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17일
어느새 꽤 유명한 마레 지구① / 파리_17

마레 지구를 특별히 들러야겠다던 사람은 거의 없었던 시절이 불과 몇 해 전인데 요즘은 파리를 여행할 때 꼭 빼먹으면 안 되는 곳으로 마레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워낙 여행 정보가 넘치다 못 해 터져나는 수준이라 그런가 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서점에 들러서 휘리릭 넘겼던 어느 파리 유학생 부부의 책에서도 마레 지역이 자세히 나와 있었고 읽지는 않았지만 스노우캣의 책에도 자세히 나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 여행을 즐기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파리에 갔을 때 꼭 이 마레 지구를 들른다. 파리의 숨은 진주같이 소중한 비밀 보석함 같던 이 곳이 어느새 유명해 진 것이다. 사진의 claire's 예쁜 잡동사니 샵에서 보듯 작고 예쁜 가게들이 조근조근한 볼 거리로 모여 있는 구역. 마레 지구.

꽃 집 하나도 이렇게 푸르름이 우거지도록 예쁘게 꾸몄거늘 다른 것은 어떨까! 이 곳을 거닐다보면 파리의 다른 동네를 걸을 때와 조금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쨌거나 바게뜨가 주인공인 대부분의 동네 빵집과는 전혀 다른 진열장의 빵집 역시 그렇다.
빵 모양이 아무래도 프랑스 빵같지는 않다 느꼈다.
넙적한 모습이 아랍 지역부터 동 아시아의 인도에 이르는 주식인 화덕에 구운 넙적한 곡물 반죽 떡(빵?) 부류에 속해 보인다. 인도에서 보던 차파티, 난, 이디오피아에서 먹는 안젤라와 같은...그러니 내가 유태인을 갑자기 떠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국에 와서 뒤져봤더니 Levain이라는 빵은 효모를 넣지 않고 구운 빵이라고 하고 (오, 정말 아프리카,아랍, 인도에서 먹는 그 넙적한, 부풀지 않는 빵!) 옛날엔 이 마레 지역이 파리 최고의 상류층 주거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게이와 유태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하니, 유태인들의 빵인게 확실하다.


관광객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파리지앙이 아닌 것 같은데도 이 집에 눈독을 들이고 들어간다. 우리나라 책은 안 읽고 가서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이 이 근방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나오지 않은 듯) 어쩌면 외국의 가이드 책에 나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유난히 특이한 빵집에 드글거리는 사람들에 끌린 나처럼 그렇게 유리창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일까.

이 동네 골목 모서리마다 숨어있는 작은 호텔들은 나의 숙박 욕구를 갑자기 자극한다. 여행을 계획하던 처음, 나는 이처럼 파리 시내 골목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호텔에 묵고 싶었다. 높은 산이나 시내 대로에 있는 대형 호텔이 최고의 호텔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파리에서는 불과 4,5층짜리 호텔이 별 다섯의 최고급 호텔인 경우가 많다. 시내 요지에 있는 오래된 전통의 호텔들이다. 물론 반대로 작은 호텔들이 모두 다 최고의 별 다섯 호텔은 아니다. 일명 쁘띠 호텔이라고 하는 작고 아담한 크기의reasonable한 가격대의 호텔도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항상 이 곳을 노리는데... 장기간의 유럽 여행 일정을 짜다 보면 이런 호텔조차도 순서가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10일 정도면 무리 없이 들르겠는데 사실 유럽 여행 일정을 짜다 보면 금방 20일이 되고, 30일이 되고, 40일이 되고, 60일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현실과 융통성을 발휘하면서 제일 먼저 포기하게 되는 부분이 바로 숙박 부분이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골목의 호텔과 유태인 빵집의 모습, 그리고 작은 바와 카페가 이 거리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불어로 책 한 권은 커녕 단어 하나도 그 때 그 때 모세의 기적처럼 떠오르는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민망하다) 서점 앞에서는 발길을 멈춘다.
글쎄 이것도 지적 허영심의 일종일지는 모르겠는데 한 문장 한 단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도 책 냄새에서 느끼는 행복감 같은 것 때문에?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파리에 놀러왔던 그 때 나는 첫 서점에서 그림책을 샀었구나. 프랑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후후) 브뤼겔의 화집을 샀고 역시 프랑스와는 전~혀 상관 없는 독일 화가 오토 딕스의 화집을 샀더란다. 지금 생각하면 분위기에 휩쓸린 거였겠지. 어쨌거나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그것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러니 어쨌든 파리가 주는 이 환상과 감상의 최고봉 앞에 두 손을 위로 만만세.
분위기에 취해 휘청거리는 파리의 이 구석에 할아버지 노숙자께서 어엿한 네모 상자 집 안에 살고 계셨다. 그리고 겉으로는 동물애호가이지만 속으로는 비둘기를 다 독살하고 싶어한다는 일부 시민들의 숨은 존재에도 아랑곳 않으시며 자신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비둘기 모이를 사셔서 비둘기들을... 파리의 닭둘기들을 먹여 살리시고 계셨다... 갑자기 떠오르는 박애주의란 단어? 우습다. 거창하게도 갑자기 프랑스를 설명하는 자유, 평등, 박애가 떠올랐던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 평등한 거리, 가난한 박애, 이런 것 말이다. 이상하다. 거창한 한편 여전히 우습다.

파리의 닭둘기들은 마레의 할아버지께서 먹이시고 파리의 여행자들과 시민들은 뽈paul 빵집이 먹인다. '뽈'은 우리나라 파리바게뜨같이 파리의 가장 흔한 베이커리 체인이다.

# by | 2006/05/17 17:28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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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보기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