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12일
밀크 코코아 에펠타워 / 파리_12
나는 지도를 잘 읽을뿐더러 내가 다녀온 곳 지도 수집이 취미고 혼자서 지도 보면서 상상하는게 취미, 여행 가서도 지도와 실제를 맞춰가며 걷는 걸 즐긴다. 나는 그 책에 나온 것과 같이 길눈에 어둡지 않으며 주차도 잘 하고 운전할 때 후진도 수준급이라 자부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자다. 그러니 도대체 저 책이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는 건지 내가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건지 아무튼 시비걸고 싶어질 일이다. 그나저나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유는 그저 내가 파리의 도로 지도를 꺼내놓고 에펠타워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을 찾았던 데서 비롯됀다. 그냥 그랬단 얘긴데 평소에 저 책 제목이 하도 마음에 안 들어 이 참에 한번 걸고 넘어가 봤다.갑작스런 내 열통 터뜨림이 조금 난데 없지만 투덜대고 나니 속이 다 후련. 읽으시는 분들은 인자한 마음으로 다음 문단 넘어가 주시면 감사.
일단 지도를 보니 에펠타워에 딱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 역은 없고 세 개의 역이 다 비슷비슷한 거리를 두고 근처에 있었다. 파리는 지하철이 무척 발달해서 웬만한 장소에 가려면 그 곳을 가는 서로 다른 노선 지하철 역이 최소한 세 개 정도 인근에 포진해 있곤 한다. 나는 일단 숙소에서 덜 갈아타고 갈 수 있고 한 정거장이라도 빠른 역으로 Bir-Hakeim이란 묘한 이름의 역을 정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탔고 그리고 그 역에 내렸다.
그 어떤 여행서나 여행 정보에도 이 역에 대한 부연 설명 한 번 듣거나 읽어본 적도 없다. 지하철에서 이 역에 내리는 다른 사람 한 명 없었다. 사람 한 명 없이 조용하게 먼지 쌓여가는 이름 희한한 역. 그런데 나는 왜 이 역의 건조하디 건조한 이 철조물 모습이 마음에 쏙 드는 걸까. 왜 이런걸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을까. 따지고 보면 거대 철조물에 불과한 에펠 타워을 보러 가는 길이라 이미 정신 상태가 철조물 선호감에 젖어 있는건가 싶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펠 타워는 Bir-Hakeim 역이 아니라 9호선 Trocadero 역에서 내려서 샤이요 궁에서 바라보고 다가가는 것이 관광에 더 좋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이 역의 건조함이 좋았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아무리 녹사평역이 예쁘다고 추천해도 그 외국인이 신도림역이 좋다는데야 우리가 어쩔 것인가. 마찬가지다.
사실 이 날, 지하철을 탈 때까지 날씨가 너무 음산하여 나는 여름이 다 지난 가을에 파리를 찾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역을 나서자마자 아, 그 음울한 날씨는 어디가고 눈을 뜰 수 없게 빛나는 하늘 햇살이 눈 가득히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햇살만큼 강력한 프로작이 있을까. 에펠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너무나 상쾌하다. 그렇게 푸른 하늘을 칭찬하며 위를 보며 걷고 있는데 옆에 섰던 프랑스 아파트 옆으로 앵글이 바뀌면서 뭔가가 불쑥 나타난다.

에펠 타워였다.
에펠 타워 뭐 별 거 있냐며 시큼털털한 예전의 방문평을 흘렸던 내 앞에 여름날과 같이 반짝이는 햇살을 배경으로 그 녀석이 우뚝 서 있다. 푸른 하늘의 구름은 에펠 위로 빠르게 지나간다. 여행을 갔던 어느 장소의 무엇에 대한 인상같은 것은 정말 언제 어떻게 그 곳을 갔느냐, 그 때 나의 마음은 어땠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여행가려하니 어디의 무엇이 좋더냐고 나에게 물어도 무조건 좋다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에펠타워.참 멋있다...

(Trocadero 역 쪽에서 사이요 궁쪽으로 걸어 나와서 에펠을 바라보면 이런 앵글이 나온다)

"밀크 코코아"
에펠 타워를 바라보는데 이 한 마디가 내 입에서 뚝 떨어진다.
"밀크 코코아 색이잖아"
따뜻하고 달콤한 코코아에 밀크를 잔뜩 넣은 부드럽고 달콤한 색깔. 그러고보니 에펠 타워는 밀크 코코아 색이었다.

에펠 타워 밑에는 이렇게 에펠의 두상이 놓여 있다. 처음으로 에펠탑을 찾았던 아주 아주 오래 전 그 때에 에펠탑 꼭대기를 오르고자 세계에서 온 모든 여행자들이 줄을 서서 개미처럼 스물스물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하도 줄을 오래 서다 보니 앞에 서 있던 미국에서 왔다는 여행자랑 한 두 마디, 파리 어떤 거 같냐, 이거 타워 하나 오르기 정말 어렵다, 뭐 그런 얘기를 하는데 이 사람들이 자꾸 "아이플" "아이플" 그러는 거다. "맥도널드"가 "맥,다널"이고 "소크라테스"가 "싸크뤼터쓰"라더니, "아이플이 에펠이냐" 물으니 이 사람들이 "에펠"을 모르네? "그럼, 아이플이 이 타워 만든 사람이냐" 고 물었더니 맞단다. 휴... 그래서 나는 오늘 아이플 타워를 다녀 온건지나 알고나 있자고 생각했었다.나중에 생각하니 어차피 에펠이 미국 사람도 아닌데 괜히 주눅들었네. 이렇게 억울할 데가.후후.
2005년 가을, 파리는 중국인 패키지 관광객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역시 이 곳에도 중국인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속속 도착한다. 에펠탑에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사진을 찍으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기에 사진 거리 나오는 이 쪽 어디쯤에 내려주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필름 카메라를 손에 손에 든 중국인들이 버스 안에서 줄을 이어 나온다. 그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한 여자가 다가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 바람에 hertravel, 난데 없는 고급 중국어를 구사하게 됐다. "이..얼.. 싼..." 흐뭇한 표정으로 중국 관광객 언니가 "셰셰~"하며 카메라를 되받아 간다. 다른 중국인들은 서서 그렇게 가로로 찍어서야 에펠 타워가 하반신만 뚝 잘려서 나올 것 같은데도 열심히 서로 상대의 가로 사진을 찍어주고들 있다. 중국 돌아가서 필름 현상, 인화 한 뒤에 사진 손에 받아들고는 잃어버린 에펠 타워 상반신에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건 아닐까 소심한 나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롱샷으로 보이는 이 건축물의 뼈마디와 잔가시 사이사이에 보이지 않는 먼지만한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사진으로 볼 때는 그저 그런 랜드마크에 불과하던 탑이었지만 와서 보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멋진 충격이다. 이러니 이 것 보고 자국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도쿄에 에펠탑을 흉내낸 도쿄 타워를 세우고, 옛날 대한 제국 사람들은 서울에 독립문을 세우는데 개선문을 흉내낸 것일테다.
에펠 타워를 지나 다리를 건너 사이요 궁쪽으로 와서 에펠타워를 내 시야의 정중앙에 두고 털썩 주저앉아서 감상중인데 얼굴이며 손등이며 상처투성이인 9세 정도의 남자애들이 나에게 와서 묻는다
"불어할 줄 알아요?"
"미안해. 몰라."
"그럼 영어는 할 줄 알죠?"
"글쎄, 조금은"
그러자 자기들에게 1에로우(유럽에서는 유로를 두고 여로,에우로라고도 한다)씩 주면 '다다다다'를 보여주겠단다.
"다다다다?"

대답하는 아이들의 몸짓을 보니 인라인을 타고 계단을 내려가는 묘기를 보여주겠단 거다. 글쎄 내가 인라인을 많이 좋아하지 않아서 필요 없을 것 같다고 거부하는데도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시범을 보면 달라질 것이라며 저희들 맘대로 속도를 내더니 한바퀴 크게 돌아 보이려고 몸을 휙 돌린다. 그러더니 그거 한 바퀴 돌겠다고 나서자마자 넘어졌다. 짜식~

넘어지고 나서 민망했는지 그 와중에 민망함을 모면하는 노련한 몸짓까지...!

이 녀석들은 파리 어디에 사는 아이들일까? 학교에 갔다 여기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일까?

# by | 2006/05/12 17:24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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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마니아님> Bir-Hakeim역 부근이요? 걸어가는데 아파트 옆으로 나타난 에펠탑, 정말 그렇게 에펠탑을 보게 돼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