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장인의 광장 / 뉘른베르크_65

 
저길 들어가? 말아? 그러고 있는데 반지하도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태우시던 노숙자 모임의 일원께서 망설이고 선 나에게 '들어가 봐요, 들어가 보면 더 좋아요'라며 적극적으로 관광 가이드를 하신다. 아, 물론. 그것이 아니라 '저기 들어가지 마요, 들어가 보면 늑대가 당신의 빨간 모자를 먹어치울거야, 이런 제길!'이라 말했다해도 어차피 나는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성벽 바로 앞에 머리가 둘 달린 독수리 문장이 그려진 아치형 성문 앞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머리 둘 달린 독수리 성문은 퀴니히스토르Konigstor문이라고 한다.

성문을 들어가는데 현수막에 HANDWERKERHOF ALT NURNBERG라고 써 있다. 여기서 또 제멋대로 독일어 넘겨 짚기가 시작된다. HANDWERKER = 핸드워커? = 수공예업자? HOF = 호프 = 광장. 마당.요건 맥주를 하도 마셔서 확실하고, ALT = 올드 = 舊 NURNBERG = 뉘른베르크! 즉, 옛날 뉘른베르크의 수공예업자들의 광장?

 
(알고보니 장인들의 거리, 그리고 뉘른베르크 구 도심으로 가는 길이란 뜻이었다)

(중세로 치면 각종 장인들의 길드 표시 같은... 그런 사인이 걸려 있다)

역시 한국에 돌아와 찾은 자료에 보니 중세 장인의 광장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민예품을 판매하는 민예품점에서 레스토랑, 상점 등 소규모 점포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최근에 이 거리는 소매치기 거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도난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라고 책에 써 있었다. (코스따라 세계 여행 1999년판)

우하하! 소매치기 거리? 1년 내내 복작복작대다가 딱 하루 오후에 잠시 찬바람과 파리가 날리던 때에 내가 하필이면 365분의 1의 난관을 통과하고 입장한 것인가, '소매치기의 거리'는 소매치기는 커녕 사람이라고는 정말 몇 명 보기 힘들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예전에 어느 소매치기가 이 곳을 주 작업장으로 지정했다면 그 분은 지금쯤 벌써 어둠의 손을 씻고 전업을 했을 것이다. 전업하기까지 너 댓 명의 관광객을 두고 열 두 명의 소매치기가 피튀기는 접전을 벌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켓이, 시장이, 파이가 너무 작다고 이 바닥을 떠났을 것이다.

(관광 시즌이였다면 그녀의 무릎 정도는 물에 잠겨 있었겠죠)

터덜터덜 좀 더 걸었다. 햇살도 적고 좀 차가운 날이었다. 어영부영하다가 한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다. 퇴락한 놀이 공원 기념품 상점 거리같은 곳을 쓸쓸하게 거닐기엔 안타까운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 때였다, 그냥 시시한 기념품 가게 몇 모아 놓은 스산한 작은 곳일 줄 알았던 이 곳의 뒷 문쪽으로 나갔더니 제대로 된 번화가가 나타난 것이다.

그건 마치 신세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해양 탐험가의 심정같은 거였다.

나가자마자 여행자 안내소가 있어서 거기 들어가서 지도를 얻은 뒤 대충 훑어보니까 여기가 바로 뉘른베르그 관광의 중심이 시작되는 곳이다. 우연히 걸어도 결국은 관광의 중심으로 들어오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여행자들은 자기가 모르고 걸었던 길이 우연히 유명한 곳으로 찾아 온 길임을 알고 혼자 감격하곤 하는데, 이런 일이 하도 잦다보니 유럽의 관광 루트 구조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게끔 보이지 않는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마저 든다.

by hertravel | 2006/07/04 18:25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핑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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