한 시트가 그립다...
# by | 2006/07/07 18:27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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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담배피러 나간 사이에 동행하던 친구가 역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떠들면서 자기는 일본인과 함께 다니고 있다고 장난을 쳤더군요. '애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며 한국말을 잘한다, 할아버지가 부산분이라서 한국말을 부산사투리로밖에 못한다;, 지금은 부산에 있는 해양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등등..' 제가 그때 머리를 빡빡밀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달고 다녀서인지 친구의 농담때문인지 담배를 한대 태우고 들어오는 저를 보면서 사람들이 영어로 인사를 하더군요-_ㅠ(차라리 일본어로 인사를 하든가) 그리고나서도 계속되는 친구의 주접때문에 저는 결국 사실도 못밝히고 그냥 같이 낄낄거리다 헤어졌어요.. 그 사람들 일기장엔 '부산사투리를 잘 쓰는 신기한 일본인 한놈을 봤다'라고 쓰여있을 지도 모르는데ㅋㅋ 좋은 추억 만들어드린 거라고 뿌듯해하고 있답니다...=_=
hanself님/ 짖궂은 친구분이 계시군요. 실은 그 친구분, 저와 매우 비슷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실은 저도 홍대 클럽에 후배랑 같이 갔을 때 (술이 좀 취했습니다) 영국애들이 갑자기 떼로 놀러 왔지요, 어쩌다 잡담을 하게 됐는데 제가, 그냥 장난으로 제 후배가 원래 일본에서 살았다. 아빠는 한국인인데 엄마가 일본인이다. 그냥 그렇게 필요없는 농담으로 끝났으면 좋았는데 그 영국애가 갑자기 '자기도 일본에서 살았다'며 반색을 하고 일본어를 제 후배에게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