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초컬릿을 먹는 사람들 / 프라이부르크_52

슬슬 늦가을로 넘어가는 이 계절이면 오후 5시만 넘어도 거리엔 사람들의 거의 없고 껌껌하기만 하다. 특히 서구 나라들을 돌아다니다보면 저녁의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궁금할 때가 있다. 정말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들 열심히 집으로 돌아가 있는 걸까? 우리나라만큼 텔레비전을 많이 보지도 않는다는데 그럼 뭘 하면서 이 저녁을 보내는 걸까? 모두가 이 시간부터 자는 걸까?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의 취침 시간이 세계적으로 늦는다고 했었지.

유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언젠가 한 번 미국 시카고 도심에서 다섯시 쯤 저녁 퇴근 시간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흘러 나오는 거대 물결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저녁 여섯 시를 기점으로 영화 속 미래의 폐허 도시처럼 갑자기 그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찬바람에 길바닥 쓰레기 나부끼고 겁나 보이는 인상들만이 도심에 남았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낮에는 생기 넘치는 도시같았던 그 곳이 다들 기를 쓰고 퇴근해버린 유령의 도심이 된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살면 다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외국은 평온해서 심심한 지옥이고 한국은 시끄러운 천국이다" 뭐 물론 외국 사람들이라고 밤에 술 안 마시고 회사에서 야근 안 하고 친구 안 만나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외국 보통 사람들의 동네엔 밤이 빨리 오는 것 같다. 조용한. 소리에도 워낙 예민들 하시기 때문에 조용 조용 밤의 골목길을 지나야 하는 주택가의 밤.

그런데 사람들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가 폐허처럼 남아 있다고 생각한 길 어느 중간 작은 초콜릿 과자점으로 보이는 그 곳에 밤늦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컴컴한 거리에 바알간 불빛이 밝다.


초컬릿 가게가 영업을 마치고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초컬릿 시식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계속 초컬릿에 대해 설명하고 강의한다. 한 동안의 설명 뒤에는 사람들이 다같이 초컬릿 맛을 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상당히 정숙하고 점잖은 분위기로 서로 의견을 나눈다. 나는 창밖에서 이 오묘한 모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 하나 맛을 보고, 마치 와인 시음회처럼 서로 조금씩 맛을 보면서 감탄도 하고 심각한 표정도 짓는다.

가게의 벽 중앙엔 영화 <초컬렛>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굳어진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초컬릿의 맛이라는 마법으로 풀어낸다는 내용의 영화. 영화도 공연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분명 이쪽 문화권에서는 초컬릿이 뭔가 동호회를 만들 정도의 특별한 정서를 갖고 있나보다. 과자 맛 하나 갖고도 저녁의 좋은 모임을 만들 수 있는 저런 모습. 세계의 사람들이 유럽을 꿈꾸게 하는 그런 이유 중의 하나겠구나,하고 생각한다.

유럽 사회에서 왜 소소한 음악회, 미술 전시회, 낭독회같은 것에 사람들이 참가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런 것조차 없다면 너무나 조용한 저녁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음악회나 낭독회 뿐 아니라 이렇게 '야밤에 초컬릿을 먹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우겨 본다) 같은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 겉으로는 조용하기 짝이 없는 이 거리의 가게 문을 실제로 열고 들어가면 술집에 대학생들은 가득하고 커튼 드리워진 창 안쪽에서는 하나, 둘, 하나, 둘을 외치는 태권도 수련생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된다.

by hertravel | 2006/06/21 18:14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덧글(17)

트랙백 주소 : http://hertravel.egloos.com/tb/237493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clytie at 2006/08/12 01:57
아- 전 초컬릿을 너무 좋아해서 초컬릿과 와플 외엔 볼거 없다는 말을 지인으로부터 들었는데도 '벨기에'는 꼭 가고 싶더라고요.^^ 꼭 유럽에서 린트 카카오 70%이상을 먹어보고 말거에요!(사람들 제보에 의하면 한약 맛이라는..^^;) 저긴 어느 나라인가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8/12 02:03
안녕하세요 clytie님, 실시간 리플입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란 곳입니다. 그리고 벨기에에서 초컬릿과 와플을 꼭 드셔보세요. 맛있습니다.
Commented by 히카리 at 2006/08/12 02:04
초콜릿 너무 좋지요. 보기만해도 먹음직스럽네요. ^^
Commented by Charlie at 2006/08/12 02:16
그 영화 봤어요. 영화보는 내내 저건 무슨맛일까.. 저건 또? 이러면서 봤었지요. :) 언제나 재미있는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8/12 02:16
안녕하세요 히카리님, 역시 실시간 리플입니다^^ 작은 접시에 놓여져서 사람들의 손에 돌려지던 초컬릿, 저도 맛보고 싶더라고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8/12 02:21
안녕하세요 Charlie님, 실시간 리리플을 다는 동안에 리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요, 영화 속의 사람들이 초컬릿을 먹고 향정신성의약품을 드신 것처럼 ㅋㅋ 해피한 표정이었던것과는 좀 다르게 너무나 진지하셨던 프라이부르크 초사모 분들이었죠.
Commented by anyone at 2006/08/12 04:12
초콜릿 먹는 사람들을 창밖에서 구경하며 얼마나 오래 서 있었던 건가요? 사진이 성냥팔이 소녀가 바라보던 집안처럼 따뜻해 보여요.
Commented by sikh at 2006/08/12 06:11
초콜릿 너무 좋아요... ㅜㅜ 아우 먹고 싶어라; 저렇게 커다란 대접 가득 초콜릿이 쌓여 있다니 ;ㅁ;
Commented at 2006/08/12 08: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마르 at 2006/08/12 10:29
안에 있는 사람이 창밖에 hertravel님을 보고 놀라지 않았을까요?
초코렛... 날이 쌀쌀해지면 초코렛이 최고죠.
Commented by 하얀새 at 2006/08/12 11:08
초콜릿!!!!!! 초콜릿만 보면 미쳐요ㅠㅠ 너무 사랑해요♥
그런 의미에서 벨기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하하;; 초콜릿 얘기에 그만 흥분해버린-ㅅ-;;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8/12 13:49
anyone님/ 그랬답니아. 들어가기엔 너무나 확실한 소모임같았고 호기심때문에 지나칠 수는 없었답니다.
sikh님/ 어떻게 해요~ 그래도 사진 속의 초컬릿이 다 포장된 상태라 테러는 아니니 다행이죠
비공개님/ 그렇죠. 초컬릿 하나로 책 한 권도 쓸 수 있을 거예요. 그냥 캐러멜이나 껌과는 비교가 안 되는 월등한 아우라를 갖고 있죠
마르님/ 신경들은 쫌 쓰이셨을 거예요...! ^^ 그러나 워낙들 열중들을 하셔서~^^
하얀새님/ 초컬릿 쵝~오? ^^ 아마 저 곳에 계셨으면 문을 열고 들어가셨을텐데... 그렇담 벨기에는 꼭 가보세요. 정말 행복하실 거예요.
Commented by raoh at 2006/08/12 15:12
허걱 다음주에 시카고 가는데 밤에 조심해야 겠네요 ㅎㅎㅎ;;;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8/12 22:09
raoh님/ 그런데 또 시카고가 밤에 강변이던가 거기 고속도로, 거기 야경이 좋잖아요^^ 회사 사람들이 다 빠지는 구역 말고 밤에 사람들이 모이는 구역은 또 괜찮겠죠! 잘 다녀오세요~
S님/ 싫어요
Commented by 하나 at 2008/12/12 08:57
현재 적용하면 너무나 좋은 아이템인걸요...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8/12/14 01:21
한 밤의 초컬릿 연구회 말씀이신가요? :)
Commented by 하나 at 2008/12/15 04:14
<한 밤의 초컬릿 연구회>듣긴 들었는데 여기서 보다니요~_~ 참,신통하네요! <연구회>라기보다 <초컬릿의 밤>더 적절한것 같은데요.--- (초컬릿)--- 아이템!^*^ 확실히 되여서 감사합니다! 한달전만해도 ??? 조사결과가 여기에...^*^!!!--- 많은 도움되셔서 ...~_~!!!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