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6월 21일
야밤에 초컬릿을 먹는 사람들 / 프라이부르크_52
슬슬 늦가을로 넘어가는 이 계절이면 오후 5시만 넘어도 거리엔 사람들의 거의 없고 껌껌하기만 하다. 특히 서구 나라들을 돌아다니다보면 저녁의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궁금할 때가 있다.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들 열심히 집으로 돌아가 있는 걸까? 우리나라만큼 텔레비전을 많이 보지도 않는다는데 그럼 뭘 하면서 이 저녁을 보내는 걸까? 모두가 이 시간부터 자는 걸까?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의 취침 시간이 세계적으로 늦는다고 했었지.
유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언젠가 한 번 미국 시카고 도심에서 다섯시 쯤 저녁 퇴근 시간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흘러 나오는 거대 물결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저녁 여섯 시를 기점으로 영화 속 미래의 폐허 도시처럼 갑자기 그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찬바람에 길바닥 쓰레기 나부끼고 겁나 보이는 인상들만이 도심에 남았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낮에는 생기 넘치는 도시같았던 그 곳이 다들 기를 쓰고 퇴근해버린 유령의 도심이 된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살면 다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외국은 평온해서 심심한 지옥이고 한국은 시끄러운 천국이다" 뭐 물론 외국 사람들이라고 밤에 술 안 마시고 회사에서 야근 안 하고 친구 안 만나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외국 보통 사람들의 동네엔 밤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조용한. 소리에도 워낙 예민들 하시기 때문에 조용 조용 밤의 골목길을 지나야 하는 주택가의 밤.
그런데 사람들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가 폐허처럼 남아 있다고 생각한 길 어느 중간 작은 초콜릿 과자점으로 보이는 그 곳에 밤늦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컴컴한 거리에 바알간 불빛이 밝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계속 초컬릿에 대해 설명하고 강의한다. 한 동안의 설명 뒤에는 사람들이 다같이 초컬릿 맛을 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상당히 정숙하고 점잖은 분위기로 서로 의견을 나눈다. 나는 창밖에서 이 오묘한 모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 하나 맛을 보고, 마치 와인 시음회처럼 서로 조금씩 맛을 보면서 감탄도 하고 심각한 표정도 짓는다. 가게의 벽 중앙엔 영화 <초컬렛>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굳어진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초컬릿의 맛이라는 마법으로 풀어낸다는 내용의 영화. 영화도 공연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분명 이쪽 문화권에서는 초컬릿이 뭔가 동호회를 만들 정도의 특별한 정서를 갖고 있나보다. 과자 맛 하나 갖고도 저녁의 좋은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저런 모습. 세계의 사람들이 유럽을 꿈꾸게 하는 그런 이유 중의 하나겠구나,하고 생각한다.
유럽 사회에서 왜 소소한 음악회, 미술 전시회, 낭독회같은 것에 사람들이 참가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런 것조차 없다면 너무나 조용한 저녁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음악회나 낭독회 뿐 아니라 이렇게 '야밤에 초컬릿을 먹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우겨 본다) 같은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 겉으로는 조용하기 짝이 없는 이 거리의 가게 문을 실제로 열고 들어가면 술집에 대학생들은 가득하고 커튼 드리워진 창 안쪽에서는 하나, 둘, 하나, 둘을 외치는 태권도 수련생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된다.
# by | 2006/06/21 18:14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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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렛... 날이 쌀쌀해지면 초코렛이 최고죠.
그런 의미에서 벨기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하하;; 초콜릿 얘기에 그만 흥분해버린-ㅅ-;;
sikh님/ 어떻게 해요~ 그래도 사진 속의 초컬릿이 다 포장된 상태라 테러는 아니니 다행이죠
비공개님/ 그렇죠. 초컬릿 하나로 책 한 권도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냥 캐러멜이나 껌과는 비교가 안 되는 월등한 아우라를 갖고 있죠
마르님/ 신경들은 쫌 쓰이셨을 거예요...! ^^ 그러나 워낙들 열중들을 하셔서~^^
하얀새님/ 초컬릿 쵝~오? ^^ 아마 저 곳에 계셨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셨을텐데... 그렇담 벨기에는 꼭 가보세요. 정말 행복하실 거예요.
S님/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