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 대학의 벽은 높았다 / 파리 소르본 대학_30

그저 학생 식당 음식이나 한 번 먹어보자고 퀴리 아줌마의 모교인 소르본대학을 찾아갔다. 여행다니며 굳이 남의 대학교 학생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게 나름대로 재미나다 굳게 믿는 나. 그리하여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 학생 식당, 태국 타마삿 대학 학생 식당, 미국 UCLA 학생 식당 등을 거쳐 나의 학생 식당 집착기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쏘大의 벽은 높았다! 쏘大가 너무 관광지 인근에 있어 나와 같은 잡스런 인간들 때문에 고생을 하였던 것인지 학생증 없이는 아예 학교 자체에 들어가지 못하게 쪽문을 만들어 놓고 학생증 검사를 하며 출입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쏘大에서의 밥 한끼를 굳이 드실 분에겐 '바깔로레아'를 추천한다. '바깔로레아'는 프랑스의 대입 시험이던가 고졸 시험이던가 아무튼, 그러고 보니 어쿠쿠 일단 불어 초급 1권부터 공부하셔야겠네. 돌아서는 내 눈엔 쏘大와는 아무 상관없는 각 나라의 관광객들이 카페에 앉아 있거나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그렇지 그렇지. 입장을 제한하지 않으면 이 분들이 지금쯤 나와 같이 쏘大안을 물 흐리며 돌아다니고 계실 그 유명한 "관광 학생"이 아니시고 누구시겠는가.


그리하여 즉석 증명 사진관 전통의 일렬 횡대 사진 포즈. 맨 왼쪽 아저씨 약간 왕따 분위기 혼자 떨어지셨네. 사진 오른쪽의 관광 학생 선 채로 열심히 메뉴 교재를 탐독중이시고. 남의 관광 증명을 찍는 hertravel 나 자신의 오묘한 정신세계.

그나저나 여기가 그 옛날 전설의 책받침으로 남았다는 소피 마르소의 영화 "라붐"에서 남자 친구가 경추 추간판 탈출증을 일으키거나 말거나  그 목에 매달려 소피가 360도로 빙빙 매달려 돌았다는 그 장면의 배경이라는데 바로 여긴지, 바깔로레아를 쳐야 들어가는 저 안 쪽의 학교 어디 안마당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쏘大에서 식사를 거절당한 나는 '파리의 파리바게뜨'(이게 말이나 되는 말인가)인 '뽈paul'에서 바게뜨를 하나 사서 질겅 질겅 씹어 넘기다 나의 식사 비용을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증여하기로 했다. 몇 년 전에 왔던 골목의 술집을 찾아가 스텔라 아르투아 생맥주를 시켰다.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이게 어디냐 감사하다. 차가운 음료. 탄산의 산뜻함은 있으나 달지는 않고 중추 신경은 살짝 흥분시키는 인간계의 광약, 맥주... 나는 맥주로 여름이 오는 것을 알고 와인으로 겨울이 오는 것을 느낀다.

꽃미남 얼굴에 눈사람만한 뽀글 파마 가발을 쓰고 돌아다니며 이 bar의 분위기를 "고양"시키시려는 알바 남학생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거리의 북적거림은 맞은편 아이리쉬 bar로 집중돼 있다. 아이리쉬바는 원래 아이리쉬 맥주를 마시려는 아일랜드인들이 가는 바로 알기가 쉽지만 내가 다년간 각국의 술집을 다녀 본 결과, "아이리쉬바"는 "마구 마시고 술 취해서 조금 무리해도 무방한 술집"이란 뜻이나 다름없다. 오늘 저 곳에 무슨 또 이벤트가 있는지 100% 남자들이 모여서 대낮부터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러고보니 년 전에 이 골목 이 집에 왔을 때도 건너편 저 집은 그랬다. 그 북적거림에 홀린 내가 멋모르고 들어가는데 무슨 모임이 빌려서 하는 술판인듯 들어갈 수 없었다. 이제나 저제나 똑같다. 꾸준하다. 아무리 좋은 술집이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을 넘기기가 힘든데 도대체 유럽이란 곳은 시계가 우리보다 몇 배나 느긋하게 가는 건지 모르겠다.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작은 가게에서 음악 악보만 들입다 판다든지, 아주 오래된, 문화재 건물 서가에 진열용으로 꽂힐만한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어떤 내용의 어떤 목적의 책일까 너무나 궁금한) 그런 책만 판다든지 하는 가게가 술집과 마찬가지로, 아니 술집에 비할 수 없이 이제나 저제나 항상 그대로 존재한다. 이 곳이 파리임을 느끼게 해 주는 고마운 증거들.

노틀담 성당이 있는 시떼섬을 지나 생 루이 섬으로 넘어가는 다리에 섰다. 차가 다니지 않았다. 거리 재즈 밴드의 연주다. 그리 밝지 않은 구름 속 흐린 햇살과 세느 강 위를 나누는 두 섬의 연결 다리, 거리의 밴드 그 이상의 연주, 편안한 선곡이 연출된 장면처럼 어울린다. 나는 연주를 듣다 말고 함께 서서 듣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에 빠져 들어 있었다. 나도 무엇인가 아련한 생각에 사로잡혀 한참동안이나 연주를 들었다. 잠깐의 옛 생각과 그리고 그 순간의 행복감을 아주 오래 즐기고 싶었다. 언제라도 Saint James Infirmary와 que reste-t-il de nos amours, dream a little dream을 듣는다면 이 추억이 생생할 것 같았다. 캘리포니아에서 듣는 california dreaming도 좋지만 프랑스에서 듣는 고엽도 특별함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20세기 이래로 파리가 사랑해 온 특별한 작은 섬, 생 루이 섬으로 건너갔다. 

by hertravel | 2006/05/30 17:40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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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랭보 at 2006/06/29 09:17
밥 한끼 체험을 위하여 치르는 시험....ㅋㅋ
Commented by 연필광대 at 2006/06/29 10:31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파리의 로망은 계속 되는군요~.^^
Commented by enchante at 2006/06/29 12:00
소르본느 대학 안에 들어가는 방법 있어요.
바로 소르본느 대학 안에 "불어 랭귀지 스쿨"이 있거든요. 거기에 입학상담문의 하러간다, 그러니까 보내주더라구요 ^^
전 원래 그 목적으로 소르본느에 갔었던거니까 그렇게 들어갔는데, 뭐, 그 문안에 들어가도 별거 없던데요? ^^;
실은 소심함에 제대로 구경 못한 걸지도 모릅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7/03 00:45
랭보님> ㅋㅋㅋ 반갑습니다 랭보님 대단한 한끼가 될 것 같죠?
연필광대님>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마 곧 여행기가 더 넓어질 것 같습니다~
enchante님> 오 또 그런 방법이...저는 그냥 표 찍는 아저씨 보자마자 곧장 돌아섰지요~!
Commented by ehdl at 2006/12/31 13:25
??????????
Commented by 나달 at 2007/02/23 16:33
나는 맥주로 여름이 오는 것을 알고 와인으로 겨울이 오는 것을 느낀다.

정말 멋지군요! 네, 그러합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2/23 18:14
나달님> 저는 요즘 와인을 마시고 있어요 어느 순간 맥주 생각이 더 난다면 그 땐 정말 여름이 오고 있구나 하고 혼잣말을 한답니다~
Commented by 루이 at 2009/12/12 00:30
다행인건...소르본 안에 식당이 없답니다;;;;;;
샌드위치 파는 곳은 있어요. 근데=ㅅ= 꼭 필요할 때 문을 닫는다는...;;
(나만 그런건가...)
점심 시간이 되면 학교 복도 여기 저기에 앉아서 도시락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ㅋㅋㅋ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12/14 09:00
푸하하 넘 다행이네요 ^^
ㅋㅋㅋ 저도 루이님 덧글 덕에 오랜만에 이 글을 읽었는데 정말 식당없는 소르본에서 밥 먹으러 바깔로레아를 패스하는 처절한 상상에 낄낄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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