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7월 01일
하룻 밤 독일 술친구들 / 프라이부르크 Atlantik_62

웃통 벗은 프라이부르크 동네 아치 오빠들이 뒷산에서 맥주 드시는 모습에 대오각성 무한감명받은 나는 산중턱 바에서 헤파바이젠과 헬레스를 마시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하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훨훨 불이 타 올랐던 것이다. 때 이른 겨울잠을 자고 있던 나의 맥주 탐닉증이 불받은 것이다. 이미 너무나 늦은 밤 시간이지만 혹시나해서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밤 거리로 뛰쳐 나왔다.
각종 술집과 편의점 등 야간 음주를 위한 모든 것이 완비된 대한민국과는 달리 독일의 밤거리는 조용했다. 서너명의 술취한 남녀들이 지나갔다. 차려 입은 옷에 유쾌한 웃음소리가 촉촉한 밤의 돌바닥에 울려퍼졌다. 물어보니 자기들도 술을 마시고 오는 길인데 저 안 쪽 시내에서 마셨고 지금쯤은 문 연 곳이 없을 거라고 한다.
마른 혀로 입술을 축이며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길목에 자전거가 유난히 여러대 세워져 있었다.
때가 탄 듯 회색의 거친 벽과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작은 유리창이 몇, 등이 하나 켜져 있는 작은 문 하나와 간판만이 걸려 있다. "카페"라고 써 있지만 벽에는 온갖 공연 포스터가 붙여진 술집 분위기의 Atlantik이란 곳.
안쪽을 들여다보려고 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었던 나는 광분했다. 귀마개를 하고 수영모를 쓰고 한참을 잠수하다가 제 세상으로 돌아온 듯 뻥! 뚫린 이 기분!



전혀 기대도 안 하고 들여다 본 술 집 안은 시끌 시끌 북적 북적, 오렌지 불빛아래 사람들이 가득하고 한 쪽에서는 축구를 보며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과 자리에 앉아 뭔가를 말하며 웃어대는 사람들로 그 조용하고 허름한 회색 벽 하나 너머의 세상은 전혀 달랐다. 아- 이 성스러운 분위기여. 이 곳은 아이리쉬 바였다!Irish Bar는, 이름만 봐서는 아일랜드 맥주를 팔고 뭐 그런 아일랜드식 주점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나의 주류 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아이리쉬 바라는 뜻은, 우리 술집은 엄청 취하게 마시고, 떠들고, 맛이 가도 되는 그런 술집]임을 나타내는 말과 같다. 술 많이 먹는 아이리쉬들 명성 뒤에 숨어 세계 각국의 술꾼들이 맘놓고 술을 들이 부어 드시는 그런 곳이라고 나는 정의 내린다.

Bar에 앉아 생맥주를 시키고 마시며 유레일 기차 시각표를 보며 놀고 있는데 바텐더 아저씨가 위스키보다는 조금 크지만 처음 보는 작은 잔에 붉은 술을 갖다 준다. 옆에 앉아 있던 두 남자가 보낸 술이라고 한다. 곧 우리는 술친구가 되었다.
그들이 사 준 술은 독일의 전통주로 슈납스 schsnaps라는 술인데 40도가 넘는 독주로 유럽에서는 폭탄주로 쓰이는 술이었다. 슈납스 중에서도 그 지방 산딸기(?)인 요하네스비어 johannis beere로 만들었단다. 달콤하고 독했다. 몇 잔을 맥주를 그렇게 더 마시다 나도 한 번 슈납스를 돌렸다. 우리나라같으면 주고 받아서 더 좋아할만 한데 외국에선 어떤건지 아무튼 이런 통상적인 예의는 어떤지 모르겠다.
한 명의 이름은 알렉스. 그리고 또 한 명은 알안트. 한참 수다를 떨었다. 둘은 칼스뤄 고향 친구들인데 지금 돈을 벌까 싶어서 이 곳에 와 있다고 한다. 알렉스는 캐나다에서 산 적이 있어서 영어를 잘 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여행 얘기를 많이 나눴고 한글로 각자 이름을 적어 주었더니 무척 좋아했다.
신나게 얘기를 하다보니 바텐더 크리스틴도 이야기에 같이 섞였다. 그러다가 Bar 저 쪽에서도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오고, 그 쪽에 앉았던 꽤 취한 한 여자는 자기는 작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면서 이 쪽까지 찾아와서 놀았다. 결국 Bar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다같이 건배를 하고 놀게 됐다!
영국 사람, 미국 사람, 호주 사람처럼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과는 말 몇 마디만 나눠도 피곤한데 유럽 사람들처럼 외국어로 영어를 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그것도 술김에 완전 막영어로 하는 대화는 어렵지가 않다. 그래서 훨씬 더 오래 이야기 할 수 있다.
멕시코 공항에서 혼자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술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놀았던 멕시코 친구와도 밤새 수다를 떨었던 적이 있다. 축구 이야기부터 역사 이야기, 코로나와 몬테네그로 맥주 이야기, 심지어 미국 흉까지 봤다. 그래도...그래도... 술이 많이 들어가고 취기가 도니까 영어로 이야기하는게, 아니, 이야기 하는 것보다 귀를 기울이는게 너무 피곤해졌다...그리고 내일은 뉘른베르크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해...이제 그만 가야겠다...
그 때였다, 아니 여기가 한국이야 독일이야! 이 새벽에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선 분은 장미꽃을 파는 사람. 마침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서 일어나는데 알안트는 그것도 모르고 장미꽃을 하나 사서 나에게 주었다.
"푸하하! 알안트! 이러니까 니가 선수player라는 거야!"
하면서 와하하 웃고 "나 갈께!"하며 일어섰다. 안그래도 이 날 밤 알안트라는, 넙대대한 친구가 이 여자 저 여자들과 얘기를 자주 하길래 "한국에선 너같은 사람보고 선수라고 불러!"하며 계속 놀려대던 터였다.
그런데 두 "알"이 (알안트와 알렉스) 정말 화들짝 놀라면서 왜? 가냔다...왜 가냐니? 늦었으니까 가야지... 아 이거 또 이 나라는 술 먹다가 새벽이라고 가면 마음에 상처입는 나란가? 장미꽃을 받자마자 일어나면 '당신을 만나서 정말 재수없었습니다' 뭐 이런 뜻을 갖고 있는 그런 나란가?

모르겠다~ 어쨌거나 너무나 재미있는 밤, 아틀란틱 술집의 유쾌한 친구들이었다. 아까 낮에 호스텔의 독일 미친 여자女에 니은 한 명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가 이렇게 한 번에 유쾌한 친구들을 잔뜩 만나다니. 독일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와서 사진을 보냈는데 직접 술집으로 보냈던 사진을 받은 바텐더 "크리스틴"이 기분 좋은 답장을 보내 주었다. 그런데 되려 두 "알"들은 사진을 씹었다, 녀석들. 역시 이 나라에선 장미꽃을 받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돌아가면 '당신을 만나서 정말 재수없었습니다'였던 거냣~

# by | 2006/07/01 18:21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핑백(2)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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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끝내주는 재즈바부터 새벽 3시에도 맥주와 소세지를 먹을 수 있는 술집들이 여기저기 있답니다.. ;)
마르님/ 저에겐 천국같은 곳이 다른 분에겐 지옥같을 수도 있고 여행이 그런 것이라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소한 저도 다음번에는 인터넷의 어떤 분이 올려주신 것처럼 저 10가지 중의 몇 개는 해 보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커피대장님/ 아마도 멘자는 싼 맛에 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가 보지도 못했어요.저는 1번을 하고 싶습니다
베를린은 유럽의 뉴욕 쯤이라고 표현하기엔 또 부족한 뭔가가 있죠...
역사와 문화와(3개의 국제적인 오페라좌??) 고상한 문화에 반대하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이데올로기 경쟁의 잔재들 대학도시..그리고 전 독일에서 제일많은 외국인 비율(터키의 4번째 도시라고 하죠..엄청 많은 터키인들..한국교포도 제일 많고요.)전 베를린 남자 10명의 한명은 호로섹슈얼 이라고 하죠~
너무나 많은 클럽과 카페와 크나이페 밤에 어디로 갈까 고민해야하는(갈데가 너무 많아서..)유일한 독일 도시~
보통 독한술을 일컷는 통칭입니당.
가령... 위스키도 슈납스죠. 독일 전통주(?)인 Korn도 슈납스..예거마이스터도....
뭐 그렇다는 겁니당. 헷헷~
글고...
술집서 장미꽃 사주는건...... 좀 뭐뭐한 뉘앙스죠..에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