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숙소 전쟁 / 스트라스부르_41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별의 별 민박집을 다 가 보았다. 현지인 며느리를 맞은 민박집 할머니께서 나와 도리도리를 탐내셨던 곳, 대부분 학생인 숙박객들 위에 주인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처럼 군림하던 곳,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그 맛이 생각나는 곳, 여행을 다니기보다 주인과 놀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이 들던 곳, 목소리만 들어도 편안한 자유가 느끼게 해 주었던 곳, 정말 생각만해도 '이 곳만은 피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최악의 숙소까지 ... 유스호스텔이나 저가 호텔의 추억도 많지만 어디 민박만큼 구구절절할 수 있을까.

여행다니면서 CD 굽거나 한국 음식 그리울 때 찾아가는 우리 교포들의 민박집. 시설이 좋은 민박집은 대부분 자유도가 낮아서 답답하고 시설이 좀 황량한 민박집은 자유도가 높아서 사람 맛이 나는 대신 뜻하지 않은 개벼룩, 고양이 벼룩 같은 것을 만나기도 한다. 삶이 항상 그렇듯 선택에는 항상 장단점이 있다.

벼룩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의 경우엔 워낙 진드기 알러지가 심해서 모 대학 병원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주길 제안받은 적이 있다. 그러니 유럽 여행만 오면, 아무래도 좋은 호텔과 같이 자주 세탁을 하지 않는 민박이나 싸구려 숙소에서 나는 밤이면 밤마다 여행 이면의 고행 코스를 이중으로 답사하는 것이다. 지냈던 그 밤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이번 여행에서도 파리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민박집을 나선다. 이번 민박집은 내가 만나 본 별의 별 민박집 중에서 추억이 될만한 좋은 기억 많이. 그리고 약간의 곤란한 기억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항상 나의 알러지가 문제다.

예약이 의무 사항이 아닌 열차라고 해서 잘 됐다, 유로 굳었네! (예약이 필요한 열차는 유레일이 있어도 예약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하고 좋아했더니 기차는 완전 만석으로 출발한다. 아니 아니, 파리에서 스트라스부르가는 기차에, 그것도 평일 오전에, 무엇이 급하기에 이 많은 사람들이 만석으로 달려든단 말인가!

어리둥절한 나에게 역무원 아저씨는 조언을 한다, 기차에 올라타면 빨리 식당칸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라는 것이다.

설마하는 마음에 기차를 타서 보니 정말로 자리가 없는 것이었다. 나같은 사람들이 이미 문가 바닥에까지 나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나도 슬며시 열차 계단에 앉아 간다. 하지만 고귀한 나의 둔부께서 신경 전달 세포를 통해 맨바닥의 차가움을 항의하시며 식당칸행을 강력 요구하셨다. (사진은 같은 신세의 외국인)

그리하여 이름은 식당칸이자 나에겐 맥주칸인 그 곳에 간 나는 맥주를 한 잔 시켰다. 이미 식당칸은 수 많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나도 겨우 서서 살짝 걸터 앉는 간이 의자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맥주를 사 마신다.


"기차는 달려 간다. 카메라는 흔들린다. 기포는 춤춘다."

스트라스부르 역에서 내려 전화로 숙소 예약을 했다. 숙박 가능. 서울에서부터 검색을 통해 마음을 먹고 온 스트라스부르의 깔끔하고 좋다는 유스호스텔 CIARUS다. 역에서 10번 혹은 2번을 타고 place de pierre에 내리라고 했지.

그런데 열차 안에서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던 한국인 여행자 한 명이 역 앞에서 두리번거린다. 숙소를 물어보려고 하는데 인포메이션 프랑스 애들이 대답을 안 해 준단다. 인종차별하는 거 아니냐고. 나도 프랑스 문맹이지만 그냥 돕는 차원에서 인포메이션에 가 봤다. 알고보니 인종 차별이 아니라 즈이네들이 영어를 못 하니까 어버버 대답하기 그래서 몰라 몰라요만 계속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행 인포메이션이 아니라 내국인용 열차 인포메이션 담당자들이었다.

"저기?" "사각형?" " 회색?" "박스?" 몇 단어를 셔레이드 게임 하듯이 겨우 알아내 역 앞 공사 현장에 가려져 있던 임시 회색 컨테이너 여행 인포메이션까지 그녀와 함께 갔다. 이쯤해서 그냥 돌아설까 하는데 여행 인포메이션에서 그녀가 찾는 호텔마다 빈 방이 없다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나와 같이 가겠다 했다. 우리는 CIARUS를 향해 트램을 탔다.

이제쯤 나타날만도 한데 나타나지 않는 숙소. 나는 식료품점EPICERIE에 들어가 물어 보았다. 마침 손님이 한 명 들어와 주인 아저씨는 야채를 한 봉지 싸 주고 있었다. 주인은 나의 질문에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고 '물어봐줘서 기쁘다'는 듯 경쾌하게 가게를 나와서는 바로 앞 맞은편의 건물을 가리켰다. 바로 그 앞에 CIARUS가 있었다. 이런 이런, 아마도 이 아저씨는 하루에도 너댓번은 나와 같은 여행자들의 질문을 받을텐데 그 때마다 이렇게 경쾌 명랑할 수 있을까. 오래 머문다면 나는 아마 이 곳에서 과일 한 알이라도 사 먹을 지 몰라. 흠, 그래서 아저씨도 CIARUS의 새 여행자를 볼 때마다 즐거우신 것일까?

숙소엔 좋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 곳에 예약을 한 사람이고, 무작정 나를 쫓아왔던 한국인 여행자 친구는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전혀, 어떻게 해도 그녀의 자리는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안타까움에 어서 빨리 다른 곳이라도 숙소를 구해 봐야겠다며 나도 그녀를 보냈고 그녀도 이 곳을 떠났다. 이 때까지만해도 이 도시가 치열한 숙소 전쟁에 돌입해 있는 것을 나도 그녀도 알지 못했다.

스트라스부르. 한국에 거의 알려진 정보가 없는 곳. 독일과의 국경 지방에 있는 프랑스의 도시로 오래된 거리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곳,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 유산이라는 곳, 정도로만 알고 찾아온 나는 이 곳이 그냥 중소도시가 아니라 유럽 연합 EU의 의회가 열리는 도시인 것을 몰랐다. 유럽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이 도시가 바로 유럽의 정중앙에 있는 요지라는 것도 몰랐다. 하물며 내가 도착한 이 날부터 전 유럽 연합의 의회가 열리는 특별 기간이라 도시의 그 어느 숙소에서도 숙박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몰랐다. 내가 얻은 하룻밤이 행운의 티켓이었다는 것도 몰랐다.

이 모든 것도 나 역시 하룻밤만을 예약했기 때문에 추가로 하루를 더 있으려고 숙소를 얻으려다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었다. 골목의 후미진 호텔에도 앞으로 며칠은 말도 걸 수 없다고 했다. 시 외곽에 있는, 거의 야영지에 가깝다는 유스호스텔도 앞으로 며칠은 숙박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늘 기차의 그 인파들도 이 때문이었나. 할 수 없이 스트라스부르의 일정은 갑자기 짧아진다. 이 도시의 숙소 전쟁을 모르고 다른 숙소를 찾아 헤어진 아까 그녀가 안타깝다. 그녀는 하룻밤 잘 곳을 구했을까.

by hertravel | 2006/06/10 18:06 | 유럽과 나의 왼 발 (2)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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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achi at 2008/06/13 00:19
예약은 인터넷으로 하나요? 영어로 예약해 본게 백만년인데..oTL 근데 여기 어떠셨나요? 깨끗한가요?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해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8/06/13 04:10
^^ 안녕하세요
이 곳을 소개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사실 다니다보면 지저분한 곳도 있고 좀 분위기 안 좋은 곳도 있는데 다른 분들에게 정말 아무 걱정없이 소개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홈페이지는 www.ciarus.com 이고요, 저는 여행중에 5분 검색으로 급하게 전화번호만 받아서 독일에서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간 곳입니다. 원래는 아마 인터넷으로 될 거예요. 여기 사람들 영어도 잘하고 영어권 사람들도 오는 곳입니다. 초중고생들 수학여행식으로도 많이 이용하고 깨끗하고 비교적 가격도 괜찮고 그렇습니다. 걱정없이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유럽 숙소 중의 하나죠. 그런데 EU 의회가 있는 곳이라 무슨 컨퍼런스가 없는지 꼭 예약을 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 여행가시는 것 부럽네요 ^^
Commented by hachi at 2008/06/13 20:55
고맙습니다! 알자스에 가려고 무작정 생각했는데 사실 끓여먹는 노엘 와인이랄까..뭐 그런 책에서 읽은 잡다한 환상(?)만 가지고 있고 뭐부터 찾아야 하나 하고 있었거든요.
정말 한 시름 덜었어요. 여기서 자면 될 것 같아요.ㅎㅎ 얼른 예약하러 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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