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구석에 숨은 한국전 참전비 / 파리 퐁마리_20

적어도 이런 일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고 싶지 않다. 외국을 다니다보면 만나는 한국전 참전 용사 말이다.우리 땅에서 스물 몇 살의 목숨을 잃은 외국의 청년들을 기리며 세워준 작은 비석같은 것을 볼 때엔 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 소원 중 하나는 내 일생을 통털어 단 한 번도 직접 전쟁을 겪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개인의 그 어떠한 노력과 의지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일어난다. 남북을 통털어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의 어느 누구도 전쟁통에 인생이 결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나라에 참전한 유엔군 청년 군인들 역시 이름도 모를 극동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갑작스런 죽음으로 자신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전쟁은 한순간에 개인의 삶을 난폭하게 앗아가 버린다. 죽은 뒤 그를 기리며 금강석 비석을 세운들 무엇할 것이며 금으로 이름을 새긴들 무엇할 것인가.

리히터 규모 6.3의 엄청난 강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재난을 취재하러 남미 콜롬비아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콜롬비아는 미국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해외 여행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지구 상의 몇 안 되는 나라중의 하나일 정도로 치안 상태가 제 멋대로인 그런 나라다. 한 마디로 어떤 나라냐, 정부가 하나가 아니라 여섯 개가 넘는 (비공식적으로)다는 그런 나라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당시 콜롬비아는 외교적인 국가 대표 정부, 농민 정부, 게릴라 정부, 일부 지역 패권을 장악한 정부, 등등등 아무튼 여섯 개가 넘는 정부를 자랑?했다. 그 중엔 주 소득원이 '납치'인 모 게릴라 정부가 있을 정도로 치안 부재의 국가이자 마약 생산 국가로 유명하다. 그런 콜롬비아에 입출국을 할 때 놀라는 것은 우리나라가 콜롬비아 입출국 비자 면제 국가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을 만나보지 못 한 콜롬비아 입출국 관리 직원들조차도 깜짝 놀라서 확인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와 콜롬비아의 특별한 이런 관계는 비자 면제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무려 이동하는 데만 2박 3일을 걸려 도착한 콜롬비아의 시골에서 한국 전쟁 참전 용사 출신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 먼 나라에서 우리나라까지 와서 전장에서 숨지고 팔 다리를 잃었던 남미의 할아버지들.



(참전 용사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옛날 사진첩을 보고 있다)
 

(어떤 정권이 콜롬비아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코리아 참전 용사들은 옛날엔 나라의 명을 받아 우리나라에 와서 싸웠지만 어느 순간엔 자기 조국 콜롬비아에는 화를 끼친, 지난 세월의, 콜롬비아 현재와는 맞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어 나라로부터도 박대를 받았다고 한다. 윗 사진도 겨우겨우 근근히 살아나가는 어느 참전 용사 할아버지의 숙소다. 집이 없어서 한국 참전 용사 협회 사무실 한 편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정치적 상황과 상관 없이 그 분들께는 예의를 다하고 싶었다. 아리랑을 부르며 수 십 년 전을 기억하고 한국을 추억하는, 자신들에게 한국이 특별한 나라이듯 한국도 자신들을 조금은 특별하게 기억해 주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는 그 호호 할아버지들에게 참 힘든 세월을 함께 하셨다고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노닥거리며 걷던 파리의 퐁 마리 부근,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건물의 그늘진 도로 화단 사이에서 한국 전쟁에 참여한 프랑스 군인들의 전투를 기리는 한반도 모양의 기념비를 발견한 것이다. 뜻하지 않게 한반도 어디에선가 죽어간 프랑스 젊은 병사 누군가를, 지금 살아 있다면 호호 할아버지일, 그를 진심으로 추모한다. 사람 누구에게나 정말 단 한 번 주어지는 삶을 우리나라에서 마감한 이름 모를 그 분들에게 한국에서 프랑스로 놀러온 관광객 hertravel은 작은 들꽃이라도 한다발 놓고 가고 싶었다. 다음 번에 파리를 다시 가는 일이 생긴다면 꽃을 사서 놓고 오고 싶다. 이 날 나는 이 비석 앞에서 짧은 묵념을 올렸다.


by hertravel | 2006/05/20 17:30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3) | 핑백(2)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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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이오공감의 흔적 at 2006/06/05 11:29

제목 : 2006년 6월 5일 이오공감
파리 한구석에 숨은 한국전 참전비_20  by hertravel 적어도 이런 일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고 싶지 않다. 외국을 다니다보면 만나는 한국전 참전 용사 말이다.우리 땅에서 스물 몇 살의 목숨을 잃은...도망갈까, 싸울까- '탈선'  by milkwood 삶은 예측불허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측하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릿속에 윱?하루가 어떻게 진행될지 그린다. 가끔 어긋나는 일도 있고, 예상치 못한 일도...중산층이란 누구를 말하나?  by 페로페로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우리는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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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감사합니다.
,파리 한구석에 숨은 한국전 참전비_20 이글루스 이오공감이라 트랙백 하기가 참으로 부담스럽지만,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라서 결국 해버렸다. 내일은 현충일, 지금은 월드컵 분위기에 잊혀져 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아직 휴전 상태에다 그 것도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라가 여기까지 올 동안 희생하신 수많은 분들, 우리나라 분들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어느나라에서 참전했는지도 다 모르는데...- .....more

Tracked from stargazer's .. at 2006/06/06 11:21

제목 : 2006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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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상훈 at 2006/06/05 12:38
내일이 현충일이군요...
Commented by 리닌 at 2006/06/05 12:50
이오공감 타고 왔습니다. 왠지 가슴한켠이 숙연해지네요.
Commented by mummy at 2006/06/05 13:01
저도 이오공감타고 왔다가 링크 꾹 누르고 갑니다...왠지 가슴이 숙연해지는군요..
Commented by 가이우스 at 2006/06/05 13:43
저도 이오공감을 타고 왔습니다만, 항상 우리를 위해 피흘리며 쓰러져간
외국 병사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묵념...
Commented by 가이우스 at 2006/06/05 13:44
더불어 저도 링크를 꾹 눌렀습니다. 멋진 글이예요
Commented by ThePaper at 2006/06/05 14:07
진보와 보수를 따질일이 아니죠. 이것이야말로 인류애. 감명깊은 글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콜룸비아 분들에게도 좋은 날이 오시길 빕니다.
Commented by 상붐 at 2006/06/05 18:26
저도 빠리 갈 일 있으면 꼭 꽃한송이 놓고 오겠습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6/05 19:49
이상훈님, 리닌님, mummy님, 가이우스님, ThePaper님, 상붐님 >>

이 글이 이오공감에 올랐군요. 쑥스럽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같이 보셨다는 건 참 기분 좋기도 하고요.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내일이 현충일. 사람과 평화를 사랑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콜롬비아 할아버지들이 저희 카메라 앞에서 갑자기 정말 생각도 못한 아리랑을 부르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세계 곳곳 뜻하지 않은 나라에도 이름 없는 한국전 비석이 있겠죠? 우연히 지났던 파리의 퐁 마리, 또 다시 들른다면 저도 꼭 꽃을 갖고 다시 찾아가고 싶습니다. 먼저 들른 사람의 마른 꽃이 있다면 이글루 블로거님들을 만난 기분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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