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발 들이대다_3

 외국에서 짧은 방랑을 즐기는 사람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불가사의한 지병이 나에게 있으니 그것은 비행기 공포증이다. 지난 며칠간 이렇게 길을 떠나기 전에 만나는 사람마다 "좋겠다, 부럽다, 가고 싶다" 멘트 시리즈를 들으며 지냈으나 의외로 나 자신은 며칠동안 뇌에 흐르는 화합물의 이상으로 그 넘의 포비아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행 떠나기로 한 것을 후회도 하고, 자려고 누웠다가도 답답한 비행기 안에 꽁꽁 묶인 느낌이 기습적으로 들어서 갑자기 벌떡 잠자리에서 일어나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내 인생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땐 아주 비행기 안을 누비고 다니시면서 기내 주류를 다 드셔 주시고 친구 사귀어 주시고 주는 밥 좋아라하며 싹싹 비워주시곤 벌러덩 누워 잠도 잘만 주무시더니. 어떻게 된 것이 비행기는 타면 탈수록 점점 더 겁이 난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래서 중얼거린다. "hertravel, 내가 너를 알지. 분명히 파리 착륙 2시간전부터 이 모든 병은 사라질거라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곳은 에어 프랑스 기내. 비행기는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 하늘을 날고 있는 중. 착륙은 아직 여섯 시간 남았다. 사진은 유럽 국적기를 타면 꼭 나오는 식사 반주- 한 사람에 한 병씩 조그마한 와인 되시겠다.


 착륙 30분 전, 내가 하늘 위를 날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항상 경이롭다! 실제로 이번에 떠나 오기 전에 다른 때보다 더 걱정이 됐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방송 끝내고 1주일도 안 되어 후다닥 도망치는 것이다. 남들은 최소 한 달은 준비할 유럽 여행을 이렇게 당일치기로 떠나느라고 나는 일정도, 방문지도 확정하지 못했고, 일하던 중 어느 날 밤 휘리릭 그려본 지도 줄긋기 그거 한 장 들고 결국 이 길을 떠난다. 길 안내를 해 줄 만한 가이드북도 없이-뭐 워낙 내 루트에 맞춰 읽을 책도 없다-심지어 이따가 파리에 내려 잠 잘 첫 숙소도 못 정해놨다. 여행자들이 몰아치는 7,8월 아니라는 거 하나 믿고... 암튼 나는 모른다 모릅니다 몰라욧! 정말 말 그대로 "들이대는" 여행이다.


 사진은 어느덧 공항에서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 전철 안. 이미 나는 유럽 땅을 디뎠다. 아 정말정말정말정말 온 것일까, 유럽에? 아무리 구면이라지만 대책없이 이렇게 들이대도 되는 걸까, 유럽에?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보았던 민박집에 전화 한 통 걸고 찾아갔더니 주인이 허걱 놀란다. 여행다닌 곳의 지도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나로서는 실은 숙소를 찾아 가는 길도 취미 생활을 만끽한 것이었는데. "오늘" 파리는 밤은 썰렁하고 낮에는 해가 좋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일교차는 꽤 있는 날씨.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서 쌌던 여행 가방을 서쪽 다른 나라의 낯선 곳에서 여는 기분이라니.  

by hertravel | 2006/05/03 17:09 | 유럽과 나의 왼 발 (1)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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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여비 at 2006/07/20 14:16
아.. 부럽네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행을 하시네요.. 전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서 혼자 부딪혀보는 스타일인데.. 길을 잘못들면 나름대로 나만의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프랑크푸르트 하루 여행도 기억에 남네요.. 나도 이렇게 남겨놓을껄...
Commented by 여비 at 2006/07/20 14:24
프랑크푸르트가 아니라 하이델베르크였군요...흑
Commented by Moon at 2007/06/01 03:45
제 이야기를 적어놓으신 줄 알았어요. 저도 비행기 타기 전날 부터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내일 죽을 지도 모른다고 몇번을 되뇌이고.. - _ - 이 병은 날로 심해지는 듯 합니다. 내일부터 비행기로만 움직이는 여행이 시작되는데 저는 벌써부터 발을 동동이며 두려움에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hertravel at 2007/06/01 09:07
비행기 많이 타셨나요? 마침 어제 밤에 기사가 올라왔는데 비행 횟수가 많을 수록 공포심이 더 많다고 해요. 그러니까 제가 방랑벽이 있으면서도 비행기는 무서워했던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던거죠!! 안심이 되더라고요- 그나저나 그러면 지금쯤 비행기를 타셨나요? 비행기로만 움직이는 여행...어디로 가셨을까요 잘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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