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Teniers the younger_59

예전부터 내가 유럽의 미술관을 다니다가 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지?하고 궁금증이 생기는 화가가 있었다. 시대초월 세계초월의 유명한 화가도 아니다. 그래도 유럽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 두 번 비슷한 화풍에 눈이 뜨여지고 어쩔 땐 습작 소품이 너무도 많이 걸려 있어서 미술관 안의 작은 방을 돌아다니다보면 눈에 띄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겐 David Teniers 2세 그림이 그랬다. 그런데 오늘 프라이부르크에서 나는 바로 이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 작가의 그림이 애초에 내 눈을 끌었던 것은, 아주 소박한 중세 시절 농촌 사람들의 가난한 옷차림 때문이었다. 물론 유럽 미술관의 옛 그림들에도 가난한 옷차림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뜻밖에도 술집에서 술 취한 남자의 번들거리는 모습을 그린 리얼하고 솔직한 소품 스케치, 유머러스하게 술 먹고 맛이 간 사람이 탁자를 발로 차고, 토하고, 주정을 부리는, 뭐 그런 그림이 많은 것이 너무나 특이해 보였다.

미술관을 돌던 내가, "아니 도대체 David Teniers,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야?" 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고는 사실 나는 이 화가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화가의 그림이 지금 독일 프라이부르크 길가를 지나다가 포스터로 붙여져 있는 것을 본 나는 새록새록 그 작가가 떠 오르고 그림이 떠올랐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찾아 그 작가의 그림을 몇 더 올려 본다, 이 그림의 주인공이신 이 분 역시 맛이 가셨다!


중세임에도 불구하고 위선자가 볼 때엔 타락적인 면모를 숨기지 않고 표현한 농민들의 축제. 이런 비슷한 그림들을 '이렇게 정신을 잃지 말라'고 교훈으로 그렸다는 설명도 자주 읽긴 하지만 엄한 마음으로 그렸다기 보다는 신이 나서 킥킥 웃으면서 즐겁게 적극적으로 그렸을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이 그림을 보면서 한 편으로 내가 또 좋아하는 브뤼겔 1세의 그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글쎄 저 데이빗 테니에르가 이 브뤼겔이랑 사돈 관계였다. 뭔가 통하는 사람들이었던 거지! 데이빗 테니에르의 사위가 브뤼겔의 아들이었다는 거다. 그리고 테니에르 집안이 1세, 2세, 3세까지 다 화가를 직업으로 삼았듯이 브뤼겔 집안도 아버지 브뤼겔(윗 그림은 아버지 브뤼겔 것), 아들 브뤼겔, 뭐 이런 식으로 화가를 내림한 것도 비슷하다.

그림 올린김에 브뤼겔 집안 그림 하나 더 올린다. 아래 그림은 2003년 뮌헨의 구미술관 알트피나코텍에서 보고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던 그림이다. 일하다 곤한 농민이 쓰러진 건 알겠는데...(기구를 보니 도리깨질인가) 도대체 그림 하단엔 알에서 깬 개구리 다리에 칼 꽂은 것은 왜 돌아다니는 것인가 '아아 너무 미스테리의 그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은 끌리는 거지!' 너무도 알쏭달쏭하지만 유머러스함이 넘치며 색상이 매력적인 이 그림에 나는 마음을 빼앗기고 한참을 서 있었다.


이 그림은 나중에 내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서로 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그림이기도 하다. 내가 이 그림에 빠져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 갔다고 말하니 내 친구도 자기가 갔던 때에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했다. 마치 영화 <smoke>와 같다. 내 친구가 몇 년 전 서 있던 자리에 몇 년 뒤 내가 가서 서 있고, 지금 이 글을 읽은 여기 누군가가 또 몇 년 뒤에 거기 서 있을 수 있는, 그림 앞에서 바뀌는 사람들의 흔적같은 것.

알 수 없는 주제의 이 그림을 들여다 보다가 나는 놀랐다. 하하! 그림의 제목은 <코카인 랜드>였다. 옛날 농민들이 일하다 양귀비 냄새 맡으시고 잠시 쉬면서 갖은 환상을 보시는 장면인가? 그렇다면 저 지붕 위에 널어 놓은 맛난 팬케잌도 그럼 환상인 것인가? 잠든 농민들 사이를 걷고 있는 칼 맞은 계란과 두 다리 역시 환상이라면 얘기가 되는구나. 그러나 그것도 오해였던 것 같다.

한국에 와서 찾아본 이 그림에 얽힌 비밀은 <게으름뱅이의 천국>이라는 중세 유럽의 전설이라는 것이었다.

Pieter Bruegel the Elder. <게으름뱅이의 천국>.

1566. 나무에 유채. 52*78cm

브뢰겔이 그림의 소재로 삼은 것은 중세 유럽의 민간에서 전승되어온 상상의 나라 코케인(코케뉴, Cockaigne)이다. 이 나라는 아무 일 안 해도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곳으로, 강은 와인이요 집들은 케이크와 보리사탕으로 만들어져 있고, 거리는 빵으로 뒤덮여 있다. 가게는 아무에게나 공짜로 물건을 나누어주고, 구운 거위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먹도록 유혹한다. 또 하늘에서는 때때로  버터를 바른 종달새가 만나처럼 떨어져 먹을 것을 피하기가 비 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 환상의 땅 코케인의 어원과 관련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그 뜻이 '케이크의 땅(Land of Cakes)'에 있지 않았겠느냐고 여겨진다.힘겨운 노동과 굶주림으로 고생한 중세 유럽인들의 꿈과 소망이 절절히 담겨 있는 민간설화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배부른 나라이다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히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브뢰겔은 바로 이 부분에 그림의 초점을 맞췄다. 먹을 것이 풍성한 나라이므로 먹거리가 잔뜩 쌓여 있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고, 늘 과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므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브뢰겔은 그런 장면보다는 그저 땅에 누워 빈둥빈둥 시간만 죽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모든게 무료하고 모든 것에 지쳐 있는 사람들. 끝없는 나태와 무관심, 지루함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상향의 그들. 돼지가 옆구리에 칼을 꽂고 다니는 모습도 재미있고, 다리만 나온 달걀이 만화에서처럼 돌아다니는 모습도 유머러스하지만, 이처럼 나태와 게으름을 질릴 정도로 위트 있게 표현한 모습에서 브뢰겔의 남다른 해학을 읽게 된다.

어리숙해 보이기도 하고 소박해 보이기도 하는 장르화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게 된 것은, 브뢰겔의 그림이 시사하듯, 삶에 대한 진솔한 이해와 그것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는 능력 때문이다. 장르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따뜻하고, 고상하지 않아도 진실하다. 그만큼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물론 그 감동의 밑바닥에서 때로 삶이 하잘것없음과 비참함을 토로하는 광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현실의 비극에 대해 새삼 깊이 사유하게 된다. 해학은 이런 주제를 인간적인 풍미로 포장해내는 기술이다.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中에서

by hertravel | 2006/06/28 18:19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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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세닐리아 at 2006/08/16 10:37
마지막 그림 정말 멋지네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8/18 03:46
세닐리아님/ 정말 발길이 멈출만한 그림이죠~
Commented by 나미너미 at 2009/04/26 13:27
그들이사돈간이엇군여....이알수업는 히죽은 먼지....ㅎ ㅎ ㅎ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4/28 08:15
저도 검색하다가 알게된 그 인적 관계- 흥미롭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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