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21일
마시고 보니 유령의 집 / 파리 샹피옹 수퍼_21




흐뭇하게 손에 들고 숙소에 와서 밥 먹고 난 다음 식탁에 올려 음주의 장을 연다. 맛있는 와인은 서너명이 함께 마셔야 더 좋다. 민박집 주인 유학생분과 함께 마시는데 그윽하다. 맛있다. 와인 상태가 정말 좋다. 확실히 배타고 오면서 적도 넘어가며 한 번 부글부글 끓어주고 온 것과는 다른 거다. 그런데 맛있는 와인의 힘이 생각지도 않은 이 민박집의 숨겨진 사연을 듣게 해 줬다.
지금 나와 같이 와인잔을 기울이는(?) 민박집 주인 유학생분이... 이 민박의 주인장이 아니었던 것! 그냥 주인이 아닌 것 뿐 아니라 나와 같은 여행자였던 것이다. 알고보니 이 가짜(?) 주인장은 프랑스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미국 유학생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프랑스에 들러 북 아프리카나 한 번 돌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여기 파리 민박을 하는 사촌 동생을 찾아왔다가 사촌 동생(이 진짜 주인장)이 갑자기 일이 생겨 한국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임시로 이 집을 맡아주는 중이었다는 것. 후후후 아무리 여행자들보다는 파리에 더 머물렀다고는 하나! 파리에 자주 놀러왔다고는 하나! 엄연히 똑같은 여행자인 그에게 사람들은 오며 가며 '파리에서 어딜 가야 뭘 하죠?' '뭐가 어떻게 되면 프랑스에서는 뭘 해야 하나요?' 질문을 날리며 살아있는 지식인 검색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보니 이 날 아침에도 여자 세 명 놀러온 팀이 이 분 붙들어 놓고 뭔가 묻고 있는 것 같았는데. 킥킥 웃음이 나온다. 이분이 그 때 뭐라고 대답을 해 줬더라? 그렇다면 음식을 해 주는 저 분은 그럼 누구고, 저기 왔다 갔다 하시는 저 분은 누구인가요?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요지경이다. 음식을 해 주는 분은 어떻게 친구분이고, 저기 주인 분위기 엇비슷했던 사람들은 영국 유학생으로 여기 주인과 친해서 프랑스로 놀러 나온 사람, 그 옆의 사람은 그 사람의 누나, 뭐 이런 식이다.
아아아 이 집, 유령 민박이었다. 주인 없는 집에 손님만 모여 있었던 것이다. 손님이 밥을 지어 새 손님을 먹이고 새 손님이 떠나면 또 다른 새 손님이 찾아 든다. 새 손님은 밥 지어 주는 손님이 주인인 줄 알고 있으나 실은 주인은 지금 손님들이 떠나오신 한국에서 프랑스 민박집 경영의 시름은 다~ 잊으시고 참이슬에 계란말이 케첩 발라 드시고 계신 것이다. 손님으로서는 처음으로 내가 이 사실을 아는 거라고 한다. 이게 다 샤토 달마약의 진실 탐지 능력이다.
주인장 없는 유령 민박에서 그렇게 손님들만 모여 영국의 유학생 분이 전해주는 웃지 못 할 사건과 실화 이야기에 배를 잡고 뒹굴었다. 유럽의 비둘기를 잡아 먹는 중국인들 이야기와 고양이용 참치 캔(인 줄 알면서도 아껴 먹는)아프리칸 이야기 같은 경험담과 유학 생활 무용담과 '세상에 이런 일이'류의 이야기들...결혼은 하기 싫고 아기는 낳고 싶어하는 영국 여자들이 손쉽게 노숙자 아저씨들을 애용(?)하는 바람에 영국의 노숙자 아저씨들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여자들에게 끌려가서 잠-을 자는 일이 자주 있단다. 한 마디로 돈은 없어도 여자는 끊이지 않는다는 영국 노숙자 아저씨들 이야기를 듣는 것을 끝으로 나는 와인으로 검붉어진 입술도 닦지 못하고 잠들었다.
# by | 2006/05/21 17:31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2)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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