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6월 09일
일요 기차 미스테리,포와로를 불러라_40

족히 일센티미터는 될 듯 곱고 긴 속눈썹을 가진 작은 남자 아이가 앉아 있다. 그 맞은 편엔 세계 할머니 신체 규격에 충실한 체구를 가진 프랑스 할머니.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사이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아이는 뭔가를 열심히 색칠한다. 아이가 조금 싫증난 듯 그 긴 속눈썹을 껌벅이자 할머니는 모든 것을 준비한 호리병의 지니처럼 두번째 보따리를 펼친다. 손으로 만지며 꼽았다 빼며 노는 색색의 블럭. 소년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은 '어이구 내 새끼'와는 거리가 있다. 지루한 열차 여행 중에 한국의 어린이들이라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조용한 침묵 속에서 소년은 블럭을 만지며 논다. 그들은 어디를 가고 있는 중일까?
너댓 명이 같이 타고 갈 수 있는 열차칸에 아이 둘과 아빠로 보이는 일행이 탔다. 선이 가는 얼굴과 몸을 한 아빠와 피부와 눈색깔이 '서양 인형'같은 두 명의 아이들. 아빠는 아이들을 미처 먹이지 못하고 길을 나섰는지 가방에서 빵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아이들은 중간의 긴 테이블 위에 작은 배낭이며 인형이며 역시 블럭이며 색연필이며 스케치북을 잔뜩 늘어 놓는다. 그들은 기차로 가는 이런 길이 익숙한 것 같다.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일까?
우리나라였다면 열차 안의 어린 아이들은 190 퍼센트 엄마와 길을 떠난 상태일 것이다. 아이들은 서울역에서 영등포역까지 잠깐의 소강 상태를 보인 뒤 이제 곧 형제 자매와 싸우거나 열차 통로를 오가며 놀 것이다. 부근에 앉은 승객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쓸 것이다. 만일 아이들이 조용하다면 엄마가 단 것을 먹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곧 음료수를 엎을 것이다. 엄마가 짜증을 낼 것이다. 수원역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잠이 들 것이다.
그런데 일요일 오전의 프랑스 기차 안의 이 적막감은 무엇일까. 외국인 여행자가 별로 없는 비수기라 내국인만 모여 있는 이 적막감 속에 아이들은 엄마가 아닌 할머니나 아빠의 손에 이끌려 열차를 탔다. 무슨 일일까? 프랑스의 엄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일요일의 아이들은 모두 할머니와 아빠의 손에 이끌려 이혼한 엄마를 만나러 가는 걸까? 이혼한 아빠가 아이들을 만나는 기회의 날인가?
추리력이 빈곤하다. 포와로를 불러라.
*위 사진은 일요일 그 날의 기차가 아닙니다. 파리發 스트라스부르行 기차의 식당칸입니다*
# by | 2006/06/09 18:05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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