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25일
머리 둥둥 은접시, 엽기 루브르 / 파리 루브르_25
'뭐 하자는 거냣!'
이... 이것... 설마 진짜 접시는 아니겠지? 아... 아니... 아니라면 그럼 뭐란 말이지? 그래도 말야, 장식품이든 뭐든 어차피 접시는 접시가 아니겠어?이 접시에 스프를 가득 따라서 먹다보면 어느새 스프 중앙에서 그로테스크한 얼굴이 서서히 드러나겠는걸. 나중에 스프를 다 먹을 때 쯤이면 밑바닥에 깔린 불그죽죽한 토마토 스프 국물 위로 달랑 얹혀진 머리 하나가 바닥까지 떠 먹던 나를 쳐다 보고 있지 않을까.
이 얼굴의 주인공이 너무나 높고 귀중한 분이시어서 국사발에까지 '특별히' 모셔진 것일까, 아니면 토마토 국물에라도 빠뜨려 죽이고픈 가문의 원수라서 식사 때도 그 원한을 잊지 말자고 동양의 와신상담 스토리를 카피해서 새겨 놓은 걸까. 설명을 찾아보아도 방마다 있던 영어 설명서가 딱 이방에만 없다. 또다,또! 날 따라붙는 루브르의 저주...
설명서도 없이 머리 둥둥 은접시를 바라 보는 나는 또 상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브레라 백작은 평소에 원한이 있던 무똥 남작을 이렇게 그릇에 새긴 후 성으로 식사 초대를 하는 거다. 초대를 받은 무똥 남작은 이게 무슨 함정인가 하는 마음으로 망설이다가 워낙에 식탐이 많은 성격인지라 호랑이 굴로 들어가 식탁에 앉는 거다. 무똥 남작의 긴장은 잠깐, 곧 이 성의 놀라운 주방장의 솜씨에 모든 걸 잊고 '음 아무리 정적이라고는 하나 브레라 가문의 토마토 스프는 역시 일품이거든' 하고 접시를 내려다 보는 순간. 접시에서 자기 얼굴이 입을 헉! 벌리고 죽은 얼굴 모습으로 둥둥 떠서 나타난 거다. 아아니! 하고 놀라서 고개를 드는 순간, 식탁 뒷 벽에 장식용 갑옷인 줄 알았던 철가면이 울랄라! 하며 쌍박을 휘두르는 거다, 빠악 빡...'분하다, 내가 식탐만 없었어도...!' 무똥 남작은 쌍박에 쓰러져 아쉬워하나 통쾌하다는 듯 커튼 뒤에서 나타난 삼바 댄서들과 함께 브레라 백작은 차가운 미소를 짓는다...(hertravel의 2006년도판 상상 버전)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다가 사진을 심층 분석해 봤더니, 접시 속의 두상이 비스듬히 전시될 것을 바라고 만들어졌는지 뒤로 기울어져서 만들어졌다. 그래, 어쨌든 아무튼 무슨 접시든간에 전시용으로 만든 것은 확실한가 보다.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 코너엔 또 이와 같은 엽기 조각을 발견한다. 사실 이 작품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작품 년대를 확인하느라 소설의 표현처럼 내 눈을 비볐다. 도저히 먼 옛날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신선,싱싱해보이는 이 조각의 작품 년대는 기원 후 1,2세기라고 한다. 소녀가 깔고 누운 저 쿠션을 보라, 어찌 저리 현대적이고 푹신해 보이는 것이, 백화점 침구 코너에 방금 나온 신제품같은 저 것이 어찌 2000년 전 돌조각이란 말인가. 과연 인체 조각은 그리이스 로마 시대 이래로 르네상스 이전까지 완전 퇴보의 길이었음이 맞는 말이로구나. 나른하게 누운 소녀의 저 아름다운 선을 좀 보라...감탄하며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hertravel...헉, 깜짝 놀란 내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건 또 뭐하자는 짓이냐!'
나를 따라서 옆으로 같이 옮겨온, 독일 농촌 어디에선가에서 오신 듯한 고전적 스포츠맨 헤어스타일을 한 남자도 갑자기 숨을 꿀꺽 삼키면서 나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허겁지겁 조각상의 타이틀을 찾아 본다. 제목을 보니 에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fis란다. fis...fis...fis가 딸이던가, 아들이던가? 중요한 때에 기억이 안 난다. 그나저나 아들이건 딸이건 두 번째 충격이 곧 이어졌다.

뒷 모습은 선이 아름답던 처녀가 앞모습엔 남자의 성기가 자리 잡아 있길래 '아니, 그럼 남자였나?'하고 나는 이 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는데...가만히 보니까 그것도 아니다. 가슴은 봉긋하게 여자의 모습인거다. 어쩌자는 거지? 왜 이런 조각이 있는 거지?
궁금해하는 나를 위해 여행중 나의 친구 우드스탁이 한국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다음과 같은 신화를 알려주었다. 헤르메스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와의 사이에서 에로스와 '헤르마프로디투스'를 낳았다. 특히 헤르마프로디투스는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는데 살마키스라는 요정과 강제로 몸이 합쳐져 자웅동체(!)의 인간이 된다. 휘발성이 강하고 액체와 같은 금속인 수은(mercury)을 의미하기도 하는 헤르메스와 자웅동체의 헤르마프로디투스는 그래서 연금술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헤르메스는 양립 불가능한 것을 조화롭게 하는 매개자이자 전령사인 것이다. 그래서 헤라클레스가 도덕과 쾌락 사이에서 고뇌할 때 그 두 가지를 모두 취하라고 충고해 주기도 하였다.
'양립 불가능한 것을 조화롭게 하는'이란 해석, 멋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



여기에 루브르의 엽기적인 전시물 하나를 더 추가한다. 대형 박물관 구경이 재미있는 것은 생각지도 못 한 배포있는 전시를 맛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일찌기 대영 박물관에서, 그리스 언덕위의 신전을 통째로 훔쳐 와서 박물관 실내 안에 그대로 조립해서 세워 놓은 것을 보고 경악한 바도 있었다. (위의 사진들)루브르 얘네들은 아예 자기네 루브르 원래 담벼락을 그대로 갖다 쌓은 건지 일부를 그대로 놔두고 이런 전시관을 만든건지 아무튼 이 전시관 하나는 담벼락 천지다. 이런 전시관을 만나면 참 신비해지고 묘한 기분이 든다.
묘한 기분이 들도록 전시해 놓은 것 중의 하나. 중세 기사들의 망토를 기사들 무릎 꿇어 앉는 위치에 맞게 전시해 놓았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의 일생이란게 얼마나 덧없나 싶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든다. 따지고 보면 박물관이며 미술관이며 다 죽은 사람의 것들을 보고 다니는 순례라는 생각이.

# by | 2006/05/25 17:35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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