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의 환상, 몽마르트 언덕 / 파리_9


위 사진은 센 강 남쪽에서 몽마르뜨 언덕을 멀리 바라다 봤을 때의 모습. 몽마르뜨 언덕 위로 하얀 성당, 사크레 쾨르가 보인다. 몽마르뜨는 워낙 웬만한 여행책이나 TV 프로그램에서도 너무나 많이 본,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사람들의 초상화나 풍경화를 그려서 팔고 있는 낭만적인 작은 언덕. 그렇게들 알고 있는 바로 그 곳이다.

빨간 옷을 입은 아저씨와 캔버스의 모자 쓴 모델의 얼굴을 한 눈에 비교해 봐도 초상화를 그린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옛날엔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고 결과적으로 인상파를 낳은 곳이라고 유명한 곳이지만 이제 몽마르뜨는 관광객들이 파리의 명성때문에 한 번쯤은 그냥 한 번 들러 보는 관광지이고 이 곳에 있는 대부분의 화가분들은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려서 돈을 벌고 있다.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자격이 필요하다. 화가 조합같은 것이 있어서 어느 수준 이상의 화가들이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살펴보면 화가분들 중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분들이 몇 분 섞여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이 사진을 찍을 때에도 화가분이 아무래도 한국분으로 보였었다. 파스텔로 세피아톤의 초상화를 그리시는 분이었는데 마침 특징있는 관광객 모델을 정말 비슷하게 잘 살려서 그리고 있었다. 이미 먼저 모델을 섰다가 뒤로 빠져서 이 모습을 바라보는 그림속의 남편은 화가의 등 뒤에 서서 흐뭇하게 사랑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서로 눈빛을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몽마르트는 화가들과...그리고 주변을 가득채운 갖가지 까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흐릿한 존재인 <저작권>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이란 나라와 서로 얼굴을 트고 지내기 전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동네 문방구에 가면 국적 불명, 출처 불명의 그림을 프린트한 카드와 액자같은 것들이 각각 얼마라고 적힌 견출지를 이마에 하나씩 달고 진열대에 서 있곤 했었는데... 그 카드 속의 주인공이었던 그림들이 바로 이 먼 곳 프랑스 파리 하고도 몽마르트르 언덕에 잔뜩 걸려있다. 아마도 국적불명의 이 소녀는 프랑스 소녀였던가 보다.

패키지 여행자들이 아닌 한 대개 사람들은 몽마르트르 관광을 "지하철 역->급경사 열차->파리 시내 부감 보기->사크레 쾨르 성당 ->화가들이 있는 테르트르 광장 -> 각종 유명 카페나 화가들의 집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의 환락가-> 끝"  이렇게 다녀보게 마련..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만 따라가게 되는데... 나야 뭐 어슬렁 어슬렁 내 멋대로 돌아다니다보니 잠시 옆 길로 새다가 막다른 길 끝이 내리막 계단으로 시작되는 곳에 서게 됐다. 어쩐지 마음에 드는 광경이라 사진을 찍고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서 있는 동안 몇 명의 사람들이 띄엄띄엄 오고 간다. 나처럼 어슬렁거리다가 끊어져 내려가는 길에 서 보고는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는다. 후훗... 사람들의 눈은 다 똑같나보다. 내 보기에 좋은 것은 남 보기에도 좋게 마련인가 보다. 두가지 흠이 있다면 하나는 사진으로 찍고 싶은 이런 작은 광경들이 지천으로 널린 곳이 유럽이라 한 2-3주 다니다보면 그 감동이 약해진다는 흠. 그리고 두번째는 이번과는 반대로 평지에서 이 언덕으로 거꾸로 걸어올라오던 아아아주 오래전 어느 여름날 허벅지 근육의 압박에 대한 추억?

초상화 화가들의 작은 광장을 지나 골목에 피아노 소리를 울려 퍼뜨리는 피아노 바를 지나고 이런 저런 기념품 가게와 크레뻬를 파는 집, 카페를 지나 아랫길로 내려가면 파리 시내에서 환락가로 유명한 피갈, 클리시 같은 곳이 나온다. '파리의 환락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 단어에서마저도 낭만감을 느끼고 싶어할 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끼기에 언덕에서 내려간 그 땅은 시끄럽고 사람 많은 서울의 동대문 일대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그냥 조용히 오던 길로 얌전히 다시 돌아가 지하철을 탔다. 

실은 이 몇 년 전 이 길을 내려갈 때엔 고흐가 잠시 몽마르트르에 살던 집을 찾아 내려갔었다. 그 때의 사진이다.

고흐가 살던 집이라 사람들이 몇 몇은 와서 들러보고 서 있고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려가는 길 내내 사람이라고는 당시 함께 갔던 아라치와 모니카와 나뿐이었다. 인적 드문 골목길의 이 조용한 54번지 집에서 사는 동안에 고흐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내려다 본 파리를 그려냈다. 

(그림 속의 둥근 지붕 - 돔 - 이 팡떼옹 건물같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고흐 미술관에 갔을 때 걸려있던 그림이다. 그렇게 암스텔담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고흐가 파리를 내려다보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었는데. 지금 그 모습이 내 눈 앞에 있다. 

(몽마르트르 사크레 쾨르 성당 앞에서 내려다 보는 파리 시내. 고흐가 바라본 각도보다 동쪽으로 치우쳐 찍었다)

사실 난 마음 속으로 '몽마르트는 파리에 3일 머무르는 사람들이 급하게 돌아보는 어떤 파리 관광의 허상을 대표하는 곳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내 느낌과는 아무 상관없이 세계의 여행자들은 그래도 역시 누구나 파리에 오면 이 곳을 들른다. 따지고보면 나도 이 곳을 평가 절하할 자격이 없다. 그 유명한 라팽 아질 한 번 들어가지 않았고 화가들의 아름다운 작업실들, 쇠라가 살던, 르느와르가 살던 집 구석구석도 찾아다니지 못했으니 말이다. 다음 번에 간다면 거꾸로 언덕을 오르는 허벅지의 압박을 재가동해야 할 일이다.

 

by hertravel | 2006/05/09 17:22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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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PPANG at 2006/05/21 19:23
아니 그런데 노란 목도리의 저 아가씨는 정말 모델처럼 예쁘네요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6/05/22 00:04
서양 사람치고도 얼굴이 작죠? 노란 목도리도 눈에 확 띄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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