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씨, 너무 야해요! / 파리 루브르_24

나 이것 참 민망해서... 얼굴 표정을 숨기는 것이 곤란하다. 이건 또 뭐하는 그림인가 하고 수수께끼같은 표정을 짓고 서 있는 내가 궁금했던 건지 사람들이 하나 둘 내 옆에 발걸음을 멈춘다. 그래. 나만 이 그림을 묘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자기네 나라말로 서로 수군거린다. 쿡 하고 웃는 소리도 들린다.

루벤스 그림이다. 사진으로 옮겨 놓으니 좋아보이는데 앞에서 보면 꽤 크고 또, 위작이 아닐까하는 약간 어딘가 조악스러운 데가 있다. 항상 볼 빨간 사람의 살이 넘치는 루벤스 그림답지 않게 시퍼러둥둥 원색이 창백하고 거칠다. 뭐, 미술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의 눈을 가진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이때까지 본 루벤스 그림은 왕족, 귀족 초상화와 성서화, 역사화가 많았는데 특이하게도 이 그림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것이다. 어후후 루벤스씨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핑계 삼아 춘화 비슷하게 도색적으로 그려보신 거 아냐~? 보라구, 사티로스(라기엔 하체가 아니다. 그럼 판인가? 아님 망나니 바람둥이 제우스?)의 성기는 민망할 정도로 발기돼 있다. 웬만하면 저 부위는 참으로 우연하게도 항상 나뭇잎이 툭 떨어져 있다거나...휘휘 휘감은 옷자락이 거기 딱 걸쳐 있는 요주의 지대인데 어인 일로 저렇게 야수처럼 그려대셨을까 하는 거다. 게다가 기껏 맘 잡수시고 세워(?) 그려 놓으시고는 왜 그 위를 검게 칠하셨을까 하는 거다. 지울 거면 아름답게 삭제해 주시지 왜 모양은 그대로 살려 놓은데다 검은 색으로 북!북! 덧칠을 했을까. 누군가 굉장히 화가 나서 북북 칠해버린듯 보이는데 그 '북북' 효과 때문에 되려 그래서 더 눈에 띄고 말았다. 이 사람의 손은 여자의 가슴을 쥐어 잡고 있고 오른쪽에서 그걸 바라보며 살포시 손을 대고 있는 저 남자의 성기도 또 서 있네. 그건 하얗게 긁어낸 자리처럼 보이는군.'북북' 지우는 사람으로선 손 대고 싶은 게 한 둘이 아니었을 그림이다. 루벤스씨는 이 그림을 왜 그렸을까? 누가 의뢰했을까? 의뢰한 사람은 이 그림을 어디에 걸어 두었을까? 루벤스씨가 기껏 그린 그림 일부를 누가, 왜 꺼멓게 칠했을까?

사실 서구에서 미술관의 옛 그림들을 보고 다니다 보면 루벤스씨만이 아니라 그 옛날의 훌륭하신 많은 화가들께서 신화를 명분으로 자극적인 묘사를 했다는 혐의를 갖게 된다. 그리고 굳이 신화가 아니더라도 육체 미학을 내세워서 그린 그림에도 의도성이 다분한 것들이 있다. 2003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티치아노 특별전에서 보았던 티치아노의 여인 누드도 그랬다.특히 그 그림의 여러 버전과, 이전의 스케치들을 비교할 수 있게 해 놓았던 전시회라 비교를 하면서 대가들의 여인 누드 중에 어떤 그림은 특히 성적인 흥미로움을 불러 일으키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히 로마 신화 배경으로, 그 많은 로마 신화 중에서도 성적으로 못된 짓을 하는 사티로스나 판이 나오는 걸 주로 그려 주면 소장자 귀족은 그 그림을 응접실이나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은밀한 침실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잘 하면 만사에 야한 생각을 연결하는 사람으로 돌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감동적으로 보는 루벤스의 다른 유명 그림 중의 하나에도 나는 혐의를 두고 있다. 원래 이 그림은 보통 - 너무 야한 거 아냐- 하는 편견으로 처음 보게 되다가 원래 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 감동의 눈길로- 바꿔 보게 된다는 그림으로 '편견과 진실'을 이야기 할 때 많이 거론되는 그림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사실은 어느 정도는 포장이고 에로틱한 것을 그리고, 보고 싶은 우리 인간 본능의 해석에 더 진실하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독립 투사로 감옥에 갇혀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면회온 딸이 자신의 모유로 아버지 생전의 마지막 입술을 축이는 장면이다. 죽음을 앞에 둔 독립 투사와 딸의 일화를 성스럽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같이 성적인 코드의 포장이라고 보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다. 그게 아니라면 왜,어째서, 하고 많은 일화 중에 이 일화는 그리도 인기있게 여러번 그려졌느냐 하는 거다. 예전에 누가 광고 회사 면접을 보는데 거기서 '성적 코드의 광고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고 하고 그 사람은 '그것이 효과가 없다면 지금까지 물의와 논란 속에서도 성적 코드의 광고가 계속 돼 왔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했다.

사진은 이탈리아에서 메디치 양이 프랑스로 시집 오면서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신 때를 그린 루벤스 선생님의 그림이다. 아주 긴 사족으로 한 마디한다. 이렇게 무거운 배를 받치는 여신님들도 꼭 이런 풍만녀들이다. 루벤스씨는 금발의, 아주 풍만하지만 매우 젊은, 특히 둔부가 크고 유두가 작은, 볼은 발그레한 독일스러운 여성을 많이 아름다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생각지 못 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나 hertravel은 루벤스씨의 그림을 볼 때마다 독일에서 마시는 생맥주가 생각나서 침을 꼴깍 삼킨다. 루벤스씨의 그림의 미녀들이 자꾸 생맥주 호프집 바깥에 붙인 생맥주 써빙 독일 아줌마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눈물 난다, 이 연상 작용.


사실 루벤스씨의 완전 호방하고 부단히 할 말 많은 그림풍, 실은 그리 내 취향 아닌데 저 수수께끼같은 그림때문에 완전 특집 한 편 확실하게 실어 드리고 말았군. 아무튼 유명 박물관에서 삐뚜름한 것만 보고 다니는 hertravel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를 머리 둥둥 은 접시를 보고야 만다.

by hertravel | 2006/05/24 17:33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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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ikh at 2006/06/11 00:08
루벤스 하면 아무래도 플란더스의 개가 생각이 나는데... 저 모유 그림도 루벤스 작이었군요; 네로와 파트라슈의 죽음으로 왠지 경건(?)해 보였던 루벤스는 원래 저런 식의 야한 그림을 많이 그린 거네요... ㅜㅜ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6/11 16:24
모유 그림은 여러 화가가 그렸는데 저 그림이 루벤스작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루벤스 선생님께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저 위의 신화 그림은 루선생님 그림치고 너무 특이하여 저도 놀라서 올린 거랍니다. 그리고 제가 명화들을 두고 색다른 '야한' 감상을 해 거니까요 (이것, 어쩐지, 루선생님께 민폐끼친 느낌이... ^ㅗ^;)
Commented by 참깨군 at 2009/03/11 05:31
저런 그림들은 당시 보수적인 관람객들에게 많이 봉변을 당했을 것같네요. ^^;
Commented by 여행유전자 at 2009/03/11 06:26
아마도 그림 주문한 사람의 비밀스런 침실용으로 그려서 납품(?!)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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