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자라면 필수! 라땡 거리 케밥 / 파리 까르띠에 라땡_28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고기가 큰 꼬치에 꿰인 채 빙글 빙글 돌아가며 갈색으로 노릇 노릇 익어간다. 꼬치 뒷 편의 열판이 끊임없이 서서히 열을 뿜어내고 켜켜이 겹쳐진 맨 위 고기에서부터 녹아 흘러내린 기름이 촉촉하게 아래로 적셔 내려오다 고소하게 구워진다. 파리를 찾아든 세계 각지에서 온 배낭 여행자들의 신체 자극이 시작된다. 케밥 꼬치의 시각적 퍼포먼스에 자극받고 고소한 냄새에 도발 받은 온 몸의 신경은 마침 출출하던 위장에서 위액을 뿜어내는 소화액의 민망한 분수쇼를 펼친다. 길을 걷다 순간 몽롱한 눈으로 이 앞에서 본능적 표정을 보였던 여행자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눈길을 돌리려하나 눈을 돌린 아래엔 꼬치의 고기와 함께 케밥 내용물로 같이 들어갈 레터스와 토마토, 프렌치 프라이의 빨노초 삼색쇼가 유혹중이다. 

 

싼 가격에 푸짐한 양, 사람들의 보편적인 입맛에 잘 맞는다는 이유로 이 거리의 케밥은 -터키가 아닌 프랑스를 보러 온 여행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라땡 거리를 찾은 배낭 여행자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 거리를 몇 번을 왔으면서도 케밥을 먹지 않았다. 아마 다른 나라에서 양고기 특유의 맛이 아주 강했던 케밥을 먹고 차마 씹어 넘기지 못했던 경험때문에 양고기포비아, 아니 케밥포비아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카메라를 들고 선 나에게 너스레를 떨어대는 케밥집 아저씨의 즉석 요리 강습덕에 얼떨결에 오늘은 케밥을 사 먹고 말았다.


"칫킨~!" (하면서 치킨 넣고)

"쏫쓰~!"(하고 소스 바르고)

핫 쏫쓰~!" (하더니  핫소스 바르고)

아저씨는 나를 강습생 삼아, 시청자 삼아, 혼자서 케밥 만드는 장금이 연기 몰입하셨다. 

게다가 아저씨는 열심히 나를 격려하며 안심시켰다. 괜챃아 이거 닭고기 닭고기!

 

또띠야에 꼬치에 익혔던 고기 조각을 올리고 레터스, 토마토, 프렌치 프라이를 올리는데 어라... 모름지기 케밥은 긴 칼로 꼬치의 고기 덩이의 익은 겉면을 채 치며 깎아 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늘... 이 아저씨 손에는 다리미같은 것이 들려 있더니 고기 겉면에 가서 윙...하고 돌아간다. 다리미가 아니라 면도기다. 이제는 일일이 손으로 쳐 내릴 필요 없이 밀어버리는 기계가 등장한 것이다. 분장실의 코디 언니들이 김 슉슉 나오는 다리미로 의상 다리는 모습과 똑같다.

사실 바뀐 것은 고기 깎는 다리미(?)만이 아니다. 이 아저씨, 프랑스 터키 음식점에서 고국의 음식을 파는 터키 아저씨가 아니다. 내가 아직 터키를 여행해 본 적은 없지만 의외로 서구인에 가깝게 생긴 터키인과는 달리 상당히 아시아스러우신 이 아저씨, 어디서 오셨냐니까 파키스탄에서 오셨단다...! 헤헤헤 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의 일식집에 와서 스시 먹는 꼴이지 뭐. 예전 아주 오래전엔 정말 터키인, 그것도 아저씨가 아닌 오빠들이 칼질로 고기를 썰어대는 걸 봤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다국적 세상이다. 드디어 프랑스에서 파키스탄 아저씨가 만들어 파는 터키 케밥 타임!

그러나 저러나 케밥에 저렇게 프렌치 프라이를 잔뜩 넣어주는 건 오리지널 스타일이 아닐 것 같다. 아마도 바다 건너 퍼지면서 변한 것 아닐까? 차라리 호주 도매 시장에서 터키 이민자들이 만들어 팔던 양고기 향 활짝 핀 그 케밥이 오리지널에 가깝지 않을까?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터키는 언제 한 번 꼭 가 봐야될텐데!



사진 속의 밝은 표정 여자분은 이 모든 것이 즐거우신가 보다. 남자의 얼굴을 볼 때 분명 이 곳에 들어오자고 말한 것은 절대 그가 아니시고 즐거우신 여자분임에 10유로를 건다. 누군가 여행중인 나의 사진을 찍었을 때 내 표정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이 거리에서 많이들 먹는 프랑스 정식 식사를 먹어서 '프랑스 정식 한 끼니에 2만원' 팻말을 목에 건 비너스 상의 손을 들어주든, 파키스탄 아저씨가 꼬시는 통에 나도 모르게 케밥을 손에 쥐어 들었든 어쨌든 모든 것은 세상에 단 한 번 있는 이 날의 단 한 번의 순간이다! 가끔 여행중에 감동이고 뭐고 피곤에 눌려 이마를 찌푸리고 다니는 나를 스스로 발견할 때가 있다. 깜짝 놀라 내 머리를 꽁(가끔은 쿵!) 내려친다. '내 인생의 이 순간이 이 곳에 배정되어 있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정말 여행이란 항상 놀라운 기적이며 여행중의 갖가지 경험과 한 순간 순간은 모두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것들이다. 

by hertravel | 2006/05/28 17:37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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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히카리 at 2006/06/26 04:00
즐거운 느낌이 배어 나오는 사진이네요. ^^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6/27 02:29
특히나 배고플 때 찍은 사진은 맛있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다악 at 2006/07/07 21:25
하하 저도 저런 다리미(..)본적 있어요
젊은 캐밥아저씨들은 긴칼로 슥슥 써는데 할아버지가 파는 케밥집을 갔더니
팔힘이 딸리는지 희한한 다리미로 썰어주더라구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7/08 00:42
다악님> 맞습니다. '팔 힘이 딸리는지' 이 분석이 가슴에 콱 와 닿습니다
Commented by 꼭사슴 at 2008/11/20 12:22
제목만 보고
'라땡거리' 가
종로에 있는 라면집 '라면 땡기는 날'이 위치한 거리
인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4/28 08:37
푸흐흐 딱 그렇게 들립니다
Commented by 나미너미 at 2009/04/24 00:10
다이트 중일땐 왜그리 저누무 손가락만한 프랜치프라이가 간절헌지....
내일은 아침일찍 저눔을먹어바바?--
대신 다른건 아무것도 안먹을께...내미쵼다 미쵸...

하늘이시여~~~내일은 멀쩡한 하늘서 손꾸락만한 푸라이가 슝슝 쏟아지는 이변을 내리소서~~~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4/28 08:38
그러고보니 이 글과 네덜란드 프라이 글을 연달아 읽는다면 파괴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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