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탄의 작은 마음 / 파리 오스테를리츠역_33

생기기로는 파리에서 본 여자들중에서 제일 그럴듯하게 예쁘다 생각했더니 하는 짓은 그렇게 티껍고 싸늘할 수가 없다. 오스테를릿츠 역 지하의 창구 여직원. 물들였는지 타고났는지 금발 머리에 그쯤 예쁘면 하는 행동거지도 예뻤으면 좋으련만 참으로 틱틱거리며 말을 한다.

"아무튼 전에는 공짜였을지 몰라도 이제는 할인만 된다니까요, 다음 손님!"

분명히 유레일(여행자용 유럽 열차 티켓)이 있으면 베르사이유 행 파리의 RER ⓒ선은 공짜여야 하는데 이 언니는 아무튼 돈을 내고 티켓을 따로 사든지, 유레일 패스도 쓰고 웃돈도 더 내든지 맘대로 하란다. 여행오기 전에 속성으로 훑었던 인터넷 정보에 그런 말이 있긴 있었다. 최근 언제부터 정책이 바뀐 것 같다는...

그러면 그런 거지 좀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안 되나. 기분 팍 가라앉아 버리잖아. 어쩔 수 없이 내일 몽셀미셸 예약부터 유레일을 쓸 생각으로 1층의 정식 기차 티켓 창구로 갔다. 그런데 그 다양한 연령의 직원들 중에서 유독 한 창구의 직원이 내 눈에 확 띄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남자로 염소같은 수염을 하고 앉아 있다. 이젠 지구상의 어떤 남자들도 거의 아무도 머리를 기르거나 묶지 않는 유행의 시대임에도 치렁치렁한 긴 곱슬 머리를 하고 있었다. 크흐흐 완전히 일제 혹은 옛날 황미나표 유럽 황실 만화 속의 조연급 간신인 小꽁데公을 연상시킨다. 그렇다, 여기는 프랑스! 꽁데의 나라다.




표를 가지고 다가가는데 그는 아주 부드러운 음성에 눈웃음을 띄고 흥얼흥얼 노래하듯 말한다. 뭐랄까, "인생을 취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느낌이랄까.

꽁데: "안,녀엉~하세요오 하아이~"
나: "방금 티껍녀에게서 유레일만으론 베르사이유에 갈 수 없다고 거부당했어요, 툴툴."
꽁데: "오호우~왜 거부하지요오~, 유레일로 갈 수 있는데~"
 
자기도 이상하다며 옆 창구에 확인을 한다. 옆 창구 직원도 이상하다고 갸우뚱 한다. 그것 봐, 그것 봐. 편 들어주는 막내 이모를 만난 아이처럼 나도 입이 한 발 나온 응석 가득한 얼굴로,

나: "그 봐, 당신도 이상하죠? 정말 그건 너무 Strange해!"

세상에 모든 것이 흥얼흥얼인 이 남자는 내 말에 자기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배시시 웃으면서 끝 말을 이어 노래로 답한다.

꽁데: "days have found us~♬"

"Strange days have found us" 란 가사의 무슨 그런 노래가 있구나 싶어서 나도 모른척 할 수 없어 피시시 웃었는데

꽁데: "와! 당신도 도어즈를 아는구나, 이 노래 좋죠? Strange days have found us~ ♪ 룰룰~"
나: ... (사실은 모른다)

이 사람, 낮에는 철도청 직원으로 열차 창구에서 표를 팔고, 밤에는 Doors의 음악 깔리는 컴컴하고 담배 자욱한 카페 어딘가에서 열광하고 있겠군! 순정만화 꽁데공의 뽀글머리를 하고 인생을 취미처럼 살아가며 대화를 뮤지컬로 승화시키는 이 사람! 나와 찍은 자기 사진을 보내달라며자기 e-mail을 알려주는데 이메일이 satanpetitecoeure@어쩌고다


satanpetitecoeure... 사탄의 작은 마음? ... 소심한 사탄?
 
정말 처음부터 발끝까지 많은 것이 혼연일체 어울리시는 당신이십니다. 이것도 Doors 노래 제목 중 어디에 분명 있을 거 아닙니까. 후후후 그러고 보니 도어즈의 짐 모리슨은 뉴욕도 엘에이도 아닌 이 곳 프랑스 파리 페르 라 셰즈 묘지에 묻혀 있지요. 혹시 당신은 주말마다 장미를 들고 짐 모리슨의 묘지를 찾아가는 건가요. 

뒷 얘기를 미리 하자면 사탄(?)은 자상하게 설명을 하며 표를 잘 끊어주었고 나는 여행이 끝난 뒤 한국에 돌아와 사탄의 작은 마음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사탄은(?) 나에게 잘 받아보았노라고, 고맙다고 역시 메일을 보내왔다. 그리고 지금도 사탄의 작은 마음은 오스테를릿츠 역에서 노래하는 작은 새처럼 흥얼거리는 말투로 열심히 열차표를 끊어주고 있을 것이다. 지하에서 쌀쌀한 예쁜이 티껍녀를 만나고 기분이 가라앉아 올라온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면서. 

by hertravel | 2006/06/02 17:43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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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orothy at 2007/04/05 23:09
안녕하세요.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어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계속 읽고 있네요..
어쩜 이렇게 맛깔나게 글을 쓰시는지..ㅎㅎ

준비중인 여행기는 언제 올라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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