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먹자 골목의 추억 / 파리 생 제르맹 데 프레_29

한국에도 먹자 골목이 있다. 여의도에만 해도 먹자 빌딩이 있고 신림동엔 순대 타운, 교대 곱창 골목, 청진동 해장국 골목이 있듯 파리에도 먹자 골목이 있다. 파리의 먹자 골목은 생 미셸과 생 자끄로 둘러 싸인 이른바 까르띠에 라땡 부근이다. 몇 번을 왔으면서도 여기가 워낙 유명한 먹자 골목인 줄은 몰랐고 그저 속으로 '야, 이 곳은 참 음식점이 많다!'라고만 생각하는 둔함을 유지해 왔다! 게다가 나는 여기가 왜 까르띠에 라땡인줄도 몰랐다. 대학가라는 건 알았지만 그건 따로 따로의 입력일 뿐이고 그것이 '라땡'이라는 지명과 상관 있는 줄은 몰랐다. 내딴엔 그냥 여기 검은 머리의 남유럽 라틴 족들이 예전부터 많이 모여 살았나 부다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고 옛날부터 이 거리가 대학가 였기 때문에 라틴(latin 라땡)어가 통용됐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줄은 뒤늦게 알았다. 그래서 까르띠에 라땡. 라땡은 알다시피 라틴어를 말하는 것일 거고 까르띠에라 함은 아마 영어의 쿼터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라틴어 지구.

먹자 골목에 저녁이 찾아 들었다. 해는 졌고 거리엔 불빛이 들어선다. 가게마다 자기 집 메뉴를 자랑하는 가짜 음식들의 진열장에 불빛을 환히 밝힌다. 그 많은 음식점 중에서도 단연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생고기와 해물을 꼬치에 꽂아 굽는 요리집의 진열장이다. 와, 저건 아무튼, 모형 음식은 아닐 것 같은데.

(어쿠 생선아저씨 목에 오렌지 걸리실 듯.조심해서 삼키세요.뭐 거의 아나콘다로 환생하실 듯)

양다리 고기와 연어, 구색을 맞추는 오렌지와 토마토, 양파의 색 조화를 이룬 진열장을 보다가 갑자기 예전에 혼자 파리에 왔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그 날 저녁도 나는 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영국에서의 취재를 마치고 팀 사람들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뒤였는데 나는 일정을 우겨서 내 돈으로 프랑스로 건너온 차였다. 늦겨울의 파리엔 혼자라도 다녀보겠다고 억지를 써서 돌아다니는 나의 하루 하루를 망치려는 심술인듯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 근처 대학가의 어느 까페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싸늘한 비를 맞으며 전철역을 향하고 있었다. 이런 진열장을 한 음식점의 삐끼(?) 아저씨들이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꾸쓰꾸쓰!" "꾸쓰꾸쓰!" (꾸스꾸스는 이 골목에서 많이 파는 별미 메뉴 중의 하나로 북아프리카 음식중의 하나다)

궂은 비에 차가움을 느낀 나는 어깨를 움추리고 바삐 걸어가는데 앞에서 마주 보고 걸어오던 한 프랑스 남자가 빗물을 닦는 나에게 눈을 찡긋하며 지나간다, "날씨 참 좋네요!" 하면서. 글쎄, 내가 아무 반응없이 지나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텐데 나는 그만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자 지나가던 그 남자는 다시 돌아보면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딱히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그 남자와 맥주를 한 잔 했다. 혼자 다니는 여자 여행자를 어떻게 하려는 프로페셔널한 음흉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의심을 놓지 못한 채 뚜껑이 없는 생맥주같은 건 마실 생각도 안 했고 병맥주를 시키고도 한 병을 다 마시기 전엔 화장실에도 가지 못 했다. 웃으며 한 잔 하면서도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살아 있었던 걱정쟁이 hertravel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계산까지 반반으로 하자고 우기는 날 보고는 그 남자는 "넌 아마 사회주의자인가 보다"라고 쿡 웃었다.

그 뒤의 얘기는 지금 쓰기는 너무 길어질 터이고 아무튼 나는 지금 진열장의 이 음식 재료들이 그 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패턴으로 꽂혀서 진열된 것이 한편으로 우스웠다는 얘기다.

모르고 지나다가 이 거리의 온갖 음식점중에서도 눈에 띈다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바깥 진열장에 온갖 치즈를 진열한 집이었다. 문구를 읽어보니 시골집 치즈 전통의 맛을 보여주는 집이란다. 사람들도 많이 들락거리고 퐁듀를 해 먹는다는 홍보 문구가 살짝 침샘을 자극한다. 뭐 그렇다고 치즈 요리 한 끼니를 하기엔 그리 배고프지도 않아서 지나갔는데 한국에 와서 알아보니 워낙 이 집이 그렇게 유명한 집이라 한다. 

이 거리의 또다른 명물 레스토랑 몇 몇은 돼지 고기나 닭고기를 통째로 꼬치에 꿰어 계속 바베큐 돌리듯 기름을 뚝뚝 흘려대면서 굽고 있다. 뿌우옇게 김이 올라 기름이 흘러 내린 자국과 함께 여행자의 눈과 코를 자극하는 프랑스 돼지의 나신이 뽀득뽀득 구워지고 있다... 그렇게 돼지 고기를 보고 선 구경꾼의 귀에는 저녁 늦음을 가리키는 인근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그 성스러운 소리에 급 식욕을 느낀 나는 느닷없이 그리고 뜬금없이 크레뻬를 사 먹는다.

끄레뻬는 그저 프랑스의 햄인 '장봉'과 '에망딸' 치즈만 넣은 것만으로 충분히 맛있는 군것질거리인데 나는 '그냥 햄과 치즈가 아닌, 한국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종류로 먹어보겠다'는 욕심이 나서 여기 애들이 좋다고 빵이고 어디에고 발라 먹는 누뗄라(발라 먹는 초콜릿)와 생크림을 섞어 바른 끄레뻬를 시켰다. (옆의 사진)원래는 여기에 바나나도 들어가야 진짜 파리 애들이 잘 시켜 먹는 크레뻬다.

악....

<세상에 이런>급의 달디 달고도 진한 맛은 나에게 완전 미식미식함을 제공하여 그 길로 가장 가까운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묵고 있는 민박집에 저녁 식사를 좀 남겨주실 것을 부탁하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그간 그 유명한 파리의 지하철을 너무나 충분히 자주 많이 탔음을 감안하여 또 한 번 시내 버스를 이용했다. 아까 출퇴근 시간에는 파리의 시내 버스도 문을 못 열 정도로 그 많은 인간들이 가득 가득 메워 타며 '이것이 진정한 생활 속의 파리'임을 보여주더니 이제 저녁 늦은 시간이 되자 시내 버스 안은 한적하기 그지 없다. 내 앞엔 방금 싸웠다 화해한 듯 보이는 커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색한 듯 그러나 아주 길게 키스를 하고는 내렸다.

버스 사진 올리는 김에 파리의 지하철 사진 한 장을 추가한다. 뭐, 파리에서는 무임으로 지하철을 승차를 했네 안했네하는 쓰잘데 없는 배낭여행 무용담을 들을 일이 없다. 파리 지하철 공사(?)의 무임 승차 완전 차단 출입문 때문이다. 하지만 다녀보니 곳곳에 빈 틈은 많기만 하더군! 그냥 저냥 모른 채 환승하려다가 찜찜해서 고민했을 뿐 어디나 빈 틈은 있다. 다만 들켜서 창피할 짓은 안 하는 것이 좋겠지요... 안 들킬 자신이 있다면... 그건 서울이나 파리나 알아서 지나가실 일~ 

by hertravel | 2006/05/29 17:38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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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랭보 at 2006/06/27 08:22
여행기가 참 맛깔나요
들락거리며 보는 재미, 고마워요.
Commented by sikh at 2006/06/27 17:42
파리 지하철 참 멋지네요... ㅜㅜ
우리나라에서는 무임승차하는 사람 시민 의식 없는 사람 선진국에선 안 그래 어쩌고 그래도, 어딜 가나 공짜로 붙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마련인가봐요(...)
Commented by 히카리 at 2006/06/28 02:03
통구이가 인상적인걸요. 치즈 보기만해도 황홀해요>_</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6/28 23:07
랭보님> =감사=합니다. 맛있게 봐 주셔서요.
sikh님> 그러게 말이죠.그래도 한 두개는 고장난 여유가 파리의 멋이었는데 갈수록 견고해지는 것 같습니다.
히카리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역시 맛있는 곳인가봐요.
Commented by 타리 at 2006/06/29 17:30
그 뒤의 얘기가 궁금해서 잠이 안와요;ㅁ;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7/03 00:39
타리님> 하하하 잠 푹~ 주무셔도 된답니다.정말요. 별 얘기가 없어서 듣고 나면 허탈해서 잠이 또 안 오실듯...
Commented by 세닐리아 at 2006/08/09 03:17
지하철 저 출입구.. 닫히는 소리가 너무 무서워요;;
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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