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언니의 熱情的 親切 / 파리 차이나타운_11


내가 묵는 민박집은 차이나 타운에 있다. 대문 사진만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첫 날 전철역에 내려 이 집으로 찾아오면 찾아올수록 "오오 역에서 멀리 가면 갈수록 조금씩 까칠해지는 동네로구나"하며 감상을 밝히게 됐던 그런 동네다.



오늘 저녁, 동네로 돌아오던 나는 동네 입간판에 돌아가고 있는 까르푸 광고를 보게 된다. '그래! 까르푸에서 와인을 사오자!' 생각에 사로잡힌 난 정확히 까르푸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입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거리를 측정하는 이성이 갑자기 마비된 듯 어디라도 걸어갈 수 있을 자신이 있었던 그 때였다. 하지만 슬그머니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아 물론, 아까 본 간판에는 어렴풋한 불어로 '쭉 가다가 왼쪽에서 두 번째'라고 써 있다.(라고 내 멋대로 해석해 봤다). 하지만 그 '두 번째'라는 것이 금방 요 옆 두 번째 골목인지, 차 운전하고 가다가 고속도로 두번째 인터체인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조금 걷던 나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물어봐야한단 생각에 길을 지나던 언니를 한 명 붙들고 길을 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숙소 동네 차이나 타운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언니, 중국 언니다. 그런데 이 중국 언니, 그래도 엄연히 프랑스에 살고 있는 분인데, 불어라면, 까마득한 시절 제 2 외국어로 배우고 잊고 있던 내 수준에 비해서도 여간 만만치 않았다.

나: "우 에... 꺅푸?" (까르푸... 어디?)

아아.이상한 조짐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다. 이 언니가, '꺄프? 꺅푸? 꺄후?' 여러번을 물어보더니 뭐라뭐라 불어 비슷한 중국어인지 중국어 비슷한 불어인지를 말하다가는, 나와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에 불어를 못하는 여행자인 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학을 하며 손으로 자기 머리를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혼자 불어를 더듬더듬 하다가 중간 중간 정말 빠악빡 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머리를 때려대는 중국 언니...

저러다가 머리가 배겨 날라나. 혼자서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뭐라고 한마디 하고는 자기 머리를 쾅쾅쾅! 난타하고 얼굴 오만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가슴을 쳤다가는 다시 자기 머리를 마구 주먹질 한다. 자기도 자기가 불어 안되는 게 미치겠고 안되는 불어로 물어보는 나도 미치겠다. 몇 가지 안 되는 졸렬한 나의 불어 단어 중 하나인 쉬페흐 마흐셰 (수퍼마켓)이란 부연 설명도 안 통한다. 웬만하면 이쯤해서 잘 모르겠다고 돌아갈 만도 한데 이 언니는 알 것 같다고 대충 걸어서 가겠다는 나의 표정을 보고도 절대 보내지 않는다.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며 돌아서는 내 소맷자락을 꼭 붙잡아 언니 앞에 고정시킨다. 어떻게든 가르쳐 주겠다는 인생 목표가 급설정된 것 같다.

그런데 아아 이게 웬 일인가. 언니의 불타는 열정이 꽁꽁 얼은 나의 뇌세포를 녹였음인가. 그 까마득한 시절에 쓰다남은 나의 뇌의 뉴런 세포 어딘가에서 중국 언니의 중국스런 불어의 마디마디를 감지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 삐에드.... => 다리로, 걸어서? (아니 이게 어떻게 갑자기 생각나나)
...비스... => 오토뷔스? 자동차로? 버스타고? (이건 기적이야!)
...아쉬테... => 사다? 맞어요~ 사러 간다고요~ (이번엔 동사까지 생각나네)
...보꾸...쇼즈... => 많이,대량으로.... 물건... 맞아요! 대형 할인 매장~! (천재 아니야?)
...마가상.... => 마가상? 마가상 마가상...아, 마가쟁이라고 배운 그 마가쟁, 상점! (맞잖아)

그리하여 우리 한국 언니 Hertravel과 차이나타운 중국언니는 짝퉁 불어로 모든 대화를 끝마쳤다. 중요한 건, "꺅푸"는 "아 삐에드"로는 "농"이었다는 거다. (까르푸는 걸어서는 갈 수 없다) 아무튼 그런데 이 중국 언니는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려고 여전히 자기 머리를 난타하며 침울해하더니 괜찮다는 날 데리고 이 방향 저 방향으로 마구 걸어가기도 했다.

내가 여러 차례 만류하고서야 중국 언니는 친절의 열정을 가라앉혔다. 심지어 그 언니가 '까르푸'에 가는 버스 번호를 적어주려고 볼펜을 꺼내들고는 우리 둘 다 종이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갑자기 내 손바닥에 적어 주려했다. 그녀의 볼펜이 내 손바닥 위에 닿는 순간 간지러워서 내가 손바닥을 자동으로 움츠렸더니 불편해서 그런 줄로 알고 갑자기  펜을  들고 자기 손바닥에 볼펜으로 번호를 적느라 북북 그어대는 것이었다. 차이나타운 중국 언니는 자기손바닥 위에다 잘 써지지도 않는 볼펜을 북북 그어가며 길을 가르쳐 주려는 열정으로 타올랐고 나는 그 열정에 감동을 느꼈다. 이때까지는 중국인을 연상할 때 '친절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이 언니 덕분에 내 기억 연상 시스템에 친절한 중국인의 모습이 아로새겨졌다. 때로 한 사람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참, 그래서 결론. 까르푸를 갔느냐, 까르푸는 자동 포기했다. 대신 그 다음 날부터 까르푸를 간다는 번호를 단 동네 버스가 지나칠때마다 중국 언니를 자동적으로 떠올리곤 했다. (아래는 우리 동네 사진 중 하나)

by hertravel | 2006/05/11 17:23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2) | 덧글(5)

트랙백 주소 : http://hertravel.egloos.com/tb/198446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Linked at HerTravel의 지구 한 .. at 2007/07/10 22:57

... bsp;파리의 짧은 이야기 셋_14 "부 망제 보꾸" 많이도 먹는다_13 밀크 코코아 에펠타워_12 차이나타운 언니의 熱情的 親切_11 별의 광장과 루이비통 알바_10 관광객들의 환상, 몽마르트 언덕_9 항상 '예상,그 이상'인 이딸리 ... more

Linked at HerTravel, 여행유전자.. at 2008/01/03 13:01

... 사고를 통해 접수하면서도 그 튼실함을 잃지 않고 4년을 장수하시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가사상태에 빠지셨다. 또 다른 유럽 여행을 파리에서 시작한 첫 날, 그 먼 차이나타운까지 짐을 질질 끌면서 들어갔던 민박집에서의 일이었다. 민박집 컴퓨터에 연결한 나의 이 몹쓸 튼실함을 자랑하는 디카께서 갑작 절명을 하신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 ... more

Commented by 오른 at 2006/06/02 01:53
중국언니 과도 친절증! ^^ 전 중국 갔을때 사뭇 다들 냉담하던데~
Commented by 루스 at 2006/06/02 16:36
꺅푸....라고 발음하는군요. :)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6/03 03:56
오른님> 아마 자기 나라가 아니라 남의 나라라 동병상련 느꼈나봐요^^
루스님>네 저도 이전에 프랑스 사람이 그렇게 발음하는 걸 듣고...^^
Commented by 세닐리아 at 2006/08/09 02:49
전 니스에서 카르푸 가는 방법 물어봤는데 역시 까푸 이렇게 발음하더라고요..^^;; 불어는 하나도 할줄 모르는지라 참.. 난감난감! 그래도 그 아저씨가 영어로 설명해주셔서 참 다행이었다는..;
Commented by bateauivre at 2007/05/16 19:14
13e이군요. 저도 한두달에 한 번쯤 Tang Frère가서 장보려고 가는데, 그쪽으로 갈수록 까칠해지는 동네죠. 고층아파트하며...근데 hertravel님, 그 친절한 언니, 사실 중국 사람이 아니라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사람일지도 하하. 근데 파리의 중국인들은 화교가 아닌 중국본토 출신, 북경어를 쓰는 쪽이 많아서, 광동어를 쓰는 중국인/중국계들과는 상당히 문화적으로 다르기도 해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