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6월 08일
검은 밥덩이,메흐드,몽 생 미셸 / 몽 생 미셸_39

(이 날 아침, 몽생 미셸로 떠나기 전, 몽파흐나스 역)

1. 검은 밥덩이아,참, 몽 생 미셸을 보러 떠나온 이 날 나의 아침 식사는 쭈꾸미 없는 충무 김밥이었다.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타느라 민박집에서 어제밤 남겨준 식은 밥을 가지고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도시락 반찬 김으로 주물럭 김밥을 만들었다. 이걸 '충무 김밥'이라고 부른다면 충무 시민들에게 죄 짓는 기분이 들것 같다. 아니, 그냥 '김밥'이라고 부르는 것만 해도 황송한 이 날 아침의 식사. 나는 그 김밥,이라기 보다는 '검은 밥덩이'를 기차 타기 직전 몽빠흐나스 벤치에 앉아 냠냠 먹었다. 기내에서 나눠 준 고추장 튜브를 누르자 고추장이 치약처럼 빠져 나왔다. 나는 그 고추장을 소중하게 김밥에 발랐다. 파리 몽파흐나스 역 구내에서 정체 불명의 검은 밥덩이를 먹는 아시안을 보신 파리 시민 여러분, 그 검은 밥덩이는 여러분들께서 젓가락질 한 번 해 보려고 비싼 돈 내시고 자포네의 레스토랑에서 사 드시는 그 스시의 원본입니다. 물론 아무도 묻지 않으셨지만.
2. 메흐드
아,참, 또 아, 참이다. 이 날 나는 열차 차표 창구에서 한 여자가 창구 직원에게 화 내는 걸 목격했는데, 그 말로만 듣던 불어 최고의 욕 "메흐드!"를 생생히 귀로 들을 수 있었다. 프랑스 욕의 대표, "메흐드!" 라고 해 봤자, "똥!" 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을 땐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설마, 이게 교과서에나 실리는 욕이지, 정말 화가 났을 때 이런 다섯 살짜리 욕을 쓰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창구 직원과 싸우다 창구 유리창을 깨부실 듯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른 여자, 정말로 초절정의 순간, "메흐드!"하고 정점을 찍는 것이었다.
3. 벌레포비아
몽 생 미셸 성 안에서 바게뜨와 상추, 스트라스부르 소시지, 에망딸 치즈등의 재료로 바게뜨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어제 샹피옹에서 샀던 상추 한 덩어리는 0.80.유로(약 천 원)였는데 숙소에서 씻어보니 유기농 야채답게 잎마다 작은 벌레가 다 붙어 있었다. 벌레포비아인 나로서는 유기농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4. 몽 생 미셸
몽 생 미셸의 성을 따라 오르는 길은 하나다. 계단을 올라가 보니 성 내부를 구경하는 투어 입장료를 판다. 이 안을 볼 것인가 아닌가, 잠시 고민하면서 근처를 서성이는데 마침 입구에 전시중인 성 관련 책자 안에 성 내부 사진이 다 나와 있다. 중요한 곳은 수도원 풍의 탁자가 있는 어느 방 같았는데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자료를 검색해보니 내부의 명상 장소인 회랑은 건축의 백미이고 지하 묘소도 있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입장을 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몽 생 미셸은 말하자면 네덜란드의 잔세스칸스같은 곳이었다. 몽 생 미셸 역시 "여행지"가 아니라 "관광지"에 불과하다. 이 곳은 나를 낯선 여행자로 받아주지 않는다. 이 곳은 나의 주머니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 4시간쯤 걸릴 것으로 봤던 원래 계획과 달리 나는 2시간만에 제 발로 성을 내려왔다. 저 멀리서 앰뷸런스가 하이톤 경음을 울리며 달려온다. 아까 성 안에서 어떤 외국인 관광객 할아버지가 계단에서 가슴답답해 하는 걸 보았다고 했다. 성은 대부분 계단 오르막으로 돼 있다. 할아버지, 제발 건강하시기를...
2005년 당시 얘기로는 2006년부터 이 곳은 폐쇄된다고 했다. 몽 생 미셸은 기후 변화로 더 이상 밀물 때에도 섬의 모습이 아니다. 아름다운 외경에 수많은 관광객으로 항상 북적이느라 몽 생 미셸은 피곤했을 것이다. 원래 전쟁터의 요새나 수도원, 감옥으로 쓰였던 이 곳은 태생적으로 조용함이 어울린다. 관광객의 벤치가 되었던 성벽은 휴식할 수 있을 것이다.

*몽 생 미셸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내용이 주를 이루는 여행기가 됐습니다. 여행지는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내가 갔던 그 때 날씨가 어땠고 누구와 함께 갔으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에따라 기분 좋은 기억과 그렇지 않은 기억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쨌거나 여행을 가실 분은 이 곳에 대한 시시한 선입견은 갖지 마시고 열린 마음으로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 by | 2006/06/08 17:50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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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몽생미셀이 폐쇄된다고요!!!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고 벼르고 있던 곳인데 날벼락이군요.
거기 갔다 온 프렌에게 책이야기를 했더니만
읽고 갔으면 그 분위기를 더욱 느꼈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워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